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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 선암사 대웅전(順天 仙巖寺 大雄殿)

노촌魯村 2023. 4. 5. 02:04

순천 선암사 대웅전(順天 仙巖寺 大雄殿. 출처 :문화재청)

순천 선암사 대웅전(順天 仙巖寺 大雄殿. 보물. 전남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 (죽학리) / (지번)전남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802)

조계산 선암사는 백제 성왕 7년(529)에 아도화상이 비로암이라 하였던 것을 통일신라 헌강왕 5년(875) 도선국사가 선암사라 고쳐 불렀다. 이후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이 더욱 크게 하여 대가람을 이루었다고 한다.

대웅전은 조선시대 정유재란(1597)으로 불에 타 없어져 현종 1년(1660)에 새로 지었다. 그 후 영조 42년(1766)에 다시 불탄 것을 순조 24년(1824)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은 선암사의 중심 법당으로, 그 앞에 만세루와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앞마당에는 순천 선암사 동ㆍ서 삼층석탑(보물) 2기가 나란히 서 있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의 대웅전은 자연석 기단 위에 민흘림 기둥을 세워 지어졌는데 기둥머리에는 용머리 장식을 하였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겹처마 팔작지붕집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 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이다.

공포를 앞뒤면에는 각 3조, 양 옆면에는 각 2조씩을 배치하여 장엄하면서도 화려함을 나타내었다. 특히 건물 안쪽 공포 구조에서는 화려한 연꽃 봉오리 장식으로 마감하여 조선 후기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수법을 나타내고 있다.

선암사 대웅전은 다포계의 일반적인 수법을 따랐으나 화려한 건축양식과 장식성에서 조선 후기 중건 당시의 면모를 잘 간직하고 있어 학술적·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출처 : 문화재청)

순천 선암사 대웅전(順天 仙巖寺 大雄殿) :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관련항목 보기 선암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전.

순천 선암사 대웅전은 주불전으로서 일주문과 범종루를 잇는 중심축에 있다.

순천 선암사 대웅전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고, 1660년(현종 1) 경잠·경준·문정 등 3대사가 중수하였다. 현존하고 있는 순천 선암사 대웅전은 1766년(영조 42)에 불탄 것을 1824년(순조 24)에 중창하였음이 상량문을 통해 밝혀졌다.

순천 선암사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을 한 다포계 건물이다.

높이 1m로 쌓은 자연석 기단 위에 놓인 순천 선암사 대웅전의 초석은 주좌가 있는 초석과 덤벙주초가 혼용되었다. 즉 앞면에는 3단의 굄을 둔 둥근 가공초석을, 배면과 측면에는 덤벙주초[둥글넓적한 자연석을 다듬지 아니하고 놓은 주춧돌]라고 부르는 자연초석을 두었다. 그 위에 세워진 기둥은 민흘림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기둥머리 위에는 조선 후기에 널리 쓰인 용머리 장식의 안초공(按草工)[기둥머리에 끼운 널빤지]을 두었다.

기둥 위의 포작은 다포계의 일반적인 수법을 따라 창방과 평방을 놓고, 그 위에 전면과 배면에는 각 3구씩의 주간포, 양측면에는 각 2구씩의 주간포를 배치하였다. 첨차는 교두형이지만 살미는 외부에서 앙서[끝이 위로 삐죽하게 휘어 오른 쇠서받침]형을 이루고 내부에서는 화려한 연봉형 장식으로 마감하였다.

포작은 외3출목[7포작] 내4출목[9포작]이며 조선 후기 건축에서 보이는 연봉 장식 등의 요소가 두드러진다. 가구는 무고주 5량가이다. 정면에는 모두 궁창판이 있는 4분합의 빗살문을 달고, 양 측면의 남측 협칸에만 출입문을 달아 벽체로 마감하였고 후면 중앙에만 2분합의 세살문이 있고 나머지는 벽체로 구성되어 있다. 순천 선암사 대웅전 내부는 모두 우물마루를 설치했으며 어칸의 후면에 불단을 놓아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모시고 있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선암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좌상仙巖寺大雄殿木造釋迦如來坐像

선암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좌상仙巖寺大雄殿木造釋迦如來坐像 :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관련항목 보기 선암사 대웅전에 있는 조선 후기 불상. 

순천 선암사 대웅전은 1660년 경잠(敬岑)·경준(敬俊)·문정(文正)의 삼대사가 중창하였고, 1759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760년 다시 중창하였다. 순천 선암사 대웅전은 이후 1823년 화재로 다시 불에 타 1824년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선암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좌상에 대한 복장 조사는 2001년 순천 선암사 대웅전 해체 보수 시 조사를 하였는데, 후렴통, 대법당불상권선문, 다라니, 125책에 이르는 경전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선암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좌상의 조성연대나 조각승에 대한 기록이 발견되지 않아 조성연대와 조각승은 파악되지 않았다.

선암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좌상 머리는 나발과 경계가 불분명한 육계가 있고, 이마 위에는 반원형의 중앙계주(中央髻珠)와 정수리에 윗부분이 둥글고 낮은 원통형의 정상계주(頂上髻珠)가 있다. 정방형의 얼굴에 가늘게 뜬 눈은 눈꼬리가 약간 위로 올라갔고, 코는 오뚝하고, 입은 콧방울보다 크며,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다. 볼과 턱 사이가 움푹 들어가 있어 입체감을 느끼게 한다. 입술 아래에는 턱선을 강조한 선각으로 인해 턱을 바짝 당긴 듯한 인상을 준다.

착의법은 군의(裙衣)[허리에서 무릎 아래를 덮는 긴 치마 모양의 옷], 승기지(僧祇支), 대의(大衣)[설법하거나 걸식을 할 때 입는 승려의 옷]가 갖추어져 있는데, 가장 바깥에 입은 대의는 변형된 편단우견으로 착용하였다. 대의는 오른쪽 어깨에 걸쳤으며, 목 밑에서 가슴까지 거의 직선으로 늘어지고 팔과 배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간 대의 자락은 허리에서 물결 모양으로 처리하였다. 가슴 아래 입은 승각기는 상단을 수평으로 접은 다음 다시 한번 사선으로 접혀있다.

수인은 오른손을 무릎 밑으로 내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고, 왼손을 자연스럽게 무릎 위에 올려놓고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하반신은 어깨에 비례하여 넓고 높아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오른쪽 다리가 왼쪽 무릎 위에 올라와 있다. 다리 위에 조각된 옷 주름은 고부조로 발목 부분에서 무릎 사이로 부채꼴 모양이다. 왼쪽 무릎은 오른발 아래를 지난 소맷자락이 유선형의 연판(蓮板) 모양으로 접혀있다.

선암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좌상은 장방형의 얼굴과 고부조의 옷 주름의 표현, 넓고 높은 무릎 등에서 17세기 초중반에 조성된 상임을 알 수 있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