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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범어사(梵魚寺)

노촌魯村 2010. 8. 12. 17:58

 

범어사당간지주(梵魚寺幢竿支柱.시도유형문화재 제15호 (금정구) )

산지를 이용한 특이한 가람배치로 잘 알려진 범어사는 숲으로 둘러싸인 자연조건이 아름다운 곳이다. 숲 한가운데 수많은 비석과 유물들이 있는데, 이 당간지주도 소나무가 우거진 곳에 우뚝하게 자리하고 있다.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이곳에 당이라는 깃발을 걸어둔다. 깃발을 다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을 양옆에서 지탱해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드물게 당간이 있으나 대부분은 두 기둥만 남아 있다. 이 당간지주는 현재 기단(基壇)과 당간의 받침돌이 모두 사라지고 양쪽의 두 기둥만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기둥 윗부분 안쪽면에는 당간을 고정시켰던 네모난 홈을 두고 양 기둥 끝은 곡선으로 처리하였다. 돌을 다듬은 흔적이 고르지 않아 둔중한 감이 있으나, 장식이나 조각이 전혀 없어 소박한 모습이다.(문화재청 자료)  

 

 범어사조계문(梵魚寺曹溪門.보물  제1461호.부산 금정구  청룡동 546)

경상남도 3대 절(해인사.통도사.범어사) 중 하나로 유명한 범어사는『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의상대사가 통일신라 문무왕 18년(678)에 처음으로 지었다고 한다. 또한 옛날 일본인이 침입했을 때에는 이곳의 승려들이 전쟁에 직접 참여하여 함께 싸우기도 했던 곳 가운데 하나로도 알려져 있다. 이 건물을 세운 시기를 알 수는 없으나 조선 광해군 6년(1614)에 묘전화상이 절내 여러 건물을 고쳐 지을 때 함께 세운 것으로 추측한다. 정조 5년(1781)에 백암선사가 현재의 건물로 보수했다. 앞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한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기둥은 높은 돌 위에 짧은 기둥을 세운 것이 특이하며 모든 나무재료들은 단청을 하였다. 범어사 조계문은 모든 법이 하나로 통한다는 법리를 담고 있어 삼해탈문이라고도 부른다. 범어사 조계문은 사찰의 일주문이 가지는 기능적인 건물로서의 가치와 함께 모든 구성 부재들의 적절한 배치와 결구를 통한 구조적인 합리성 등이 시각적으로 안정된 조형 및 의장성을 돋보이게 한다. 한국전통 건축의 구조미를 잘 표현하여 우리나라 일주문 중에서 걸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문화재청 자료)

 조계문(曹溪門)

 금정산 범어사(金井山 梵魚寺)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

일제시대 사진(출처 :조선고적도보)

 천왕문(天王門)

사천왕상

 

 

사천왕상

 

 

 불이문(不二門)

 

 

보제루 普濟樓

어리석은 사람을 부처남의 맑은 진리의 가르침에 의해서 널리 중생을 교화한다고 하여 보제루라고 한다. 법당 정면을 마주보고 있으며 아침, 저녁으로 스님들이 예불을 올리고 49재 법회와 각종법요식을 진행하기도 한다. 음력 3월에는 불자들에게 금강계단(金剛戒壇)을 만들어 보살계 수계법회를 봉행한다. 외벽에는 심우도(尋牛圖)가 그려져 있는데 심우도는 소를 중생이 가진 본성에 비유하여 중생이 어리석음에서 수행을 통해 점차 맑고 때 묻지 않은 해탈의 세계까지 이르는 장면을 열 개의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그래서 십우도(十牛圖)라고도 한다. 

일제시대 사진(출처:조선고적도보)

범어사대웅전(梵魚寺大雄殿.보물  제434호) 

석가모니불상만을 모시는 일반 대웅전과는 달리 이곳 범어사 대웅전에는 미륵보살과 가라보살을 각각 석가모니의 왼쪽과 오른쪽에 함께 모시고 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버린 이 대웅전은 조선 선조 35년(1602)에 다시 지었으며 광해군 5년(1613)에는 한 차례 보수 공사가 있었다. 앞면·옆면 3칸 크기를 가진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또한 건물 안쪽에 불상을 올려놓는 자리인 불단과 불상을 장식하는 지붕 모형의 닫집에서 보이는 조각의 정교함과 섬세함은, 조선 중기 불교건축의 아름다움과 조선시대 목조공예의 뛰어남을 보여주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

 

 

범어사 대웅전에는 미륵보살과 가라보살을 각각 석가모니의 왼쪽과 오른쪽에 함께 모시고 있다.

 

대웅전 벽화(백호白虎. 백학白鶴. 백록白鹿)

대웅전 소맷돌 

 기단의 문양

 

금고

 

일제시대 사진(출처:조선고적도보)

정료대

범어사삼층석탑(梵魚寺三層石塔.보물  제250호)  

범어사 대웅전 앞에 있는 석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이 탑의 특징은 탑의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에서 찾을 수 있는데, 위·아래층 기단의 옆면을 기둥 모양으로 장식하지 않고 대신 안상(眼象)을 큼직하게 조각한 것이다. 탑신부는 1층 몸돌에 비해 2층 이상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평평하고 얇은 지붕돌은 처마가 수평을 이루며, 밑면의 받침이 4단으로 되어 있어 통일신라 후기의 양식을 보여준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 위에 보주(寶珠:연꽃봉오리 모양의 장식)만 남아 있을 뿐 다른 것은 없어졌다. 통일신라 흥덕왕(재위 826∼836) 때에 세운 탑으로, 일제시대에 크게 수리를 할 때 기단 아래부분에 돌 하나를 첨가하는 바람에 기단부가 너무 크고 높은 느낌을 준다. 밑에 둘러진 난간도 이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문화재청 자료)

 

 

 

범어사석등(梵魚寺石燈.시도유형문화재 제16호 (금정구) )  

범어사 안에 있는 석등이다. 석등은 보통 금당이나 탑 앞에 두는데, 이 석등도 원래는 용화전(龍華殿) 앞에 있던 것을 일제시대에 절내의 종루와 그 자리를 바꿔놓은 것이다. 석등은 3단의 받침 위에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과 지붕돌을 올린 일반적인 형태로, 각 부재가 8각을 이루고 있다. 받침부분은 가운데기둥을 사이에 두어 아래받침돌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윗받침돌에는 솟아오르는 연꽃무늬를 새겨 대칭적으로 표현하였다. 화사석은 4면에 네모난 창을 두었는데 창의 가장자리마다 창문을 달았던 10개의 구멍흔적이 남아있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가 살짝 들려있고, 꼭대기에는 네모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위로 보주(寶珠: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후대에 보수한 받침의 가운데기둥이 빈약하고, 윗받침돌이 두터워서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불안정하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범어사삼층석탑(보물 제250호)을 세운지 3년 후인 통일신라 문무왕 18년(678)에 만들었다고 하나 양식적인 특징으로 보아 9세기경인 통일신라 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문화재청 자료)

 

 

 

 

 

미륵전 내부(미륵불) 

미륵전 彌勒殿

용화전(龍華殿), 자씨전(慈氏殿)이라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 다음에 오실 미래의 부처님이다. 앞으로 사바세계에 오셔서 많은 중생을 제도해 주실 부처님으로 지금은 도솔천에서 천인들을 위하여 설법을 하고 계신다. 법당에 모셔진 미륵부처님은 서쪽을 향하고 있는데, 화재로 소실되었던 미륵전 밑을 파보니 미륵부처님께서 동쪽을 등지고 앉아 있어 그대로 안치하였다고 한다. 

목조여래좌상 木造如來坐像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2호

범어사 전각내 불상 중 가장 규모가가장 큰 불상으로 미륵존상이다. 봉상스님이 쓴 미륵조상중수기에 의해 조성시기를 1602년일 것으로 추정되며, 조각수법 등에서 조선후기 불상의 특징을 보이고 뛰어난 불상이다

 비로전 내부

비로전 毘盧殿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1호

범어사는 화엄십찰의 하나로 창건되었기에 화엄종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신 건물이다. 비로전이 본전(本殿)일 경우 대적광전(大蹟光殿)이라한다. 비로자나부처님은 법신불(法身佛)이다. 비로자나부처님을 청정법신(淸淨佛身)이라고 한다. 영혼이 맑고 아름다운 사람은 법신에서 법향이 난다. 비로전 법당은 조선 숙종9년(1683) 해민스님이 중창하였다. 나무로 조성한 비로자나삼존불좌상의 좌우에 있는 불상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다.

관음전 

범어사 관음전 목조관음보살좌상(시도유형문화재  제70호 (금정구) )

 관음전 소맷돌

 지장전

지장보살 

범어사팔상·독성·나한전(梵魚寺八相·獨聖·羅漢殿.시도유형문화재 제63호 (금정구))

범어사팔상·독성·나한전(梵魚寺八相·獨聖·羅漢殿.시도유형문화재  제63호 (금정구) ) 

정면 7칸, 측면 1칸 규모에 겹처마, 맞배지붕인 본 건물은 현재 범어사 대웅전 서쪽 상단에 위치하고 있는 부속 불전의 하나로, 적어도 1706년 이래로 존속했던 위치에서 변함없이 존속해 온 건물이다. 1902년에 조사된 자료에 의하면 당시까지는 중앙의 천태문(天台門)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팔상전과 나한전이란 별개의 건물이 서 있다가, 1905년 11월~1906년 11월까지 약 1년에 걸친 공사 끝에 현재의 모습으로 새롭게 단장되었다. 따라서 서측의 팔상전 부분과 동측의 나한전 부분의 건축 형식은 변형되거나 고쳐지지 않고 1906년 중건 이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보여 지며, 다만, 팔상전과 나한전의 노후화 된 부재의 교체와 내부 가구(架構)가 수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1906년에 단장된 독성전(獨聖殿) 부분은 문틀을 하나의 통재를 사용해서 반원형으로 구부려 만든 독특한 모습이고, 창방 사이의 삼각형 벽체 부분에는 통판(通板)으로 넝쿨 형상을 초각하였으며, 창호도 팔상전과 나한전이 교살창인데 비해 독성전은 화문살로 아름답게 꾸미는 등 장식수법이 유사한 예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나다. 이처럼 범어사 팔상·독성·나한전은 1906년에 중건된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간살, 가구(架構)와 평면, 입면 구성 등에서 1706년 이래의 건축 형식을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고, 특히 하나의 건물에 세 불전(佛殿)을 모신 점, 중아에 위치한 독성전 개구부(開口部)의 뛰어난 의장과 초각수법은 그 예가 극히 드문 만큼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갖추고 있는 건물로 평가된다. (문화재청 자료)

나한전 

 독성전

 약사전

약사전 내부 

산령각 

 상령각 내부(산신 탱화)

 

 

부산 범어사 등나무군락(釜山 梵魚寺 등나무群落.천연기념물  제176호)  

등나무는 콩과에 속하는 낙엽 덩굴성 식물로 봄에 보랏빛 꽃을 피우며, 줄기는 오른쪽으로 꼬여 감으며 10m 이상 자란다. 우리나라에는 남쪽에서 자라는 애기등과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등나무 등 2종이 자생하고 있으며, 정원수, 환경미화용 등 조경의 소재로 많이 쓰여지고 있다. 범어사 등나무 군생지(群生地)는 부산 금정산 중턱에 있는 범어사(梵魚寺) 앞의 계곡에 있다. 범어사는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의상대사가 절을 세운 이후 여러 고승들이 깊은 깨우침을 받았던 곳이다. 계곡의 큰 바위 틈에서 자란 약 500여 그루의 등나무가 소나무, 팽나무 등의 큰 나무를 감고 올라가 뒤덮여 있다.등나무가 무리지어 사는 계곡을 등운곡(藤雲谷)이라고도 하며, 금정산 절경의 하나로 꼽았다. 범어사 등나무 군생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는 것은 등나무가 무리지어 사는 것이 매우 드물기 때문에 생물학적 연구자료로서의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문화재청 자료)

 

 

   

일제시대 사진(출처:조선고적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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