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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유적지

영랑재(永郞재)

노촌魯村 2009. 2. 12. 23:01

8) 영랑재(永郞재)

영랑재는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지리산 천황봉에 이르는 중도에 있는데 그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영랑재의 이름은 신라 사선(四仙) 중의 영랑(永郞)에서 따온 것이다. 영랑을 비롯한 사선의 풍류가 전국에 걸쳐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러므로 신라 5악(五嶽)의 하나요,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智異山)에도 그들의 발자취를 남겼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록상으로 영랑재를 처음 소개한 것은 김종직(金宗直)이다. 그가 함양의 지방관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지리산을 기행하고 두류기행록(頭流紀行錄)을 섰다. 두류(頭流)는 지리산의 별칭이다. 이 기행문 가운데 영랑재에 대하여 서술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연기와 안개가 자욱하여 멀리 바라보지 못하고 청이당(淸伊堂)에 당도하니 판자로서 당을 만들었다. 네 사람이 각각 당 앞에 있는 계석(溪石) 위에 앉아 조금 쉬었다. 여기서부터 영랑재(永郞재)에 가기까지는 길이 극히 위급하여 뒷 사람은 앞사람의 발 밑만 보이고 앞사람은 뒷사람의 이마만 보일 정도이며 나무 뿌리를 잡아야만 능히 오르내릴 수가 있다. 해가 벌써 오정이 지났는데 비로소 영랑재 마루에 올랐다. 함양에서 바라보면 이 봉이 가장 높은데 여기오니 다시 천왕봉이 쳐다보인다.

영랑(永郞)이란 이는 신라 화랑의 두령인데, 3천 문도를 거느리고 산수가에 노닐며 이 봉에 올랐기에 영랑재란 이름이 된 것이다. 소년대(少年臺)는 봉우리 곁에 있어 푸른 벼랑이 만길이 되니, 소년이라 한 것은 혹시 영랑의 문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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