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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목포의 눈물 노래비

노촌魯村 2017. 12. 4. 20:53


목포의 눈물 노래비

이순신 장군의 동상과 오포대를 뒤로 하고 40m만 올라가면 바윗돌 위에 목포가 낳은 국민가수 이난영(본명 이옥례)'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있다. 노래비에는 사시사철 이난영의 노래를 들을 수 있도록 녹음 장치를 해놓았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씨 아롱 적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임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설움...
깊은 밤 조각달은 흘러가는데 어쩌다 옛 상처가 새로워진다.
못 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에 맺은 절개 목포의 사랑...


일제하 우리 민족 모두의 망향가, 시름가, 진혼곡

종로 거리의 레코드 가게 축음기들은 밤낮없이 '목포의 눈물'을 틀어댔다. 당시 레코드 가게들이 진열장에 써 붙여 놓은 가사 앞에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가사를 외우려는 사람들로 연일 붐빌 정도였다.

'목포의 눈물'은 지금도 널리 애창되고 있으니 실로 새로운 민요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울밑에 선 봉선화 '는 가곡으로 당시 우리나라를 상징하였고, '목포의 눈물'은 유행가로 나라 잃은 슬픔을 달래는 노랫말이 되었다. 유달산 기슭에 세워진 이 비는 1969610일 목포악기점을 하는 박오주(朴午周)씨가 기증하여 세워졌는데 이 노래비는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가요 노래비로서 더욱 의미가 있다. '목포의 눈물'은 그래서 목포시민들에게는 흘러가는 단순한 유행가가 아닌 것이다.

노래탄생배경

1934년 조선일보에서 전국 6대 도시를 대상으로 한 향토노래 공모를 했다. 이 때 목포에서 응모한 문일석(본명 윤재희)<목포의 노래>라는 작품이 전국 신민요가사 현상공모 당선작으로 선정되자 당대의 유명한 손목인 씨의 작곡을 거쳐 <목포의 눈물> 이라는 노래로 탄생한 것이다. 이 노래는 1935년에 발표되어 일제 수탈의 서러움으로 응어리진 2천만 온 겨레의 심금을 울림으로써 가수 이난영을 전 국민적인 불멸의 가수로 기억되게 하였다.(출처:목포시청)



목포의 눈물 노래비에서 본 목포항과 삼학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