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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남지장사(南地藏寺)

노촌魯村 2022. 4. 11. 23:16

남지장사(南地藏寺.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남지장사길 95(우록리 872))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

남지장사(南地藏寺)는 최정산(最頂山) 남쪽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임진왜란 때 사명 대사(四溟大師)와 의병장 우배순의 의병들이 훈련한 장소이기도 하다.

684년(신문왕 4)에 양개 조사(陽价祖師)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1260년 보각 국사(普覺國師)일연(一然)이 중창하였으며, 1653년(효종 4)에 승려 인혜(印惠)가 대규모 사찰로 다시 건립하였다.

이때 세워진 전각이 11개에 달한다. 또한 인혜의 명으로 거사 손응적(孫應迪)이 삼존상과 조사의 진영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1676년(숙종 2)에는 승통 관숙 등이 법당을 수리하였다.

1680년(숙종 6)에는 대덕 승민이 남지장사 청련암(南地藏寺靑蓮庵)을 창건하였다.

1684년(숙종 10)에 승통 태순이 시왕전을 서쪽 산기슭으로 옮겼으며, 1689년(숙종 15)에 팔도 도승통 영남도 총섭 가선대 부인 축부가 현당을 중창하였다.

1694년(숙종 20)에 승려 승민이 신륵사로 가서 지공, 나옹, 무학 등 삼화상의 영정을 모사하여 이곳에 봉안하였고, 아울러 나옹 화상이 고려왕으로부터 받은 발우와 지공이 받은 향완 등을 이곳으로 가져와 함께 봉안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게 점령되어 화재로 소실된 후에 인혜가 1653년(효종 4년) 중건하였고, 1767년(영조 43) 모계(慕溪)가 중창한 뒤 팔공산 내의 북지장사와 서로 대칭되는 곳에 위치한 절이라 하여 남지장사라 하였다. 그전의 절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남지장사는 산중턱 축대를 성벽처럼 높이 쌓아 지대를 2단으로 조성한 후 건물을 세웠다. 현재 대웅전(大雄殿), 극락보전(極樂寶殿), 삼성각(三聖閣), 광명루(光明樓), 요사채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광명루 동쪽에는 운계당 대선사 휘축인 송덕비(雲溪堂大禪師諱竺寅頌德碑), 모계당 대선사 휘취례 송덕비(慕溪堂大禪師諱取禮頌德碑)」, 경운당 대선사 휘영화 선덕비(景雲堂大禪師諱永化善德碑) 등 남지장사 비석군(南地藏寺碑石群)이 위치해 있다. 부속 암자로는 남지장사 청련암과 남지장사 백련암(南地藏寺白蓮庵)이 있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

 

대구 남지장사 석조석가여래삼존좌상(大邱 南地藏寺 石造釋迦如來三尊坐像.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남지장사길 95(우록리 872))

대구 남지장사 석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석가여래상을 중심으로 양쪽에 보살상이 있는 모습이다. 석가여래상은 양 옆의 보살상들보다 크게 만들어 본존불(本尊佛)*을 강조하였다. 삼존(三尊)**상 모두 온화한 인상으로 고개를 약간 내밀었고, 다리는 가부좌를 하고 있다.

고개를 내민 자세, 짧은 신체비례와 높은 무릎, 네모난 얼굴 등 조선 후기 불석제(佛石製) 불상의 특징이 있다. 그러나 17세기 경상도에서 유행하였던 전형적인 불석제 불상과는 다른 특성이 있다. 석재 재질로 만들었지만 목조와 같은 부드러운 조형미, 보살상 천의의 옷주름과 띠매듭 등의 표현이 특징적이다.

제작 시기는 불상의 비례나 옷 표현 방법 등으로 비추어볼 때 조선 시대 17세기 후반으로 추정한다. 조선 후기 불교 조각 연구와 불석제 불상, 조각승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본존불(本尊佛) : 으뜸가는 부처라는 뜻으로, 석가모니불을 뜻함

**삼존(三尊): 본존불과 그 양 옆에 모시는 부처나 보살

(출처 : 문화재청)

‘대구 남지장사 석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석가여래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상이 위치하였으며 석가여래상을 보살상들보다 크게 조성하여 본존불임을 강조하였다.

삼존상 모두 고개를 약간 내민 자세로 결가부좌하였는데 온화한 인상과 석재이지만 목조와 같은 부드러운 조형미 등이 특징적이다.

이 삼존상의 고개를 내민 자세, 짧은 신체비례와 높은 무릎, 방형 얼굴, 착의법 등에서 일반적인 조선후기 불석제(佛石製) 불상의 특징을 보이고 석재이면서도 부드러운 얼굴 표현과 옷주름, 보살상 천의의 옷주름과 띠매듭 등이 주목되는 작품이다.

제작 시기는 비례와 착의법 등에서 조선시대 17세기 후반기 불상으로 추정되며 경상도지역에서 활동하며 불석제 불상을 조형한 승일 계보의 조각승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남지장사 석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17세기 중후반경 경상도지역에 유행했던 불석제 불상으로 기존 알려진 조각승들과 차별되는 조형성을 보이고 있어 조선후기 불교조각 연구와 불석제 불상, 조각승 연구에 귀중한 학술자료적 가치가 있다.(출처 : 문화재청)

 

대구 남지장사 석조지장보살좌상(大邱 南地藏寺 石造地藏菩薩坐像.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남지장사길 95(우록리 872))

대구 남지장사 석조지장보살좌상은 효종 10년(1659)년 조각승 승호(勝湖)가 만들었다. 승호는 17세기 후반기 경상도에서 불석제(佛石製) 불상을 조성한 유명한 조각승인데, 이 보살상은 승호가 수조각승(彫刻刻僧)*으로서 만든 첫 작품이다.

이 보살상은 고개를 앞으로 내민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짧은 신체비례와 긴 눈꼬리가 돋보인다. 아울러 네모난 얼굴 모양, 통견식(通肩式)** 옷 등 전형적인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제작 시기, 제작자, 조성 사찰 등이 명확하여 조선 후기 불교 조각의 양식적 변천과 조각승 승호 계보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수조각승(彫刻刻僧): 여러 승려가 불상을 공동으로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우두머리 조각승

**통견식(通肩式): 겉옷이 어깨를 모두 덮도록 승복을 입는 방법

(출처 : 문화재청)

‘대구 남지장사 석조지장보살좌상’은 1659년 조각승 승호(勝湖)에 의해 조성되었으며 고개를 내민 자세, 방형 얼굴, 변형통견식 착의법 등에서 전형적인 조선후기 불상의 특징과 함께 짧은 신체비례, 눈꼬리가 긴 눈매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승호는 17세기 후반기 경상도지역에서 불석제(佛石製) 불상을 조성한 조각승으로 유명한데 남지장사 석조지장보살좌상은 그가 처음 수조각승이 되어 만든 작품으로 밝혀진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지금까지 승호는 1640년 차화승(次畵僧)으로 등장한 이래 1670∼80년대에 이르러 수화승(首畵僧)으로서 활동하였던 것으로 밝혀졌으나 남지장사 불상을 통해 20년 정도 앞당겨진 것이다.

이 불상은 제작시기, 제작자, 조성 사찰 등이 명확하고 17세기 불석제 불상제작에 두각을 나타낸 승호의 조형성이 드러나 조선후기 불교조각의 양식적 변천과 조각승 승호 계보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적 가치가 있다.(출처 : 문화재청)

 

극락보전
극락보전 아미타불
극락보전 (목련존자사리. 부처님 진혈사리. 사리불존자 사리)
산령각
산신. 칠성탱화. 나반존자
용왕단
샘(용왕단)

광명루 동쪽에는 운계당 대선사 휘축인 송덕비(雲溪堂大禪師諱竺寅頌德碑), 모계당 대선사 휘취례 송덕비(慕溪堂大禪師諱取禮頌德碑)」, 경운당 대선사 휘영화 선덕비(景雲堂大禪師諱永化善德碑) 등 남지장사 비석군(南地藏寺碑石群)이 위치해 있다.

운계당 대선사 휘축인 송덕비 ( 雲溪堂大禪師諱竺寅頌德碑 )
모계당 대선사 휘취례 송덕비 ( 慕溪堂大禪師諱取禮頌德碑 )
경운당 대선사 휘영화 선덕비 ( 景雲堂大禪師諱永化善德碑 )
남지장사 벚나무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해님이 쓰다 버린 쪽박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