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95년의 발굴 조사로 대향로가 발견된 일대가 백제 시대 왕실 절터였음이 입증되었다. 발굴된 목탑 흔적에서 발견된 사리감에서 "백제 창왕 13년 (567년)에 정해공주가 이 절을 지었다"는 기록이 발견된 것이다. 학계는 이 점에 주목하여 대향로가 단순한 향로가 아니라 의식용이나 제사용으로 사용된 신물로 추정하고 있다.
[2] 구성
백제금동대향로는 전체 높이가 62.5cm이며 용 모양의 향로 받침, 연꽃이 새겨져 있는 향로의 몸체, 산악도가 솟아잇는 향로 뚜껑, 뚜껑 위의 봉황 장식의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봉황과 향로 뚜껑은 하나의 주물로 제작되어 있어, 제작 과정에서 세 개의 주물틀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향로 본체의 가운데 테두리의 구름 문양 아래에는 연꽃이 핀 연못이 있고, 그 위인 뚜껑에는 봉우리가 세 개 있는 산들이 있다. 이 산에는 말을 타고 사냥하는 사람, 신선으로 보이는 사람들, 호랑이, 사자, 원숭이, 멧돼지, 코끼리, 낙타 등 많은 동물들이 장식되어 있다. 또한 곳곳에 폭포, 나무, 불꽃 무뉘, 귀면상 등이 있다. 제단 모양으로 꾸며진 정상에는 봉황이 날개를 펴고 춤추고 있고, 그 아래에는 5악사가 있는데 이들은 소, 피리, 비파, 북, 현금을 연주하고 있다. 그 주위 의 다섯 봉우리에는 각가 기러기로 보이는 새가 봉황과 함께 춤추는 형상이 있다. 향로의 몸체에는 연꽃이 있는데 그 위에 각가지 새와 물고기가 새겨져 있다. 또 한쪽에는 무예를 하는 인물도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발가락이 다섯 개 있는 용이 위의 연꽃을 물고 하늘로 날아가려는 듯 용틀임을 하고 있다.
[3]금동대향로의 세계
중국에 서역의 향품이 전해져서 전국시대 말기부터 악취를 없애고 부정을 쫓기 위해 향로를 만들었다. 백제 금동대향로의 기원을 중국에서 찾는 사람도 있는데, 이들에 의하면 백제 금동대향로는 한나라 박산향로의 영향을 받아 백제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제작되었다고 한다. 중국에는 백제의 것과 같은 대형 향로가 없으며, 한나라 때와 같은 금동 제품이 남조에서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남조시대 유물들 중 비록 실물은 아니지만 백제의 금동대향로와 비슷한 것이 확인되었다. 불교문화연구가들은 백제금동대향로가 불교의 연화화생설과 관련있다고 하는데, 불교의 이상향인 연화장의 세계는 비로자나불이 있는 광대하고 장엄한 이상세계를 말한다. 연화장 세계의 맨 아래에는 풍륜이 있고, 풍륜 위에는 향수해가 있어 그 향수해에 큰 연꽃이 핀 것을 연화장이라 하는 이상세계이다. 즉, 대향로를 받치고 있는 용은 향수해를 의미하고 연꽃잎 위의 세계가 이상세계라는 설명이다. 봉황을 고대 동북아에서 신성시해 온 천계로 보고, 5악사와 기러기를 백제의 5부로 보아 백제대향로에 고대 동북아의 전통사상이 반영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는 설도 있다.(지역정보포털 자료)
봉황 앞 가슴과 악사상 앞뒤에는 5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 몸체에서 향 연기를 자연스럽게 피어오를 수 있게 하였다.
받침대는 몸체의 연꽃 밑부분을 입으로 문 채 하늘로 치솟 듯 고개를 쳐들어 떠받고 있는 한 마리의 용으로 되어 있다.
백제금동대향로의 오악사
진흙속에서 건져올린 보물, 백제금동대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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