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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구미

구미 대둔사(龜尾 大芚寺)

노촌魯村 2017. 9. 10. 22:06


구미 대둔사(龜尾 大芚寺.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옥관리 1090)

구미 대둔사는 구미시 옥성면의 복우산 동쪽 중턱에 남북으로 길게 대지를 조성하여 자리한 사찰로 신라 눌지왕 30(446) 아도화상(阿度和尙)이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창건 후 고려 고종 18(1231) 몽골족의 침략으로 불타버린 것을 충렬왕의 아들 왕소군(王小君)이 출가하여 다시 세웠고, 그 후 선조 39(1606)사명대사 유정(四溟大師 惟政)이 중건하여 승군(僧軍)을 주둔시켰다  

현재의 사역은 원래 대둔사의 암자인 청련암(靑蓮庵) 자리이며, 현재 자리에서 서남쪽 약 300m 지점에 대둔사 옛터가 남아 있다. 현재 대웅전은 진입로에 요사채(스님들이 머물며 생활하는 건물), 입구 오른쪽으로 명부전, 왼쪽으로는 석축을 두고 있으며 명부전 북쪽으로 3단의 응진전 등이 남아 있다.



대둔사 대웅전(大芚寺 大雄殿. ‘구미 대둔사 대웅전’ 보물 지정 예고.2017년 9월 1일)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은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구미 대둔사 대웅전(龜尾 大芚寺 大雄殿)’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1987년 대웅전 수리 중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광해군 6(1614)부터 순조 4(1804)까지 다섯 차례 수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지붕에 건륭31년 병술(1766)’이라고 기록한 망와(장식기와)가 다수 남아 있어 건물의 역사를 입증하고 있다  

대웅전은 경사지를 따라 조성하면서 앞쪽에 높은 장대석(長臺石) 석축과 계단을 두었으며 그 위에 장대석 기단과 자연석 초석을 놓고 원기둥을 세웠다. 건물은 정면 3,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며, 조선 시대의 전형적인 다포(多包)계 건물이다.

* 기단과 초석: 기단은 지면으로부터 집을 높여주는 역할을, 초석은 기둥 밑에 놓여 기둥에 전달되는 지면의 습기 차단 및 건물 하중을 지면에 효율적으로 전해줌

* 팔작지붕: 양 측면에 삼각형 모양의 합각면이 있는 지붕

* 다포(多包): 공포를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배열한 것  

지붕의 네 모서리에는 팔각형 활주(活注, 추녀 밑을 받친 보조기둥)를 두었으며 창호는 정면 가운데에 꽃살 여닫이문과 배면 우측의 영쌍창(창호 가운데 기둥이 있는 창)이 고전적인 건축양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강직하면서도 장식성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1718세기 건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물천장 등의 구조와 내부 닫집의 섬세한 조각형태 그리고 건립 당시로 추정되는 단청문양이 잘 남아 있다.

* 공포(栱包): 지붕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 기둥 윗부분 등에 짜 맞추어 댄 구조물

* 닫집: 사찰 등에서 불상을 감싸는 작은 집이나 불상 위를 장식하는 덮개  

이처럼 구미 대둔사 대웅전은 형태, 구조, 장식 측면에서 볼 때,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역사적, 건축적, 예술적 가치가 충분하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한 구미 대둔사 대웅전에 대하여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수렴된 의견을 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출처:문화재청)



대둔산 대웅전(남.측면)

통풍을 위하여 나무 창문을 설치하였다.

대둔산 대웅전(북.측면)

불범을 수호하는 신장과 관세음보살을 흙벽에 그려 넣어 위엄을 더했다.

대둔산 대웅전(북.측면)

대둔산 대웅전 측면(북)과 후면(서)


대둔산 대웅전 후면(북)과 측면(남)

대둔산 대웅전 측면(북)과 후면(서)

대둔산대웅전(후면. 서)



구미 대둔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龜尾 大芚寺 乾漆阿彌陀如來坐像.보물  제1633호.경북 구미시 옥성면 산촌옥관로 691-78 (옥관리))

대둔사 건칠여래좌상은 정상계주만 이후의 보수일 뿐 원래의 상태가 잘 남아 있는 작품이다.
X-ray 촬영 결과 상호와 불신은 건칠로 제작되고 양손은 나무로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균형잡힌 비례와 이중의 대의를 입은 착의법, 감탕기법으로 만들어 붙인 나발, 양 무릎 밑으로 모아진 양쪽의 대의자락 그리고 왼쪽무릎에 늘어진 소매 자락 등에서 고려후기 14세기 불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인다.
더구나 고려시대 건칠여래상은 나주 심향사를 비롯한 전라도 지역에 몇 사례가 있을 뿐인 귀한 재료인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13세기의 복잡한 형식에서 점차 단순해져가는 단계에 해당하는 양식을 보이는 작품으로서 건칠이라는 재료적 특성과 1m(105.5cm)가 넘는 크기다.
비록 이 불상의 제작연대와 조성주체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경북지역에서 드물게 확인되는 건칠기법으로 일정한 두께로 완성도 높은 불상을 만들어 낸 점에서나 고려후기 불상에서 조선 초기 불상으로 이어지는 불교조각의 전개과정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불상이다. (출처:문화재청)


우물천장 등의 구조와 내부 닫집의 섬세한 조각형태 그리고 건립 당시로 추정되는 단청문양이 잘 남아 있다.




대웅전 닫집과 우물천장



명부전

명부전 내부(지장보살)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단층집이다. 명부전 내에는 지장보살과 시왕상이 모셔져 있다.



명부전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 벽화(동.측면)

명부전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 벽화(후면.북)

명부전 벽화(서.측면)

응진전

응진전에는 흙으로 만든 석가여래삼존상을 비롯한 16나한상과 동자상·나한탱화 등이 봉안되어 있다.

응진전 내부



삼성각


구미 대둔사 맷돌

대둔사 석산(石蒜. 가을가재무릇. 꽃무릇)

 


대둔사 석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