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천관사지를 찾아갔습니다.
'가인(佳人)이 말 앞에 울고 있는 모습'은 그림으로 남았고
세월의 무게에 쓰러진 탑은
미국쑥부쟁이(꽃) 속에 숨어있었습니다.
경주 천관사지(慶州 天官寺址. 사적 제340호.경북 경주시 교동 244번지)
산 서쪽 기슭 논 가운데에 있는 절터로서 현재 석재와 기와조각들만 남아 있다. 통일신라 전기에 있던 절로, 김유신과 천관이라는 기생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시절에 김유신은 천관이라는 기생과 사랑에 빠져 지내다가, 어머니의 꾸중으로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한다. 어느날 말이 술에 취한 유신을 천관의 집 앞으로 데려가자, 유신은 말의 목을 베고 냉정하게 천관을 뿌리친다. 이를 슬퍼한 천관이 자살을 하고, 후에 유신은 천관이 살던 집에 천관사를 지어 그녀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고 한다(출처:문화재청)
2006년 4월 19일에 블로그에 올린 글
천관사지 폐탑 기단부
천관사(天官寺)터
재매정 집에서 월성 쪽으로 올라와 남천의 월정교(月精僑)를 건너서 경주시 교동 145번지 들가에 이르면 김유신이 청년 시설 사랑한 여인 천관녀의 집이 있던 곳에 세운 천관사터가 지금도 있다.
논둑에는 무너진 석탑재(石塔材)가 남아 있는데, 그 모양이 특이하다. 4각의 탑재에다 8각의 구조물을 받쳤던 턱이 조각되어 있다. 천관사는 김유신이 사랑하던 천관녀를 위해서 세운 원찰(願刹)이라는 점 때문에 인간적인 정감이 흐르는 곳이다.
김유신은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영웅이다. 그의 극적인 일생 중에 어렇듯 인간적인 사랑이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다. 우리 나라의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전기를 살펴보면 너무 성인 군자같이만 기록되어 있어서 오히려 삭막한 느낌을 주는 것이 많다. 이런 점에서 천관사터는 따뜻한 인간미가 넘치는 유적으로 중요하다.
김유신이 청년이었을 때 천관이란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에 김유신의 어머니는 “장차 너는 나라의 대들보가 되어 공명을 세우고 왕에게 충성하여 부모를 영화롭게 하기를 바랐는데 천한 여인과 더불어 놀아나다니 이게 웬말이냐”하고 울며 꾸짖었다. 김유신은 천관녀의 집에 드나드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그런던 어느날 김유신이 술에 취해서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그만 말이 늘 가던 천관녀의 집으로 가고 말았다. 천관녀는 한편으로 반기고 한편으로 원망하여 울면서 나와 김유신을 맞이하였다. 김유신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머니와 약속을 어긴 꼴이 되어 차고 있던 칼로 말의 목을 베고 말안장을 버린 채 돌아오고 말았다. 그 후 천관녀는 매정한 임을 그리는 일로 일생을 보내면서 사랑의 원사(怨詞)를 지어 노래로 불렀다,.
정식 결혼을 하지 못하였어도 김유신은 천관녀를 위해서 집자리에 원찰을 지어 줄 만큼 대단히 사랑이 깊었던 것이다. 김유신은 천관녀가 죽고 난 후 때때로 천관사에 들어 그 녀의 극락왕생을 빌며 그리움에 잠겼을 것이다.
천관사 창건의 연유가 이와같이 애절한 연정의 역사가 되어 고려 명종 때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를 지낸 이공승(李公升:1099-1183)이 여기에서 천관사란 시를 남겼다.
천관사 옛 사연을 들으니 처연하다
정 많은 공자가 꽃 아래 놀았더니
원망을 품은 가인(佳人)이 말 앞에 울었네
말은 유정하여 옛길을 알았는데
하인은 무슨 죄로 부질없이 채찍을 더했던고
남은 한 곡조의 가사가 묘하여
“섬토(蟾ꟙ)가 함께 산다는 말”
만고에 전한다.
조선 성종 때 대제학 좌찬성을 역임하고 시문에 능하여 해동(海東)의 기재라는 찬탄을 받으며 ‘동인시화’ ‘동문선’ 등을 남긴 서거정(1420-1488)이 김유신의 묘 앞을 지나면서 ‘과유신묘(過庾信墓)’란 시문을 남겼다. 이 시구 속에 김유신과 함께 그 이름이 전하는 천관녀의 사연을 남겼다.
천관사 오래이니 지금 어드멘고
만고에 아름다운 여인 그 이름이(김유신) 따라 전하네
天官寺古知何處 萬古蛾眉姓字隋
발굴하기 전의 석재
탑의 상층기단 갑석
http://www.seelotus.com/gojeon/gojeon/seol-hwa/cheon-kwa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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