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재이공 신도비(경북 성주군 월항면 대사리 한개마을)
이 비석은 영조조(英祖朝)에 천륜(天倫)이 무너진 왕실에 비분과 통한을 안고 낙향 하였으나 사도세자에 대한 사모의 정과 사직의 안녕을 기원하여 북녘으로 문을 내어 북비공으로 더 잘 알려진 돈재 이석문(李碩文 : 1713~1773)의 신도비다. 이 석문의 자(字)는 사실(士實) 호는 돈재다. 재목으로 추천을 받아 조정에 나간 뒤 선전관 훈련원주부등의 벼슬을 지냈다. 1762년 영조와 사도세자 부자의 반목으로 사도세자가 죽임을 당할 때 왕명을 무릅쓰고 세손(후일의 정조)을 업고 들어가 영조에게 부당함을 간하다 곤장을 맞고 파직되어 고향으로 돌아와 무괴지심(떳떳하고 부끄러움 없는 마음)이란 편액을 벽면에 써 붙이고 조석으로 대좌하며 두문불출 하였다. 후일에 영조가 다시 훈련원주부를 제수하고 조정의 대신들이 출사를 권유하였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았다. 사후에 병조참판에 증직 되었다. 그의 손자 이규진이 장원급제 했을 때 정조가 특별히 불러 "너의 조부가 세운 공이 가상하다 아직까지 너의 집에 북녘으로 낸 문이 있느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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