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신라고분에서 금동관식(金銅冠飾)등 유물 다량 출토
- 5.22 오후 2시,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류춘규)는 오는 22일 오후 2시 경북 경주시 황오동 삼국시대 고분 발굴조사 현장에서 완전한 형태의 신라고분 1기의 발굴성과에 대한 현장설명회를 개최한다. 이번에 발굴 조사된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은 봉분의 지름이 23m에 이르는 중형분으로 삼국시대 신라의 지배 계층이 사용한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시신과 부장품을 넣어둔 나무곽 외부에 돌을 쌓아올린 후 흙으로 덮어 만든 무덤)이다. 무덤의 주인공이 안치된 관과 부장품을 담은 궤(櫃)를 넣어둔 주곽(主槨·주인공이 안치된 관을 넣어둔 중심 곽)과 각종 부장품을 넣어둔 부곽(副槨)이 일렬로 배치되었으며, 주곽에서는 순금제 귀걸이, 유리구슬로 된 가슴장식, 은제 허리띠 장식, 삼엽(三葉)․삼루(三累․좌우와 상부에 상호 연결된 세 개의 고리)가 붙은 장식대도(裝飾大刀) 등이 출토됐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지금까지 신라고분에서 백화수피제관모(白樺樹皮製冠帽․자작나무 껍질로 만들어진 지배 계층의 위계를 상징하는 모자)가 출토되어 온 적은 있지만, 백화수피제관모에 금동장식이 부착되고 여기에 새날개모양의 금동제․은제의 관식과 정수리 부분의 입식(立飾·높이 세워 꽂는 장식)과 뒤꽂이와 같은 후입식(後立飾)이 모두 갖추어진 모자 형태의 관이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은 구조와 출토유물에서 황남대총(皇南大塚)과 천마총(天馬塚), 금관총(金冠塚)과 같은 대형무덤들과 서로 비교될 수 있어 앞으로 5세기 후반 ~6세기 초 무렵의 신라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문화재청 : 報道資料(2012. 5. 21))
쪽샘지구=경주시 황오·황남·인왕동 일대에 형성된 4~6세기 신라 왕족과 귀족의 집단 묘역. 총면적이 38만4000㎡에 달한다. 2007년 3월 발굴이 시작했다. 무덤 150여 기를 확인하는 데는 15~2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쪽샘 E지구 41호분 주ㆍ부곽 노출 모습(북-남)
쪽샘 E지구 41호분 주곽 노출 모습(서-동)
쪽샘 E지구 41호분 주곽 출토 은제관식
쪽샘 E지구 41호분 주곽 내 금제귀걸이와 가슴걸이 노출 모습
쪽샘 E지구 41호분 출토 출자형문양 대부장경호와 일괄유물
출자형 문양 세부
주 곽
부 곽
경주 쪽샘지구에서 발견 된
대형 철제 제품 용도 밝혀지다.
경주 쪽샘지구에서 삼국시대 대형 철제 농기구(農器具) 출토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류춘규)는 경주 쪽샘지구 발굴조사에서 삼국시대 농기구(農器具)로 추정되는 대형 철제품을 확인하고 오는 5일 오후 2시 현장설명회를 개최한다. 이번에 공개되는 대형 철제품은 지난 5월 중순 경 새날개모양의 금동제·은제의 관식과 정수리 장식, 뒤꽂이 장식이 모두 갖추어진 삼국시대 관모가 처음으로 발굴된 쪽샘지구 41호분의 부곽(副槨)에서 출토됐다. 그동안 확인된 삼국시대 철제 농기구 가운데에서도 가장 큰 규모이다. 특히 철제의 몸체에 편평한 날 부분을 결합시킨 특이한 탈부착식(脫附着式)구조로서는 국내의 고대 농기구들 중에서 처음 확인된 것이고, 일본과 중국에서도 동일한 형태의 것은 아직까지 발견된 사례가 없다. 대형 철제품은 두께 5.0㎝, 길이 22.8㎝, 너비 18.5㎝, 무게 약 9㎏에 이르는 방형의 몸체에 길이 26.0㎝ 크기의 폭이 넓고 편평한 삽날이 서로 결합된 구조이다. 몸체에는 나무자루를 끼울 수 있도록 가로ㆍ세로 8.2㎝의 네모난 구멍이 마련되어 있으며, 날 부분이 편평한 것으로 보아 농경지(農耕地)나 대지(垈地)의 터를 고르는 정지용(整地用) 농기구인 것으로 추정된다. 또 농기구의 규격이 일상적인 농구에 비하여 2배 이상 크고, 왕족과 같은 지배층의 무덤에 부장된 것으로 보아 가축을 이용한 정지작업과 깊은 관련이 있거나, 몸체에 기하학 문양이 새겨진 것으로 보아 농경의례 등에 과시용으로 활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이 대형 철제농기구는 ‘삼국사기’ 소지마립간 9년(487년)조의 “관도를 수리하였다(修理官道)”나 지증마립간 3년(502년)조에 “지방에 명하여 농사를 권장케 하였고 처음으로 소를 부려 논밭을 갈았다(分命州郡勸農 始用牛耕)” 라는 기록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고고자료로도 볼 수 있어 앞으로 5세기 후반 ~ 6세기 초 무렵의 신라사와 농업사 관련분야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보도자료 2012-09-04)
호석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E-41호) 발굴조사 현장설명회에서 전시 된 유물
금관 형태로 유명한 ‘出’(출) 무늬를 새긴 긴목 굽다리 항아리(대부장경호)도 처음 확인돼 금관 양식과의 연관성이 주목된다.
이번에 발굴 조사된 경주 쪽샘지구 E-41호 고분은 봉분(封墳)의 지름이 23m에 이르는 중형분으로, 삼국시대 신라 지배계층의 무덤으로 주로 강돌로 축조한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이다. 이 고분은 사람 머리 크기의 강돌을 이용하여 봉분의 주위를 둥글게 돌린 호석(護石)을 갖추고 있으며 매장주체부인 주곽(主槨)과 부장품을 매납한 부곽(副槨)이 일렬로 배치된 형태인데, 주곽은 길이 5.5m, 너비 3.3m, 부곽은 길이 3.5m, 너비 4m의 장방형 모양을 띠고, 주곽의 바닥에 잔자갈을 여러겹 깔아 피장자를 안치한 목관을 두었다. 피장자의 머리쪽인 동편으로 부장품을 넣은 목궤(木匣)을 두었다. 목곽(木槨)의 상부에는 강돌과 같은 적석(積石)을 두께 1.0m 내외로 덮은 다음 흙으로 봉분을 쌓아올려 무덤을 마무리 하였는데, 봉분의 높이는 대략 5.0m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주곽의 중앙에는 피장자가 착장한 것으로 보이는 순금제 귀걸이(心葉形細環耳飾)와 유리구슬로 된 가슴장식(胸飾) 그리고 은으로 만든 허리띠징식(銀製銙帶)와 같은 장신구류와 삼엽(三葉)ㆍ삼루(三累)환두대도 등 장식대도(裝飾大刀)가 여러 점 부장되어 있어 신라시대 당시 주인공의 사회적 지위가 귀족이상의 수장층(首長層)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주인공의 머리맡에 설치된 부장궤(木匣)에서 백화수피제관모(白樺樹皮製冠帽)에 금동장식이 부착되고 여기에 다시 새날개모양(鳥翼形)의 금동제(金銅製)ㆍ은제(銀製)의 관식(冠飾)과 정수리 부분의 입식(頂部立飾)과 뒷꽂이와 같은 후입식(後立飾)이 모두 갖추어진 모자형태의 관(帽冠)은 신라고분에서 처음 출토된 자료이다. 이처럼 금동 및 은으로 장식한 모자형태의 관은 5세기 후반 ~ 6세기초 무렵 신라사회를 대표했던 왕의 무덤인 황남대총(皇南大塚)과 천마총(天馬塚), 금관총(金冠塚)에서 출토된 것과 형태와 구조가 유사한 것이어서 쪽샘지구 E-41호 주인공의 사회적 신분도 이에 상응하는 신라의 지배계층에 해당하는 인물이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더욱이 주인공의 부장궤(副葬匣)에서 100여점의 토기와 다수의 철제품과 함께 출자형(出字形) 대관(帶冠)의 모습을 집선문(集線文)으로 묘사한 대부장경호(臺附長頸壺)가 출토되어 관계연구자의 주목을 끌고 있다. (문화재청 보도자료)
대릉원. 쪽샘 부근 항공사진
쪽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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