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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수집품(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 보존과학, 일제강점기에 복제된 우리 문화제

노촌魯村 2016. 6. 4. 17:21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수집품

일시 : 2016.4.26  -  6.19

장소 :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보존과학

보존과학2016년은 박물관 6대 기능에 속하는 보존이 국립박물관에서 그 역할을 시작한지 4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 동안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천마총 출토 장니를 비롯하여 약 2만점의 문화재를 보존처리 하였고, 수장고 및 전시실의 환경관리, 조사 분석을 통한 연구 등 우리문화재의 안전관리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보존과학 전시는 문화재보존에 대한 이해와 문화재를 과학의 눈으로 다시 살펴보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마련하였습니다. 또한 특별전 전시품들이 수집되었던 일제강점기 당시의 보존기술에 주목하여 현대의 보존기술과 비교해보고자 하였습니다.

문화재의 보존에 얽힌 이야기와 과학의 시선視線으로 관찰하면서 문화재와 보존과학을 새롭게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석가모니(고려 918 -1392)

13세기 고려시대의 부처상이다. 큰 귀에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으며 일부 금칠히 칠해져 있다. 손, 목, 코 등에 일부 수리 흔적이 있다.










연적(조선 1392 - 1910)

둥근 공모양의 몸체에 물이 나오는 구멍과 손잡이 그리고 굽이 있는 연적이다. 몸체 윗쪽에 짐승의 머리 형상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물은 집승의 입 구멍으로 나온다. 굽의 중앙바닥에는 몸체 안쪽으로 깊게 구멍이 뚫려이쓴데, X선 촬영을 해보았더니 바닥에 난 구멍이 내부로 빨대처럼 솟아있는 것이 확인된다. 이 연적은 물속에 통째로 넣으면 쉽게 물이 채워지고, 내부의 관 높이 아래에서는 물이 새지않는 재미있는 연적이다.


사발(20세기)

은입사가 되어 있는 아연그릇이다. XRF 분석 결과 몸체는 아연(Zn)과 구리(Cu)rk 9:1 비율로 합금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고대 금속품에서 아연의 양은 거의 검출되지 않는다. 아연의 함량이 구리보다 월등히 높은 분석 결과로 미루어 이 그릇은 근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아연과 은은 모두 은백색의 금속이다. 현재 검게 보이는 몸체는 아연 부식에 의한 변색이 아니라 입사문양을 돋보이기 위해 표면처리한 결과로 보인다.



정병(20세기)

정병의 형태는 옛것을 따르고 있지만 문양이 조잡하고, 오래된 것처럼 인위적으로 부식하였다. 국보 제92호 청동은입사포류수금문정병을 모방하여 만든 것으로 보인다. 부식층을 벗겨내고 은입사 표출을 시작한 상황이다. 입사포출이 완료되면 정확한 도상 확인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구름.용무늬 항아리(조선 1392 -1910. 경희대학교 중앙박물관 소장품)

도자기 표면에 구멍을 뚫고 금속으로 꿰어 수리한 도자기이다. 옛 고문헌에서는 깨진 도자기의 수리 방법으로 이러한 방법을 소개하고 있지만, 실물로 남아있는 예는 거의 없다. 같이 전시된 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과 더불어 옛 도자기의 수리방법을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호랑이.사자무늬 큰 바라(조선 1392 - 1910)

18세기 후반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백자청화 바리이다. 깊고 넓은 몸체에 청화로 호랑이와 사자 그림을 시원하게 그려넣었다. 구연 일부와 몸체에 일제강점기 당시 금으로 수리한 흔적이 남아있다.


일제강점기에 복제된 우리 문화재

국립경주박물관에은 일제강점기 때 제작된 전 충남출토 청동거울(銅鏡)(접수547), 입실리 출토 청동검 등 6점의 복제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복제품과 진품 및 관련 기록물을 함께 공개합니다.

그 동안 학계에는 경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 복제품에 대한 여러 논의가 있었지만 그 출처와 성격은 규명되지 못하였습니다. 전시에 처음 공개되는 고고학관계자료모형도보考古學關係資料模型圖譜(1931/昭和六年’)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제작한 우리 문화재의 복제품 기록을 담은 중요한 발간물입니다. 책의 서문에는 1925년을 전후하여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의 교수인 하마다 코사쿠(濱田耕作, 1881~1938)와 기요노 겐지(淸野謙次, 1885~1955) 등이 한국, 일본, 중국, 서양 중요 문화재들의 모형 제작에 착수하여 1930년 작업을 마무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 작업의 실무는 교토에 위치한 우에노제작소(上野製作所)가 맡았다고 합니다. 교육용으로 제작된 모형들은 판매가 목적이었고, 일부는 황실박물관, 교토제국대학, 동경제국대학 등에 기증되었습니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복제품은 이때 제작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