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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대구(大邱) 십경(十景)에서 公嶺積雪(공영적설, 팔공산에 쌓인 눈)

노촌魯村 2010. 1. 5. 13:31

 

公嶺積雪(공영적설, 팔공산에 쌓인 눈)

公山千丈倚峻層(공산천장의준층)    팔공산 천길 높이 가파르게 솟고

積雪漫空沆瀣澄(적설만공항해징)    쌓인 눈 하늘 가득 이슬되어 맑구나

知有神祠靈應在(지유신사영응재)    사당 모시니 신령님 응감있어

年年三白瑞豊登(연년삼백서풍등)    해마다 서설 내려 풍년을 점지하네

 

 

 

 

 

 

 

 

大邱十景을 노래한 徐居正((서거정, 1420-1488)의 字는 剛中, 號는 四佳亭 또는 亭亭亭이다)의 七言絶句 十首가 傳해오고 있다.

第一景 : 琴湖泛舟(금호범주, 금호강의 뱃놀이)
第二景 : 笠巖釣魚(입암조어, 입암의 낚시)

第三景 : 龜峀春雲(귀수춘운, 거북산의 봄 구름)
第四景 : 鶴樓明月(학루명월, 금학루의 밝은 달)
第五景 : 南沼荷花(남소하화, 남소의 연꽃)
第六景 : 北壁香林(북벽향림, 북벽의 향림)
第七景 : 桐華尋僧(동화심승, 동화사의 중을 찾음)
第八景 : 櫓院送客(노원송객, 노원의 송별)
第九景 : 公嶺積雪(공영적설, 팔공산에 쌓인 눈)
第十景 : 砧山落照(침산낙조, 침산의 저녁노을)

팔공산 (八公山) : 대구광역시 동구와경상북도 영천시, 군위군, 칠곡군, 경산시에 걸쳐 있는 높이 1,192m의 산이다. 삼국시대부터 공산(公山), 중악(中岳), 부악(父岳) 등으로 불려왔다. 1980년 5월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대구 북동쪽을 감싸안고 있는 대구의 진산(鎭山)이다. 높이 1,192m, 총면적 122.08㎢에 달하는 규모가 큰 산이다

팔공산 유래

공산은 우리말로 곰뫼 즉 웅산(熊山)이란 뜻이다. 고대에 곰은 신, 신성의 뜻을 가졌다. 곰나루(熊津)가 공주가 되듯 '곰'이 '공'으로 표기되었다.
이 공산이 팔공산이라 불리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설이 있다. ① 8장군이 순절했다고 하여 ② 8고을에 걸친 산이라 해서 ③ 8간지를 봉안했다고 해서 ④ 8성인이 득도해서 나온 산이라 하여 팔공산이라 불리었다.
그러나 여덟 장군의 순절설을 보면 고려의 토일 전쟁시에 태조 왕건과 후백제왕 견훤이 동수대전에서 격돌했을 때 신숭겸, 김낙 두 장군 외에 다른 장군의 순절 사실은 없었으며, 8성인이 득도 했다던 설은 원효의 제자 8인이 천성산에서 공산에 들어와 세 스님은 삼성암에서, 다섯 스님은 오도암에서 득도했다는 설과 신라 헌덕 왕자인 심지대사가 속리산에 가서 진표율사가 미륵보살로부터 받은 팔간자를 받아와서 공산 동사(棟寺)에 봉안한 사실에서 생겨난 불교계의 전설이 있으며, 여덟 고을에 걸쳐 있었다는 설은 조선초기에 생긴 팔공산의 이름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러나 조선초기 이후 공산은 해안(解顔), 하양(河陽), 신녕(新寧), 팔거 부계(缶溪)등 다섯 고을 즉, 현(縣)에 걸쳐 있었지만 여덟 고을에 걸쳐 있지는 않았다. 그러면 팔공산 명칭은 어디서 연유된 것일까? 이것은 사대주의 모화(慕華) 사상가들이 중국의 지명에서 따온 것이라고 추정된다.
중국 안휘성 봉대현 동남 비수(肥水)의 북, 회수(淮水)의 남에 위치한 팔공산에서 북조 전진왕 부견과 남조 동진 효무제 사이에 팔공산 비수에서 대전이 전개되어 부견왕이 참패한 고사와 유사성이 있어 그 고사에서 따다가 공산을 팔공산이라 부르게 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삼국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