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서원(龍山書院.경상북도 기념물 제88호. 경북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 659외 2필 )
정무공 최진립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잠와 최진립(1568∼1636)은 조선 중기 무신으로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동생 계종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다. 병자호란 때 적군과 싸우다 전사하였으며 죽은 뒤에 지금의 장관격인 병조판서 직함을 받았고 청백리로 기록되었다. 숙종 25년(1699)에 세운 이 서원은 숙종 37년(1711)에 ‘숭렬사’라는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고종 7년(1870)에는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24년에 다시 지었다. 건물 구조는 전학후묘로 앞면에는 공부하는 공간인 민고당, 뒷면에는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숭렬사가 있다. 서원 오른쪽에는 관리사가 있고, 서원 입구에는 신도비각이 서 있다. (문화재청 자료)
민고당 현판
숙종 25년(1699)에 세운 이 서원은 숙종 37년(1711)에 ‘숭렬사’라는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고종 7년(1870)에는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24년에 다시 지었다.
1699년 경주 용산 아래(내남면 이조3리, 지금의 용산서원) 마을 선비와 주민들이 사당을 건립했고, 1700년 겨울에 잠와 위패를 봉안했다. 1711년에 유림의 소청을 받아들여 나라에서 사당 묘액을 숭렬사우(崇烈祀宇)로 내려주었다. 사당 칭호는 대제학 김진규가 정했고, 글씨는 찰방인 옥동(玉洞) 이서가 썼다. 유림의 의논을 거쳐 서원 이름은 용산서원(龍山書院)으로 정했다. 용산서원 편액 또한 이서가 썼다.
서원 입구에는 신도비각이 서 있다.
용산서원(龍山書院)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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