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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내소사(來蘇寺)

노촌魯村 2010. 6. 8. 07:44

 

 

 

 내소사 일주문

내소사일원(來蘇寺一圓.시도기념물 제78호 (부안군).전북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268)

 백제 무왕 34년(633)에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창건한 절로 처음에는 소래사(蘇來寺)라 하였다가 내소사로 바뀌었다. 바뀐 까닭은 확실하지 않으며 그 시기만 임진왜란 이후로 추정하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대웅보전(보물 제291호)과 설선당, 보종각, 부안군 벽산면의 실상사터에서 옮겨 세운 연래루가 있다. 특히 대웅전은 조선 인조 2년(1633)에 청민대사가 지은 건물로 건축양식이 정교한데 단충과 보상화를 연속적으로 조각한 문을 눈여겨볼 만하다. 그 밖에도 고려시대에 제작된 동종(보물 제277호)과 3층석탑(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4호) 등이 남아있다.(문화재청 자료)

 

 

 천왕문

 

 사천왕상

 사천왕상

  

 

당산나무(할배당산나무)

 

 

일주문 밖의 당산나무(할매당산나무)

봉래루

 

 

 

 내소사대웅보전(來蘇寺大雄寶殿.보물  제291호)

이 대웅보전은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우측에 대세지보살, 좌측에 관세음보살을 모신 불전으로 조선 인조 11년(1633) 청민대사가 절을 고칠 때 지은 것이라 전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짜은 장식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밖으로 뻗쳐 나온 부재들의 포개진 모습은 우리 옛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앞쪽 문에 달린 문살은 꽃무늬로 조각하여 당시의 뛰어난 조각 솜씨를 엿보게 한다.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면 벽체 윗부분에 있는 부재 끝을 연꽃 봉오리 모양으로 장식하였고 보머리에는 용이 물고기를 물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 건물의 화사함을 더해 준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짜맞추어 지붕 윗부분을 가리고 있는 우물천장으로 꾸몄다. 불상 뒤쪽 벽에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것 중 가장 큰 ‘백의관음보살상’이 그려져 있다. 공예로 가치가 높은 문살 조각과 독창적인 장식물 등 조선 중기 이후의 건축 양식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건물이다. (문화재청 자료)

 

 앞쪽 문에 달린 문살은 꽃무늬로 조각하여 당시의 뛰어난 조각 솜씨를 엿보게 한다.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우측에 대세지보살, 좌측에 관세음보살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면 벽체 윗부분에 있는 부재 끝을 연꽃 봉오리 모양으로 장식하였고 보머리에는 용이 물고기를 물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 건물의 화사함을 더해 준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짜맞추어 지붕 윗부분을 가리고 있는 우물천장으로 꾸몄다  

 

출처 : 내소사 홈페이지 캡쳐   

  불상 뒤쪽 벽에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것 중 가장 큰 ‘백의관음보살상’이 그려져 있다.

 

 

 부안 내소사 동종(扶安 來蘇寺 銅鍾.보물  제277호)

고려 시대 동종의 양식을 잘 보여주는 종으로 높이 103㎝, 입지름 67㎝의 크기이다. 종의 아랫부분과 윗부분에는 덩굴무늬 띠를 둘렀고, 어깨부분에는 꽃무늬 장식을 하였다. 종의 어깨 밑에는 사각형의 유곽이 4개 있고, 그 안에는 9개의 돌출된 유두가 있다.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는 연꽃으로 장식했고, 종의 몸통에는 구름 위에 삼존상이 새겨 있다. 가운데 본존불은 활짝 핀 연꽃 위에 앉아 있고, 좌·우 양쪽에 협시불이 서 있다. 종 정상부에는 소리의 울림을 돕는 음통과 큰 용머리를 가진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가 있다. 고려 고종 9년(1222)에 청림사 종으로 만들었으나, 조선 철종 원년(1850)에 내소사로 옮겼다. 한국 종의 전통을 잘 계승한 종으로, 그 표현이 정교하고 사실적이어서 고려 후기 걸작으로 손꼽힌다.(문화재청 자료)

 

 

 

 

 

 

 

 

 내소사삼층석탑(來蘇寺三層石塔.시도유형문화재 제124호 (부안군) )

내소사 대웅전 앞에 서 있는 3층 석탑으로,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우고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위·아래층 기단과 탑신부의 각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급한 경사가 흐르는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받침돌 위로 둥근 형태의 크고 작은 석재 2개가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1층 탑신에 비해 2층부터는 그 높이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규모가 작은 탑으로,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른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된다.(문화재청 자료)

 

 

 

 조사당

 

 

 

 

 

  

 

 내소사설선당과요사(來蘇寺設禪堂과寮舍.시도유형문화재  제125호 (부안군))

내소사는 변산반도 남단에 있는 절로 백제 무왕 34년(633)에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지었으며, 소래사라 하였다. 소래사가 내소사로 바뀐 것에 대한 사료적 근거는 없지만, 중국의 소정방이 이 절을 찾아와 시주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고쳐 불렀다고 전한다. 인조 11년(1633)에 다시 짓고, 고쳐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내소사 경내에 있는 설선당과 요사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건물이다. 설선당은 인조 18년(1640)에 청영대사가 지은 것으로 앞면 6칸·옆면 3칸의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오른쪽 1칸은 마루이고, 앞면에서 남쪽 2칸은 난방을 위한 부엌으로 큰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요사는 설선당과 함께 인조 18년(1640)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앞면 6칸·옆면 2칸의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2층 맞배지붕집이다. 현재 1층은 스님들의 방과 식당, 부엌으로 사용하고 있다. 2층은 마루로 식료품이나 물건을 보관할 수 있도록 각 칸의 벽면에 환기창을 설치하였다. 설선당과 요사는 4면이 연결되어 중앙 내부에 마당과 우물이 둔 回자형의 특이한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

 

 내소사영산회괘불탱(來蘇寺靈山會掛佛幀.보물  제1268호)

석가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영산회괘불탱으로,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 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이다. 이 괘불은 길이 10.50m, 폭 8.17m로 본존불인 석가불은 중앙에 화면 가득 그리고 석가불 좌우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배치하였으며, 그 뒤로 다보여래와 아미타여래, 관음보살, 세지보살 등의 4보살이 서 있는 7존 형식구도를 이루고 있다. 각 존상들은 둥근 얼굴에 원만한 체구를 지니며 뺨과 눈자위, 턱밑, 손과 발은 옅은 분홍색으로 처리해 밝아 보인다. 주로 붉은색과 녹색을 사용하였고 연한색을 넣어 경쾌함을 느끼게 한다. 숙종 26년(1700)에 그려진 이 괘불은 콧속의 털까지 묘사하는 선의 정밀함, 화려한 옷의 무늬와 채색으로 더욱 돋보이는 작품으로 17세기말에서 18세기초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며 각 인물마다 명칭이 있어 불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귀중한 작품이다.(문화재청 자료)

 

  

  

    

 

설선당 앞의 산수유

내소사 연꽃(클릭하시면 원본 크기의 사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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