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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문경

고모산성 (姑母山城) 과 석현성(石峴城)

노촌魯村 2012. 3. 18.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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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모산성에서 본 석현성과 토끼비리 (위의 사진 클릭하시면 원본크기 보기 가능)

삼국시대 격전지였던 고모산성과 6~7세기 신라고분군, 영남대로인 ‘토끼비리’등 문경시 마성면 일대에 밀집된 1천500여년 전의 유적들이  정비 또는 복원됐다. 문경시는 2000년 유교문화권 관광개발사업의 하나로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고모산성과 석현성 등 유적에 대한 학술조사와 복원사업에 착수, 최근 일부 성곽을 복원하는 등 사업을 일단락지었다. 고모산성은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통해 신라가 북진정책을 꾀하던 5세기에 만들어진 신라 최초이자 최대의 성곽으로 밝혀졌으며, 고모산성 서문지에서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곽구조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토끼비리 정비, 석현정 및 진남루 복원, 고모산성 정비, 주막거리 복원, 고분군정비 등 고모산성 일대 유적지 정비에는 11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이번사업으로 고모산성의 익성(翼城)인 석현성의 문루인 진남루와 성곽이 복원됐으며, 영남대로 중 가장 험난한 길로 알려진 토끼비리도 전망대와 목책 등 안전시설을 갖추게 됐다. 400m의 토끼비리는 2007년 길 문화재로는 최초로 명승31호로 지정된 곳으로, 영남대로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길이다. 또 전체 300여기의 고분 가운데 60여기를 발굴해 정비한 고모산성 아래 신라고분군도 데크 탐방로의 안내판을 설치하는 등 정비를 마쳤다. 옛 길손들의 휴식처인 주막거리도 석현성 안쪽에 재현해 놓았으며, 고갯마루에는 성황당도 보존했다. 문경시 문화예술과 엄원식 학예사는 “고모산성, 석현성, 6~7세기 신라고분군, 토끼비리, 조선시대 주막거리, 성황당등은 모두 경북팔경의 하나인 진남교반 일대에 밀집돼 있어 풍광이 빼어난 종합역사박물관으로 꼽힌다”며 “다양한 문화유적이 한 장소에 모여 있는 경우는 진남교반 일원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지역정보포털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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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촌에서 문경 충주방면으로 3번국도를 따라 10KM쯤 달려가면 70년도 문경경제의 전성기를 일구었던 광산의 하나인 문경탄광의 복구된 폐광지 모습이 나온다. 계속 S자형 만곡지형인 강변을 끼고 3KM쯤 달리면 오른쪽 강변을 따라 하늘로 치솟은 기암괴석과 층암절벽이 이어지고 맑고 푸른 강 위에는 가지런히 철교와 함께 3개의 교량이 모습을 나타내어 자연과 인공의 묘한 조화를 나타내는 곳이 진남교반으로 마성면 신현리에 속한다. 봄이면 진달래 철쭉이 만발하고 계절따라 천태만상으로 변하는 금강산을 방불케 한다해서 문경의 소금강으로 불리우고 있다. 1933년 대구일보사 주최로 경북팔경을 정하는데 이곳 진남교반의 경승이 단연 제1위로 선정되어 진남휴게소 폭포 왼쪽 암벽 위에는 ''경북팔경지일'' 이라 새겨진 석비가 세워져 있다. 국도따라 펼쳐지는 울창한 수림 강변따라 이어지는 기암절벽, 조령천이 영강에 합류하여 굽이도는 강변 모래벌과 아름드리 노송이 우거진 진남숲 일대 는 울창한 산림과 더 넓은 모래사장이 풍부한 휴식 공간을 제공하여 하절기의 강변휴양, 야유회, 각종 수련대회 장소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야간에 텐트촌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들은 휘영청 밝은 달밤에 강물위 달 그림자와 함께 또하나의 명화를 방불케 한다.

 

최초의 진남교

     

 

문경 석현성

마성면 신현리 고모산성 옆으로 난 조선시대 관성이다. 고모산성과 연접해 있어 고모산성의 익성으로도 불린다. 정확한 축조연대를 가늠하기가 힘이드나 기록상으로 보아 조선시대 중기 또는 그 이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진남문을 중심으로 고모산성과 맞다은 부분의 길이가 150m, 남쪽으로 토끼비리 시작부분과 닿은 부분까지가 235m로서 전체 385m 길이의 성곽이다. 성곽은 기초부와 성벽의 몸인 체성부가 남아 있고, 여장부분과 체성부의 상부는 일부 손상되어 있었다. 특히 여장부분은 총안과 사혈 및 여장 지붕의 형태를 알기가 어려워 현재 복원된 부분은 당시 비슷한 시기에 축조된 북한산성, 문경관문 등의 여장과 비슷한 형태로 복원이 되어 있다. 석재는 주변 지역에서 채취한 것으로 추정되며 일부 강돌도 사용되었다

  

 

    

  

    

 

    

 

  

  

문경 고모산성

고모산성은 5세기경 신라가 북진을 하면서 축조한 최초이자 최대규모의 산성으로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접전지역에 속해 늘 격전지였다. 고려시대에는 견훤과 왕건의 전투지역으로 활용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을 거쳐 의병들의 주둔지 등 시대를 달리하며 역사를 지켜온 산성이다. 주변에는 조선시대의 관성인 석현성, 명승31호인 문경토끼비리 옛길, 신라고분군, 성황당, 주막거리등 다양한 문화유적인 산재한다. □ 基本現況 - 위 치 : 경북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산27-2번지 일원 - 축성연대 : 5세기말 (신라) - 규 모 : 길이 - 1,300m, 면적 - 131,200㎡, 남북 - 410m, 동서-320m 평균높이 - 외벽 8m, 내벽 4m, 평균너비 - 13m - 축조형식 : 포곡식, 내외겹축 □ 調査現況 - 1998 : 지표조사 (문경문화원 향토사연구소) - 2001 : 지표 및 시굴조사 (중원문화재연구원) - 석현성 복원을 위한 조사 - 2002 : 고모산성 남문지 조사 (세왕토목문화기술단) - 성벽 보수에 따른 기초조사 - 2004 : 지표조사 (중원문화재연구원) - 고부산성, 토천, 고분군, 주막거리 등 발굴조사 (중원문화재연구원) - 신현 고분군 1,2차 발굴 - 2005 : 발굴조사 (중원문화재연구원) - 서문지 수구, 남문지 남동곡성 - 2007 : 연장발굴조사 (중원문화재연구원) - 서문지 수구부 연장조사

경상북도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의 경북팔경중의 하나인 진남교를 중심으로 남쪽에는 어룡산 (魚龍山)이, 북쪽에는 고모산(姑母山)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데 고모 산성은 고모산에 유존한다. 이 성은 천연적 요새에 위치하였기에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이 이 성의 방비상태를 확인한 후 통과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조선 영조 때는 정희량(鄭希亮)이 반란을 일으켰 을 때 신필정(申弼貞)이 의병을 모아 포진한 곳이기도 하고 이강년 (李康?)이 왜병과 격전한 곳이기도 하다. 이 성은 북쪽에서 흘러내 리는 영강이 산의 서쪽을 에워싸고 남으로 흘러 내리고 있고, 동쪽 은 해발 810m의 조정산에서 뻗어내린 험산 산록이 놓여 있어 축성 하기에 천연적인 지형을 갖추고 있는데, 서쪽의 경우 자연단애면을 그대로 이용했고 나머지 삼면에 벽을 쌓아 성을 만든 포곡식 산성 이다. 성벽은 바깥은 수직으로, 안은 경사가 지도록 쌓았다. 현재 대부분의 성벽은 허물어 졌으나 남·북문지(南北門址)와 남문지에서 동쪽으로 쌓은 성벽은 대체로 잘 남아 있다. 성 안에는 건물지로 추정되는 곳이 있으며 많은 토기편과 기와편이 산재한다. 성벽의 높이는 2-5m, 폭은 4-7m, 길이 약 1.6km이다.

 

고모산성 남문(독특한 형태의 문 인 懸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