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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영천

유후재 및 옥비(遺厚齋및玉碑)

노촌魯村 2009. 12. 9. 22:36

 

 

 

 

 

 

 

 

 

 御賜淸白吏曺致虞玉碑(어사청백리조치우옥비)

유후재 및 옥비(遺厚齋및玉碑.문화재자료 제101호 (영천시).경북 영천시  대창면 대재리 210-1)  

이 건물은 조선(朝鮮) 성종(成宗)때 문신(文臣)이며 학자(學者)로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된 조치우(曺致虞)선생의 묘하(墓下) 재사(齋舍)와 선생이 대구부사(大丘府使) 재임시(在任時) 선정(善政)을 베풀어 나라에서 하사(下賜)한 옥비(玉碑)이다. 선생의 호(號)는 정우당(淨友堂), 본관(本貫)은 창녕(昌寧), 성종(成宗) 25년(1494)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及第)하여 예문관(藝文館) 검열(檢閱)을 거쳐 성균관(成均館) 전적(典籍)으로 성종실록(成宗實錄) 편찬(編纂)에 참여했다. 그 후 중종반정(中宗反正)후 장령(掌令)을 지내고 대구부사(大丘府使) 재임시 선정을 펼쳐 칭송(稱頌)을 받았으며 사옹원정(司饔院正)에 임명되었으나 어머니의 봉양(奉養)을 위하여 사임, 모상중(母喪中) 일생을 마쳤다. 사후(死後) 조정(朝廷)에서 옥비 두좌(二座)를 하사하여 그의 청렴결백(淸廉潔白)한 덕을 표창하였다. 그 중 옥비 일좌(一座)는 그의 부인 묘하(墓下) 재사인 경남(慶南) 창원(昌原) 모광재(慕光齋)에 남아있다.(문화재청 자료)

 옥비의 귀부 

어사옥비각(御賜玉碑閣 .경남 창원시  북면 대한리 459) (문화재청 자료 사진)

(문화재청 자료 사진)

어사옥비(御賜玉碑.문화재자료  제166호 (창원시).경남 창원시 북면 대한리 459)

북면 지개리의 창녕 조씨재실인 모선재(慕先齋)경내의 비각에 있는 어사옥비는 조선 중종대의 문관 조치우(曺致虞)선생의 부인에게 내려진 것이다. 조선초기 일반 묘비형으로 가첨석과 비신을 한 돌로 만들었으며, 높이 118㎝, 너비 47㎝, 두께 19㎝이다.

 

청백리정우당조선생지묘(淸白吏淨友堂曺先生之墓. 경북 영천시 대창면 대재리 송청산)

 

 묘소에서 본 유후재와 옥비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