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설원랑(薛原郞)의 명주기념비(溟州記念碑)
명주(溟州)는 강릉의 옛 이름이다. 명주를 비롯한 동해안 일대는 일찍부터 신라의 영역으로 자리잡았다. 157년 아달라왕은 명주를 순행하고 군사를 위로했다. 300년 기림왕 때에는 태백산에 망제를 지냈으며, 이 때 북변으로는 비열흘(比烈흘 : 지금의 안변)까지 순행했다. 556년(진흥왕 17년) 비열흘주를 설치했다가 동왕 29년에 폐하고 달흘주(達흘州 : 지금의 고성)를 설치하였으므로 명주는 신라의 판도로 굳어졌다. 따라서 화랑들의 순례활동은 일찍부터 이 지방과 관련을 맺었던 것이다.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대왕이 영을 내려 원화를 폐지한 지 여러 해 되더니 우리나라를 중흥하자면, 반드시 풍월(風月)의 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영를 내려 양가의 남자 중 덕행있는 자를 뽑아 화랑(花郞)이라고 바꿔 부르게 하고 설원랑(薛原郞)을 최초의 국선(國仙)으로 삼아 받들게 했다. 이로써 화랑국선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기념비를 명주에 세웠다.
이 기념비가 명주의 어느 곳에 세웠졌는지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삼국유사에서 최초의 화랑이라 한 설원랑의 비가 명주에 세웠졌다는 것은, 후일 수많은 화랑들이 이 고장을 순례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점에서 새로운 시사점을 우리에게 던져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