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경상북도/군위

군위 불로리 마애보살입상 (軍威不老里磨崖菩薩立像)

노촌魯村 2013. 3. 30. 20:23

                

 

 

 

군위불로리마애보살입상(軍威不老里磨崖菩薩立像)

(경북 유형문화재  제265호.군위군 효령면 불로리 산1)

경상북도 군위군 효령면 불로리에 있는 마애보살상이다. 지면에서 약 7m 높이의 암벽에 새긴 서 있는 보살상으로 전체 높이는 2.4m이다.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있고 얼굴은 네모진 모습이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가슴 부분에 놓고 오른손은 손가락을 펴서 아래를 가리키고 있다. 가슴 윗부분은 반입체적으로 조각하고, 아래쪽은 얕게 돋을새김하거나 선으로 새김으로써 회화적 표현을 가미하였다. 이 마애보살상은 고려말 조선초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자료)

군위 불로리 마애보살입상의 전설

지면에서 약 7m의 암벽에 조각된 높이 2.4m의 마애보살입상은 고려말에서 조선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양홍씨 홍판교는 대대로 부자에다 열두 대문을 두고 하인도 많이 거느렸으니 마을에서 제일 부자요 권세도 있었다. 온 마을이 이 집으로부터 소작을 했고 년간 소작료만 해도 1만석이나 되었다. 그러므로 안동 예안 등 모든 손님은 이 집을 찾고 하루에 손님이 연일 100여명이었으니 안주인은 손님 접대에 늘 바빠다. 선조 때 나라가 기울면서 백성들은 몹시 가난했는데 스님이 부촌을 찾아다니며 시주를 구해 하루에도 몇 번씩 박타사의 스님들이 오자 안주인은 너무 많은 손님과 스님들 때문에 귀찮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봄, 인각사의 도승이 시주 차 왔는데 홍판교의 손자 장사랑 응경은 시주는 원하는 대로 할테니 손님을 줄일 방법이 없느냐 했다. 묵묵히 생각하던 대사는 홍부자에게 석공 3명을 구해 박타산 지류 절벽 암반에 미륵불상을 조각토록 했다. 곧 석공을 불러 수십일 동안 불상을 조각하고 남쪽 암벽에 나무아미타불을 각자하게 했다. 대사가 떠나면서 3년 이내 손님이 끓어질 것이라 했다. 그 후 홍부자는 차차 가산이 기울어 자연 손님들도 발걸음을 돌렸다. 후일 지관의 말에 의하면 홍부자의 집터는 제비혈이고 불상터는 제비가 날아가는 형의 제비의 눈인데, 이곳에 불상을 조각하여 제비가 오지 못하니 자연 제비집의 제비알은 부패 되어 망했다고 한다. 남양홍씨는 한 사람씩 이곳을 떠나 불상이 보이는 반대쪽인 영천, 의성 등지로 이사했다. 지금도 마애보살입상에 치성을 드리면 영험이 있다고 한다.(경상북도 : 전설과 함께하는 경북관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