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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안동

안동 운흥동 오층전탑(安東 雲興洞 五層塼塔)과 안동 운흥동 당간지주(安東雲興洞幢竿支柱)

노촌魯村 2022. 2. 10. 13:13

안동 운흥동 오층전탑 ( 安東 雲興洞 五層塼塔)

안동 운흥동 오층전탑(安東 雲興洞 五層塼塔. 보물. 경북 안동시 운흥동 231번지)

안동시 운흥동(舊안동역)에 있는 탑으로, 전탑塼塔(塼벽돌 전)의 형태를 띠고 있다. 안동 지방에는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전탑이 다소 있는데, 전탑이란 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은 탑을 이른다.

탑은 무늬 없는 벽돌로 5층을 쌓았다. 몸돌에는 층마다 불상을 모시기 위한 방인 감실(龕室)을 설치했고 특히 2층 남쪽 면에는 2구의 인왕상(仁王像)을 새겨두었다.

지붕돌은 벽돌을 사용한 것에서 오는 제약 때문에 처마 너비가 일반 석탑에 비해 매우 짧다. 밑면의 받침 수는 1층부터 차례로 10단·8단·6단·4단·3단으로 줄어들었고 처마 끝에는 기와골을 받기 위해 총총한 나무를 얹고 4층까지 기와를 입혀 놓았다. 이러한 지붕모양은 탑신의 감실과 더불어 목탑양식의 흔적을 보여준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으로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만 남아 있다.

이 전탑은 통일신라시대의 탑으로,『동국여지승람』이나『영가지(永嘉誌)』에 기록된 법림사(法林寺)의 전탑으로 추정된다.

『영가지』에 법림사전탑이 7층이라는 점, 조선시대에 크게 보수를 하였다는 점, 탑의 머리장식은 법흥사탑(法興寺塔)과 같이 금동제였으나 임진왜란 직후 명나라 군인들이 도둑질해 갔다는 사실 등이 기록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지금의 모습과는 큰 차이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출처 : 문화재청)

 

현재 높이는 8.85m이다. 그러나 『영가지』에 칠층전탑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본래는 이보다 훨씬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 중수 때 규모도 작아지고 형태도 많이 변한 것으로 보인다.

기단은 따로 없으며 장대석을 계단식으로 3단 쌓고 그 위에 바로 벽돌의 탑신을 올렸다.

초층 남면에는 작은 감실이 있는데 높이 47㎝, 폭 55㎝이다. 불상을 안치했을 것이다.

2층 남면의 중앙부에는 인왕상 2구가 조각된 화강암 판석이 끼워져 있으며, 2층 측면과 3층 전면에는 벽돌 한 장 크기의 구멍이 있다. 이러한 인왕상이나 작은 구멍들은 모두 감실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작은 구멍은 중국 전탑에서 보이는 광창이 변하여 나타난 것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탑의 지붕돌은 전체적으로 기와가 덮여 있다. 그러나 지붕돌의 폭이 매우 좁고 몸돌 전체로 보아 균형이 맞지 않아 몸돌 전체 또는 지붕돌은 본래의 형태에서 크게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로 미루어 조선 후기에 중수되면서 본래 없던 기와를 전면적으로 올렸을 것으로 보인다.

『영가지』에는 법림사 칠층전탑으로 나와 있어서 이곳에 법림사라는 절이 있었음을 알 수 있고, 금동 상륜을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명나라 군사들이 1598년 떼어갔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루어 다른 전탑처럼 금동 상륜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영가지』에는 또 같은 경내에 17칸의 철기둥[鐵柱]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사찰 내에 있던 철제 당간이었을 것이다. 현재 탑의 서쪽에 화강암의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56호로 지정되었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

                        

탑은 무늬 없는 벽돌로 5층을 쌓았다. 몸돌에는 층마다 불상을 모시기 위한 방인 감실(龕室)을 설치했고 특히 2층 남쪽 면에는 2구의 인왕상(仁王像)을 새겨두었다. 

             

기단은 따로 없으며 장대석을 계단식으로 3단 쌓고 그 위에 바로 벽돌의 탑신을 올렸다.
초층 남면에는 작은 감실이 있는데 높이 47㎝, 폭 55㎝이다. 불상을 안치했을 것이다.
몸돌에는 층마다 불상을 모시기 위한 방인 감실(龕室)을 설치했고 특히 2층 남쪽 면에는 2구의 인왕상(仁王像)을 새겨두었다.
2층 남쪽 면에는 2구의 인왕상(仁王像)을 새겨두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으로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만 남아 있다.(출처:국립문화재연구소)
안동 운흥동 오층전탑(安東 雲興洞 五層塼塔)과 안동 운흥동 당간지주(安東雲興洞幢竿支柱)

안동 운흥동 당간지주(安東雲興洞幢竿支柱.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경상북도 안동시 운흥동 231)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면 이곳에 당이라는 깃발을 걸어두는데, 이 깃발을 거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고, 당간의 양쪽에 서서 이를 지탱시켜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이 당간지주가 속해 있던 절의 이름은 알 수 없으나 동쪽에 있는 운흥동오층전탑과 같은 절의 유적으로 보인다.

한국전쟁 때 일부가 파손된 이 당간지주는 양 기둥에 아무런 조각을 새기지 않아 간결하며, 기둥 사이에는 당간을 꽂는 둥근 받침돌이 놓여 있다. 기둥 안쪽 면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홈을 파 놓았다.

윗부분의 일부가 파손되어 완전한 모습은 아니나 소박하고 간결한 모습이며,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짐작된다.(출처 : 문화재청)

       

기둥 사이에는 당간을 꽂는 둥근 받침돌이 놓여 있다. 기둥 안쪽 면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홈을 파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