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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밖(국외)/터어키

파묵칼레Pamukkale. 히에라폴리스 Hierapolis

노촌魯村 2012. 12. 2.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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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구의 성문 복원하는 광경

 

 

 

파묵칼레. 히에라폴리스 : 이곳에 히에라폴리스라는 이름의 도시를 최초로 건설한 왕은 기원전 180년경 페르가몬 왕국의 유메네스 2세였다. 유메네스 왕은 전설의 왕국 페르가몬의 창건자 텔레포스 왕의 아내인 히에라를 기념하기 위해 이 도시를 세웠다 한다. 히에라폴리스는 바로 이웃의 고대도시 라오디케아와 경쟁관계를 유지하며 급진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기원전 133년 페르가몬의 마지막 왕 아탈로스 3세가 자신의 왕국을 로마제국에 자진 헌납함으로써, 히에라폴리스는 로마의 도시로 거듭나게 되었다. 몇 차례의 대지진으로 고대도시의 많은 유적지가 파괴되었지만, 아직도 2-3세기 최전성기를 맞이하던 때의 모습을 어느 정도 간직하고 있다.

바둑판 모양의 정교한 도시계획에 따라 건설된 이 도시의 상징은 신전들이었다. ‘신전 전시관’으로 불릴 정도로 많은 수의 신전이 건립되었다. 로마 목욕탕과 원형극장 사이에 남아 있는 이 도시의 수호신인 아폴로를 모신 신전은 대표적이다. 도시의 주산업은 양모를 이용한 카펫 및 직조산업과 꽃을 기르는 원예산업 이었다. 대리석을 장식한 석각공예가 특히 발달하여 신전과 기둥의 섬세한 돌조각이 눈길을 끈다. 이곳의 얼룩무늬 대리석은 세계적으로 유명하여, 비잔틴 최고의 건축물인 성 소피아 성당의 기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히에라폴리스의 전성기는 이후 비잔틴 시대까지 계속되었으나, 기독교의 중심지가 되면서 새로운 위상을 찾았다. 기독교의 대교구가 이곳에 설치되었고, 초대 7대 교회의 하나가 인근 라오디케아에 세워졌다. 더욱이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사도 빌립이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원형극장에서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사도 빌립이 전교하던 장소에 순교 기념관이 세워져있다. 기독교의 중심지 히에라폴리스는 11세기 이후 셀주크와 오스만 제국으로 이어지는 이슬람 세력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자, 그 찬연했던 과거의 영광도 함께 묻히고 말았다.

역사의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는 망각되고, 유명한 온천수가 뛰어난 자연경관과 어우러지는 하얀 목화성, 즉 파묵칼레로 새롭게 알려지게 되었다. 온천을 즐기러 몰려든 관광객들은 언덕 위에 즐비한 고대 유적지를 보고 비로소 잊혀졌던 역사의 숨소리를 듣게 된다. 온천 지대의 특성을 가장 잘 이용한 대표적인 도시 유적은 로마 목욕탕이다. 열탕, 온탕, 냉탕, 탈의실을 모두 갖춘 전형적인 로마식 목욕탕이다. 운동을 위한 부속건물과 황제가 연회를 개최하던 대형 홀이 아직도 남아 있어 풍요로 왔던 당시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지금은 히에라폴리스의 모든 유물을 한 자리에 모은 현장 박물관으로 쓰고 있다. 이곳의 온천수는 밖으로 흘러 파묵칼레의 기묘한 옥외 석회암 온천장을 형성하였다. 섭씨 35도 정도의 온천수는 특히 피부병에 좋아, 얼굴 못생긴 처녀가 공주가 되는 여러 종류의 토착 전설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피부가 거칠고, 무한대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젊은 여성들의 필수적인 순례지가 되었다. 지금도 결혼을 앞둔 처녀는 자신을 정화하고 새로운 남자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파묵칼레의 온천수에 몸을 담구는 현대적 풍속도가 남아 있다.

보존상태가 좋은 대표적인 도시 유적으로는 단연 원형극장이 꼽힌다. 2세기에 하드리안 황제때 지어져서, 3세기의 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시대에 오늘날의 모습으로 개축되었다. 관중석은 2단으로 되어 있고, 약 15,000명의 인원을 수용했다 한다. 특히 중앙의 무대주변에는 아폴로 신을 주제로 한 정교한 대리석 조각이 매우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이 도시의 거의 북쪽 끝에는 거대한 묘지군인 네크로폴리스가 나타난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만 줄잡아 수천 개는 됨직하다. 소아시아 반도에서 가장 큰 묘지지역이라 한다.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석관형, 가옥형, 봉분형 등 무덤의 다양한 양식과 크기이다. 신분이나 빈부의 차이에 따라 그 규모와 장식이 다를 수 있으나, 여러 시대가 중첩되면서 혼란스러운 조화가 더욱 흥미롭다.

이 도시에서 멀지 않는 곳에 온천수의 수원으로 알려진 굴 하나가 있다. 단순한 굴이라기보다는 매우 복합적인 문화현상을 창출하는 곳이란 생각인 든다. 현지인들이 ‘악마의 굴’로 부르는 이곳에는 연중 유독가스가 품어져 나와 아무도 그 안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이곳이 지하의 영계인 ‘하데스’호 통하는 입구라는 믿음이 널리 퍼졌다. 그래서 입구에 하계의 신인 플루토를 위한 신전을 짓기도 했다. 이슬람이 이 땅을 지배하면서부터 신비주의 수도승들이 호흡조절을 통해 이 굴을 들어갔다 나오면서 자신의 영력을 시험해 보이는 일종의 종교적 수련장이 되기도 했다. 당시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 건립된 성스런 도시, 히에라폴리스는 십자군과 셀주크의 공격에도 견뎌왔으나, 1334년 대지진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렸다. 오늘날의 모습을 되찾은 것은 1957년이래 히에라폴리스에 일생을 바친 이탈리아 고고학자 파올로 베르조네의 공헌이다. 땅의 주인이 바뀐 히에라폴리스에는 이제는 이슬람교를 믿는 터키인들이 주인이 되어 살고 있다.                                                                                                                                                               

 

 

 

 

 

 

 

 

 

 

 

 

 

 

 

 

 

 

 

목화성(파묵칼레, Pamukkale) : 온천수로 하얗게 피어나는 목화성은 석회 성분이 있는 33~36도 정도의 온천물이 계속 흘러나오면서 침전이 되어 하얀 목화꽃과 같은 장관을 이루게 되었다. 히에라폴리스(파묵칼레, Pamukkale)에서 나오는 온천수에는 광천수에 포함된 풍부한 칼슘과 이산화탄소가 공기와 만나 오랜 시간을 지나면서 석회층을 만들어 마치 하얗게 목화 꽃이 핀 것처럼 만들어졌다. 터키어로 ‘파묵(Pamuk)’은 목화라는 뜻이고, ‘칼레(Kale)’는 성이라는 뜻이다.

 

 

 

 

 

 

 

 

 

 

 

 

 

 

 

 

 

 

 

 

 

 

 

 

 

 

 

 

 

 

 

 

 

 

 

 

 

 

 

 

인증사진 한장

Pamukkale travertine and the nature

Hierapolis-Pamukkale (Turk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