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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모악산(불갑산) 불갑사(佛甲寺)

노촌魯村 2012. 9. 23. 05:23

 

불갑사 가는 도로 가로수 아래에 예쁘게 핀 꽃무릇(상사화)

 

불갑사 앞 들판 논두렁에도 핀 꽃무룻(상사화)

 

불갑사 일주문 

 

   

 

 

 

 

 

 

 

불갑사 금강문

불갑사 천왕문

 불갑사사천왕상 (佛甲寺四天王像.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9호. 전남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 산8)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 불갑사에 있는 사천왕상이다. 이 사천왕상은 진흥왕 1년(540)부터 35년(574)까지 연기조사 만든 것으로, 조선 고종 7년(1870)에 설두대사가 나무배 4척을 동원하여 현재의 곳으로 옮겨왔다고 전한다.
사천왕문 좌우편에 각각 2구씩 4구가 배치되어 있는 사천왕상은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동쪽은 지국천왕, 남쪽은 증장천왕, 서쪽는 광목천왕, 북쪽은 다문천왕이라 부른다.
지국천왕은 손에 4줄로 된 비파를 들고 있고, 증장천왕은 큰 칼을 가지고 있다. 광목천왕은 용과 구슬을 들고 있으며, 다문천왕은 창과 장식이된 탑을 들고 있다. 들고 있는 물건이 다를 뿐 이들 사천왕상은 표정이나 기법이 모두 비슷하다.
사천왕상은 고대 인도의 신(神)이었으나 불교가 생겨나면서 불교에 흡수된 신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

 

 

 

 

 

 

 불갑사 만세루

   

불갑사만세루 (佛甲寺萬歲樓.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66호. 전남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 8)

불갑사는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불교를 전파한 마라난타가 세웠다는 설과 각진국사가 세웠다는 설이 전한다.
만세루는 교육을 위한 강당 건물이다. 대개 절의 중심 공간으로 들어갈 때 누(樓) 아래로 드나드는 문루인 경우가 많은데, 화엄사의 보제루와 이곳 만세루가 낮은 중층을 이루어 건물의 모서리로 돌아가게 하였다. 절의 강당은 초기에는 대웅전 뒤에 있었으나 고려 이후부터는 대웅전 앞뜰에 설치하였는데 불갑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건축 수법이 기본 틀에서 벗어난 후기 양식을 보이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

 불갑사 만세루 주춧돌

 

 

 

영광 불갑사 대웅전 (靈光 佛甲寺 大雄殿.보물 제830호.전남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 8 불갑사)

불갑사는 백제 침류왕 원년(384)에 인도승 마라난타가 세웠다는 설과 무왕 때 행은 스님이 세웠다는 설이 있으나 세운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석가모니 불상을 모셔 놓은 법당인 대웅전은 18세기 이전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데, 기와 가운데 ‘건륭 29년(乾隆二十九年)’이라고 쓴 것이 발견되어 조선 영조 40년(1764)에 고친 것으로 짐작한다. 그 뒤 융희 3년(1909)에 수리하였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지붕 위부분에서 작은 석탑과 보리수를 조각한 장식을 볼 수 있으며, 가운데 칸 좌우의 기둥 위에는 용머리를 조각해 놓았다. 또한 가운데 칸에 달린 문은 연꽃과 국화 모양으로 꾸며 뛰어난 창살 조각 솜씨를 엿보게 한다. 건물 안쪽의 모서리 공포 부분에도 용머리를 장식하고 있고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꾸몄다. 화려한 무늬와 조각을 새긴 조선 후기 목조 불전 건축으로 시대적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어 중요한 연구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

 

일제시대 사진(출처:조선고적도보)

 

 

 

 

 영광 불갑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靈光 佛甲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불갑사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나무로 만든 삼세불좌상으로,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하여 왼쪽에는 약사불이 배치되고 오른쪽에는 아미타불이 자리하고 있다. 석가모니불은 주존불로서 삼불 가운데 가장 크고 건장한 신체에 넓은 무릎을 하여 안정되어 보인다. 육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머리에는 정상계주와 중앙계주를 큼직하게 묘사하였으며 네모꼴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엿보인다. 두 귀는 길어서 어깨까지 늘어졌고, 약간 굵어진 목에는 세 개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옷은 양어깨를 모두 덮고 있는 형식으로 오른팔을 드러냈으며, 옷주름은 두 다리 위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다. 손 모양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는데, 양손 모두 마치 실제 인물의 손처럼 표현하여 사실성이 돋보인다. 약사불과 아미타불 또한 불명확한 육계, 팽창된 얼굴, 분명한 이목구비, 부피감 있고 편안한 자세, 사실적으로 표현된 양 손,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옷주름 등의 세부 표현에서 본존인 석가모니불과 공통적인 특징을 보인다. 다만, 석가모니불에 비하여 크기가 다소 작아지고 양어깨를 모두 덮은 옷에 오른팔을 드러내지 않고 아미타인(阿彌陀印)의 손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불상 안에서 발견된 불상 조성기에 의하여 1635년 무염(無染)스님을 비롯한 승일·도우·성수 등 10인의 화승들에 의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무염비구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초기의 것으로, 전라도·충청도·강원도지역을 거쳐 폭 넓게 활약하던 무염일파의 작품과 경향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기준이 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문화재청 자료)

불갑사 대웅전 닷집

일제시대 사진(출처:조선고적도보)  

 

 

 

 

대웅전의 매화 벽화

 

尋春(봄을 찾다)

盡日尋春不見春

芒鞋遍踏隴頭雲

歸來偶過梅花下

春在枝頭已十分

하루 종일 봄을 찾아 다녀도 봄을 보지 못하고

짚신이 다 닳도록 언덕 위의 구름 따라 다녔네.

허탕치고 돌아와 우연히 매화나무 밑을 지나는데

봄은 이미 매화가지 위에 한껏 와 있었네.

(송나라 때 어떤 비구니스님이 도를 깨닫고 나서 지었다는 오도송)

  

 

 

 

 

대웅전 참새 벽화

 

 

 

 

 

 

 

대웅전 불상 뒤벽의 백의관음상 

 

 

 

불갑사 대웅전 옛 사진(출처:영광군청) 

각진국사비 

칠성각 

칠성탱화 

산신탱화 

나반존자 

 

명부전 

명부전의 지장보살 및 시왕(클릭하시면 원본 크기의 사진이 보임)

지장보살 

세심정 

대웅전 앞 마당의 괘불대 

 

불갑사 성보박물관 

 

 

 

 

 

 

 

 

 

 

 

 

 

 

 

 

 

 

 

 

 

불갑사 부도밭 

 

 

 

 

 

 

 

선 체험장 

엄동설한(嚴冬雪寒)을 견디는 꽃무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