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행이 하루 신세 진 호텔
장액
장액의 아침
하서주랑 중부에 위치하는 장액(장예)은 옛부터 실크로드를 통해 동서를 연결하는 요충지였다. 한과 청대에는 장액 현이 설치되었고, 후기에는 토번에 복속되었으며, 원대에는 한약재인 감초의 특산지로 감주라 불렸다. 청 후기에는 다시 장액 현으로 바뀌었으며, 마르코 폴로에 의해 유럽에는 칸 피추로 소개되었다.
광장에서 아침 운동 중인 중국 사람
광장에서 아침 운동 중인 중국 사람과 탑(하늘에는 제비가 가득 ...)
장액 시가지
대불사(大佛寺)
대불사(大佛寺) 입구의 골동품 거리
대불사(大佛寺) 입구의 골동품 거리
대불사(大佛寺) 입구의 골동품 거리
대불사에는 길이 3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와불과 부처님의 열반을 지키며 도열해 있는 10대 제자들의 소상이 동방견문록 속 묘사와 조금도 다를 바 없이 남아있다. 대불사는 1098년 창건됐는데 장예는 원(元)나라 세조인 쿠빌라이칸(1215~1294)의 고향이며 그의 어머니 역시 사후에 이곳에 안치되었다. 이런 이유로 대불사에는 티베트불교를 따랐던 원나라 왕실의 영향을 보여주듯 거대한 티베트식 불탑이 서 있다.
대불사(大佛寺) 현판
장액 시내에 위치하는 대불사는 서하(西夏) 영안 원년(1098년)에 창건되었으며 원래에는 가섭여래사(迦葉如來寺)였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도 소개된 길이 35m, 어깨 너비 8m에 이르는 중국 최대의 실내 와불상이 있는데, 조각 균형이 잡히고 표정도 부드럽고도 침착하며 두 눈을 반 쯤 감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불전, 장경각, 흙탑 세 곳이 있는데, 장경각에는 명대 영종(1427-1464)이 하사한 6,000여 권의 티벳 불교의 경전이 소장되어 있고, 대불전 뒤에는 높이 33.37m의 티벳 양식의 금강보좌탑이 있다. 대불사 경내의 한쪽 옆에는 장액박물관이 있는데 현장스님이 인도순례의 기행을 기록한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가 전시되어 있다.
대불사(大佛寺) 대불전 앞의 향로
대불전
예불 중인 스님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도 소개된 길이 35m, 어깨 너비 8m에 이르는 중국 최대의 실내 와불상이 있는데, 조각 균형이 잡히고 표정도 부드럽고도 침착하며 두 눈을 반 쯤 감고 있다.
와불상의 얼굴 부분
와불상의 발 부분
대불사 경내의 한쪽 옆에는 장액박물관이 있는데 현장스님이 인도순례의 기행을 기록한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가 전시되어 있다.
대불전 뒤에는 높이 33.37m의 티벳 양식의 금강보좌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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