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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충무사(忠武祠)

노촌魯村 2015. 2. 7. 23:30

 

 

 

 

 

 

 

 

충무사(忠武祠.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48호.전남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 산28-1번지)

임진왜란 때 공이 컸던 충무공 이순신과 정운, 송희립을 모시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은 조선 선조 12년(1579)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강포·한산도 등지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정유재란 때 명량에서 대승을 거두었으며 노량진에서 순절하였다.
충장 정운(1543∼1592)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선조 3년(1570)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서 옥포·당포·한산도 등 여러 해전에서 큰 공을 세웠다. 9월 부산포 해전에서 우부장으로 선봉에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송희립 장군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정운 장군의 군관으로서 영남지역에 원병파견을 주장하였고, 이순신의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숙종 16년(1690)에 주민들이 사당을 짓고 충무공의 위패를 모셨으나 1944년 일본인들이 불태워 순천향교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다시 지었다. 이순신 장군의 탄생일과 귀천일에 제향을 모시고 있다.
건물은 모두 4동으로 중심 건물인 사당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이다. (출처:문화재청)

 

 

 

여기 순결의 터를 기른

일찍이 푸른 파도 이랑마다에
만복이 실려와서
비경 중의 비경을 이루고
풀과 나무와 사람들을 늠름히 키운
신성리의 바다가 있었다.
여기에
  
한 시절에는 왜적에게 볼모가 되어
축성에 피와 땀을 공출당하기도 하였으나
분기하고 분출하여
충무공의 깃발 아래서 되찾은 강산
오늘도 흠모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여기에

 

물반 고기반의 바다

뻘반 조개반의 갯벌에 의지하여

흰구름과 같은 소박과

갈대같은 투혼의 후손들이 자랐다

여기에

 

공단의 새 물결이 밀려와

우리 사랑 신성리의 바다는

우리들의 눈물속에 아득히

그리움만을 남긴 채 묻혀버렸다

여기에

 

지심 저 깊숙이

이 마을 사람들

배띄어 고기 건지던 평화와

정월 대 보름날 줄다리던 함성과

문절이 짱뚱이 고막 석화 바지락들

꿈이 산호와 진주로 영글어 있으리

여기에

  

오 바람이여 신성리의 바람이여

잃어버린 우리의 바다를 노래하며

강강수월래 원무를 돌자

누가 여기 신성리의 터를

신성하지 않다 하랴

세세

손손

태평하라

번영하라

영광하라


-  정채봉의 <여기 순결의 터를 기른> 시비에서 -

충무사(忠武祠)에서 본 순천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