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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경주인근자료

문무대왕비(文武大王碑)

노촌魯村 2020. 12. 13. 22:24

[출전 : 『譯註 韓國古代金石文』Ⅱ(1992)]
[출전 : 『譯註 韓國古代金石文』Ⅱ(1992)]

<1행> … 국 신라 문무왕릉의 비이다. 급찬(及飱)인 국학소경(國學少卿) 김▨▨(金▨▨)가 교(敎)를 받들어 찬하다.
<2행> … 하늘을 짝하여 사물을 잘 다스리고, 땅의 경계를 구분하며, 덕을 쌓아 … 시대의 어려움을 구제하고, 신에 응하여 …
<3행> … 경진씨(鯨津氏)를 파견하여, 삼산(三山)의 궐(闕)을 비추고, 동으로는 개오(開梧)의 지경을 막고, 남으로는 ▨계(▨桂)의 ▨과 이웃하고, (북으로는) 황룡을 맞아 주몽(朱蒙)을 태우고, … 백무(白武)를 이어 받아 …을 우러르며 …
<4행> … 그 능한 바를 다 잘하여 이름과 실제가 다 이루어지고, 덕과 지위가 겸하여 융성해지니, 땅은 8방(八方) 먼 곳까지 걸쳐 있고, 그 훈공은 삼(한)(三(韓))에 뛰어나, 그 높고 넓음을 다 일컬을 수가 없는 분이 우리 신(라) …
<5행> … 그 신령스러운 근원은 멀리서부터 내려와 화관지후(火官之后)에 창성한 터전을 이었고, 높이 세워져 바야흐로 융성하니, 이로부터 ▨지(▨枝)가 영이함을 담아낼 수 있었다. 투후(秺侯) 제천지윤(祭天之胤)7대를 전하여  … 하였다.
<6행> … 15대조 성한왕(星漢王)은 그 바탕이 하늘에서 내리고, 그 영(靈)이 선악(仙岳)에서 나와, ▨▨을 개창하여 옥란(玉欄)을 대하니, 비로소 조상의 복이 상서로운 수풀처럼 많아 석뉴(石紐)를 보고 금여(金輿)에 앉아 … 하는 것 같았다. …
<7행> … 대왕은 생각하심이 깊고 멀었으며, 풍채가 뛰어났고, 도량은 하해와 같았으며 위엄은 우뢰와 같았다. … ▨은 바야흐로 자취를 거두고 봉화는 멎고 척후는 파해지니, 만리의 맑은 기운은 부지런히 … 를 열었다. …
<8행> … 간▨(簡▨)의 덕에 내외가 평화로워지고, 광대한 기풍에 원근이 편안하고 깨끗해지니, ▨공(▨功) 성▨(盛▨)은 장래에 … 하고, 쌓이고 뭉친 순수함과 곧음은 후예들에게 넉넉함을 드리워 주었다. …
<9행> … ▨▨사회(▨▨舍誨)는 곧 성철(聖哲)의 뛰어난 모습이라, 은혜로써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너그러움으로써 사물을 다스리니, … 한 자는 그 시기를 알고, 덕을 이어받은 사람은 모두 그 이웃을 알아보니, 그 명성이 한하(閒河)에까지 넘쳤다. …
<10행> … ▨봉(▨峯)을 ▨하여 ▨간(▨幹)하고, 5백년을 기약하여 큰 명을 내려주니, 거하면 모두 … 함을 얻었고, … 비춤은 단부(丹府)에 거의 가까웠다. 의(義)는 성(性)에 부합하여 일어나고, 깊은 정은 … 을 살펴 …
<11행> … 바탕을 돕고, 정(情)의 근원은 맑디맑아, 삼키어 받아들임은 금▨(襟▨)에 ▨하였다. … 하시는 말씀은 규범을 이루고, 용모와 행동은 가히 볼 만하였으며, 학문은 고(금)을 두루 통하였다. …
<12행> … 시(詩)와 예(禮)의 가르침에 … (하고), 주나라는 교재(橋梓)의 ▨에 경의를 표하였다. … 당나라 태종문무성황제(太宗文武聖皇帝)가 사직의 ▨에 응하여 …
<13행> … 임금이 돌아가시고 풍악은 멎었다. 무진 이후에 …
<14행> … 순(舜)임금은 바다와 같이 덕을 내려도 절현(截懸)이 있었고, 요(堯)임금은 해와 같이 밝게 비추어도 은▨(垠▨)이 없었다. …
<15행> … 빛나고, 구렬(九列)은 천부(天府)를 관장하여 …
<16행> … 천사(天使)도 감통(感通)시켜 그 재앙을 그치게 하니, 편안하고 쉽게 건너 …
<17행> … 이웃나라와의 우호를 어기고 자주 이쪽 저쪽으로 붙으려 하면서, 겉으로는 …을 믿는 척하니 …
<18행> … (소정방을) 웅진도행군대총관(熊津道行軍大總管)으로 삼고, 군왕(君王)을 …
<19행> … 황산(黃山)에 군진을 펼치니, 적들이 고슴도치와 올빼미처럼 모여들어 (진군을) 가로막고자 하였다. …
<20행> … 적의 수도(首都)에 이르자 그 우두머리가 군문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였고, 그 좌리(佐吏)들도 …
<21행> … 삼년이었다. 용삭(龍朔) 원년(元年)에 이르러 …
<22행> … 보배로 여기는 바는 오직 어진 사람이니, 선(善)을 행함을 가장 즐거워하고, 인(仁)을 ▨함을 …
<23행> … 조야(朝野)가 모두 즐거워하니, 굳이 애써 행함이 없다고 하더라도 …
<24행> … 진백(秦伯)의 터전를 다시 일으켰다. …
<25행> … 교화가 북으로 읍루(挹婁)에까지 접하니, 벌떼처럼 …
<26행> … 군왕에게 조서를 내려, 사지절(使持節) … 으로 봉하였다. …
<27행> … 군(軍)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니, 깃발이 …
<28행> … 꾀는 손을 뒤집는 일처럼 쉽게 나왔는데, 절묘하기가 …
[後面]
<1행> … 환산(丸山)에 공(功)을 기(紀)한 장수가 있어 …
<2행> … 곧바로9주를 일광(一匡)하고 동정서벌(東征西伐)하여 …
<3행> … 궁 앞채에서 돌아가시니, 그 때 나이는 56세였다. …
<4행> … 땔나무군이나 목동들이 그 위에서 노래 부르고, 여우가 그 옆에 굴을 뚫을 것이니 …
<5행> … 화장(火葬)을 하라 하니, 그달 초열흘에 화장하여 …
<6행> … 천황대제(天皇大帝)께서 …
<7행> … 왕례(王禮)에 맞았다. 군왕(君王)은 국량(局量)이 …
<8행> … 나라를 … 하는 방법에 (부합하였고),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심은 8정(八政)의 ▨과 같았다. …
<9행> … 돌아가시니, 참으로 백대(百代)의 현왕(賢王)이시요, 실로 천(千)(古의 성스러운 임금이셨다.) …
<10행> … 맑고 아름답기 선비 같으시고, 삼언(三言)을 빌지 않아도 준▨(駿▨)을 알았다. …
<11행> … 못을 여니 호량(濠梁)을 방불하였고, 비단과 돌을 펼쳐 …
<12행> … 손님이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 안개처럼 모여 들니, 이를 말하여 아침에 많고 …
<13행> … 묘(昴)에 들어가서는 돌아감을 잊으시고, 웅(熊)을 맞추시고도 돌아가지 않으셨다. 태자 계(雞) …
<14행> … 단청(丹靑)은 기린각(麒麟閣)에 흡족하고, 서책은 운대(芸臺)에서 닳고 헤어졌다.
<15행> … 삼가 절을 드리고, 이만 그치며 명(銘)을 쓴다.
<16행> … 천 갈래의 가지가 되어, 삼산에까지 뻗어 비치네. 아름답고 성한 덕은 멀리 …에 전해져 …
<17행> … 진실로 무용(武勇)하시고 진실로 대덕(大德) 있으시고, 다재다예(多才多藝) 하였네. 아랫사람을 생각하여 거머리마저 삼키시고, …
<18행> … 아홉 번 정벌하고, 친히 삼군을 통솔하시어 … 위엄과 은혜는 혁혁히 빛나, 저 아득히 먼 옥저(沃沮)와 예(濊)까지 찾아와 역(役)을 청하였네. 잠동하던 …
<19행> … 풍교를 흠모하여, 단증(丹甑)이 여러 번 나오고, 황▨(黃▨)이 하늘을 진호하였도다. … 적오(赤烏)가 재앙을 나타내고, 황웅(黃熊)이 우러름을 표시하니, 갑자기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홀연히 …
<20행> … 참됨으로 응집하게 하시고, 도(道)는 귀하게 몸은 천하게 여기셨네. 부처의 가르침을 흠미하여, 장작을 쌓아 장사를 지내니 … 경진(鯨津)에 뼈가루를 날리셨네. 대를 이은 임금은 진실로 공손하여, 마음에서 우러난 효성과 우애가 …
<21행> … 크나큰 이름, 하늘과 더불어 길고 땅과 더불어 오래리 …
<22행> … 25일에 대사(大舍) 신(臣) 한눌유(韓訥儒)가 임금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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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官’: 중국 신화상의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로서 그에 뒤이어 황제헌원씨(黃帝軒轅氏)가 일어났다고 한다. 본 비에서 신라의 유래를 삼황오제전설(三皇五帝傳說)과 결부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秺侯: 한무제(漢武帝)의 총애를 받았던 김일제(金日磾 :B.C. 134~86). 흉노(匈奴) 휴도왕(休屠王)의 태자로서 곽거병(霍去病)의 흉노 토벌시 포로가 되었다. 그 뒤 마감(馬監), 시중부마도위광록대부(侍中駙馬都尉光祿大夫) 등을 거치고, 망하라(莽何羅)의 난(亂) 때 무제(武帝)를 구한 공으로 투후(秺侯)에 봉해졌다.

 

祭天之胤傳七葉: 김일제(金日磾)는 휴도왕(休屠王)이 금인(金人)을 만들어 제천(祭天)했다는 고사에 따라 한무제(漢武帝)로부터 ‘金’ 성(姓)을 하사받았고, 그 자손 7대가 내시(內侍)로 혁혁한 번영을 전승하였다고 한다. 여기서는 문무왕(文武王) 선대(先代)의 7대 전승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星漢王: 성한왕(星漢王)에 대해서는 김알지(金閼智)로 보는 견해, 알지의 아들인 세(열)한(勢(熱)漢)으로 보는 견해, 알지의 7세손으로 김씨 중 최초로 왕위에 오른 미추왕(味鄒王)으로 보는 견해, 석탈해(昔脫解)로 보는 견해 등 각인각설이 제시되어 있다.

[출처]문무대왕비문 |작성자 herstory

조선일보(2009.09.04) 캡쳐
2009년 발견 당시의 모습
2009년 구박물관 담장 뒷집에서 발견된 문무왕 비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