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성
사적 제22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탑동, 남산동, 배반동, 배동
이 성은 신라 진평왕13년(591)에 쌓았으며, 문무왕 3년(663)에는 성내에 큰 창고를 지어 무기와 군량미를 비축했으며, 또 동왕 19년(679)에는 성을 크게 중축했는데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의 흔적은 이때의 것으로 보고 있다. 적당히 다듬은 돌로 쌓은 성벽은 대부분 붕괴되었으나, 잘 남아 있는 곳의 상태로 보아 높이는 약 2m로 보여진다. 주변에서 발견된 남산산성 축성비의 파편에 의하면 남산산성을 법에 의하여 쌓되, 3년 이내에 허물어지면 벌을 받을 것을 서약한다는 내용과 함께 관계한 사람들의 벼슬, 성명, 출신지가 새겨져 있다.(문화재안내문에서)
남산신성 남문 자리 기와편
경주남산 장창곡(일정 시)
경주남산신성(일정 시)
남산신성(일정 시)
남산신성비(南山新城碑)
남산신성을 쌓을 때의 내용을 자세하게 기록한 비석으로, 신라 중고기의 지방 통치 체제와 역력 동원 체제 및 지방민의 신분 구성, 촌락민의 생활상을 보여 주는 귀중한 금석문이다. 남산신성비 각각의 비석 크기는 일정하지 않고 재료는 자연 화강석을 사용하였다. 비문은 고졸한 서체로 음각하였고 행의 수와 글자 수는 일정하지 않다. 비문은 건립 연월일과 서약문,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직명, 출신지, 이름, 관등명, 공사 담당 거리 순서로 기재되어 있다.
제1 남산신성비(번호는 비석이 발견된 순서임)의 내용
비석의 크기 : 높이 88cm, 너비 약42cm, 두께 약11cm
글자 : 한줄에 20자 씩 아홉 줄
"신해년 (진평왕 13년 A.D 591) 2월 26일 우리들은 남산에 신성을 쌓는 일을 맡았는데 정해진 법대로 어김없이 쌓을 것을 맹세한다. 만일 완성된 날부터 3년 이내에 무너졌을 때에는 우리들은 하늘로부터 벌을 받을 것이다"라고 서약하는 글을 새기고 감독 지휘자들과 동원된 마을의 대표자들과 목수, 석공들의 계급과 직책이 새겨져 있는데 모두 15명이 기록되어있다. 감독 지휘자 세 사람은 대사(大舍; 17등급 중에 12등급)급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지방직과 기술자들이다. 이 비석에 적힌 15명은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11보 3척 8촌 길이의 성벽을 쌓았는데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15.52m 정도가 된다.
발견 시의 모습(일정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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