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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광주 환벽당 일원(光州 環碧堂 一圓)

노촌魯村 2017. 4. 9. 17:29


광주 환벽당 일원(光州 環碧堂 一圓.명승  제107호.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387-0 )

환벽당은 사촌 김윤제(沙村金允悌, 1501~1572)가 노년에 자연을 벗 삼아 후학양성을 목적으로 건립한 남도지방의 전형적인 유실형(有室形)정자로 가까이에는 무등산 원효계곡의 계류가 흐르며 계곡아래 증암천(甑巖川) 주변에는 배롱나무가 아름다운 장관을 이뤄 자미탄(紫薇灘)이라 불렀으며, 특히 이곳은 무등산을 비롯한 원효계곡의 줄기를 따라 자연 풍광이 수려한 지역으로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자주 드나드는 명승지였다.
환벽당 북쪽으로 200미터 떨어진 곳에는 사촌 김윤제가 살았던 충효마을과 증암천 너머에는 송강 정철이 살았던 지실마을이 있으며 환벽당 아래에는 송강과 사촌이 처음 만난 곳이라는 전설이 깃든 조대(釣臺)와 용소(龍沼), 쌍송(雙松)이 있어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곳이다.
면앙정 송순은 서하당 김성원이 식영정을 건립하고 3년이 지난 뒤 1563년 식영정의 시를 차운하며 ‘식영정과 환벽당’은 형제의 정자라고 하면서, 소쇄원과 식영정, 환벽당을 가리켜 한 동(증암천)안에 세 명승 즉, 一洞之三勝이라 말한다.
환벽당은 환벽(環璧)이란 뜻 그대로 푸르름이 고리를 두르듯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이루고, 시가문학과 관련된 국문학사적인 인문학적 가치가 매우 큰 곳이며, 별서원림으로서 가치가 우수한 호남의 대표적인 누정문화를 보여주는 곳이다.
환벽당이 위치한 곳은 무등산 북능의 능선으로 북봉을 거쳐 꼬막재로 이어지는 여러가지 지맥 중의 하나이며, 사촌 김윤제(1501-1572)가 태어난 충효마을 남쪽 200m지점에 있다. 또한 광주와 담양을 경계로 흐르는 증암천(별칭 : 자미탄)을 사이에 두고 남쪽 무등산에서 북쪽 성산에 이르기까지 산들이 고르게 파노라마 경관을 보여주는 선경을 이루고 있다.
환벽당 주변에는 사촌 김윤제가 살았던 충효마을과 송강 정철이 살았던 지실마을, 소쇄공 양산보가 살았던 창암촌이 있으며, 이 마을들 주변으로 식영정(息影亭)과 면앙정(俛x仰亭), 송강정(松江亭), 은거를 위한 독수정(獨守亭)과 소쇄원(瀟灑園), 환벽당(環碧堂) 등 10여개 정자가 소재해 있어 이 일대가 조선시대 원림 문화의 중심지역으로서 가치가 뛰어나다.
환벽당은 당대 최고의 석학들인 송순, 임억령, 양산보, 김인후, 김성원, 기대승, 고경명 등이 드나들던 곳으로 수려한 자연경관을 감상하고 시문과 가사를 지으며 풍류 문화의 극치를 이룬 조선시대 사림문화의 중심으로서 역사 문화적 가치가 뛰어나다.
환벽당의 초기모습은 소세양(1486~1562)이 지은 “환벽당“시를 통해서 알 수 있으며, 삼연 김창흡(三淵金昌翕 1653~1722)의 『南遊日記』를 통해 그 당시의 원림의 식물상과 조경수종을 짐작할 수 있고, 김성원((1525~1597)의 “서하당유고“ 에 ”성산계류탁열도”등의 그림이 남아있어 인문적 가치가 있다.
환벽당 관련 시·문은 당대의 일류 문인들로서 임억령, 기대승, 송순, 김인후, 소세양, 정철, 백광훈, 고경명, 권필도, 정홍명, 목장흠, 이은상, 이하곤, 이명한, 김창흡, 조상건, 양경지, 정민하, 서봉령 등 시인묵객의 시가가 전해져 인문학적 가치가 있다. (출처 : 문화재청)



환벽당(環碧堂.광주광역시 북구 송강로 387 (충효동))

환벽당(環碧堂)은 지방기념물 제1호로 광주호의 상류 증암천의 언덕 위에 높다랗게 자리잡고 있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 골기와 팔작지붕으로 되어있다.
환벽당을 창건한 나주목사를 지낸 김윤제(1501~1572년)는 자(字)는 공로(恭老), 호가 사촌(沙村)이며 충효리에서 태어났다.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한 후 홍문관 교리를 거쳐 나주 목사로 있다가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고향인 충효리로 돌아왔다. 환벽당은 그가 집 뒤에 지은 별당으로, 그는 이곳에서 자연을 벗삼아 한가로이 지내며 후진을 키웠다.
그러나 이곳은 송강 정철이 27세로 과거에 급제하기까지 10여 년 동안 머물면서 공부했던 곳으로 더 유명해서 송강정, 식영정과 함께 정송강 유적으로 불린다.
어느 더운 여름날, 김윤제는 환벽당에서 낮잠을 자다가 집 아래 용소에서 용이 놀고 있는 꿈을 꾸었다. 그가 잠을 깨고 가 보니 한 소년이 멱을 감고 있었다. 그 소년이 바로 정철이었다. 그때 정철은 식영정 옆 지실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순천 처가에 가 있는 형 정소를 만나러 가던 길에 용소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던 것이다.
김윤제는 이런 인연으로 만난 정철을 환벽당에서 지내게 하면서 송강 정철이 열여섯살 소년시절부터 스물일곱 살에 등과할 때까지 공부를 시키고 외손녀 사위로 삼았으며, 관계로 나아갈 때까지 여러 가지 도움을 주었다. 정철은 이곳에서 머물며 기대승, 김인후 등 고명한 학자들에게서 학문을 배우고 임억령에게서 시를 배웠으며 여러 사람을 사귀었다. 그의 「성산별곡」에는 환벽당 주변의 산수경관이 담겨 있다.
환벽당은 비스듬한 비탈에 자연석 축대를 쌓고 지은 남향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동쪽 2칸은 마루로 되어 있고, 서쪽 2칸은 방이며 그 앞에 반 칸짜리 툇마루가 깔려 있다. 원래는 정각 형태였는데 후대에 중건할 때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집 마루에서는 남쪽의 무등산과 창계천이 잘 내려다보인다. 원래 푸른 대숲에 둘러싸여 있어서 환벽당이라고 했다는데, 지금은 대숲은 없고 집 뒤 비탈과 양쪽 축대 아래의 커다란 배롱나무가 인상적이다. 그 밖에도 집 뒤에는 왕벚나무가 있고, 옆에는 모과나무가 있으며, 또 축대 아래에 느티나무와 벽오동나무 들이 있다.
축대 아래에는 세 단으로 된 화계(花階)가 있고 그 밑에 네모진 연못이 있다. 그것들은 환벽당 마루에서 직접 바라볼 수 없는 위치에 있고 또 그 아래 넓은 터가 김윤제의 집 본체가 있던 곳이니, 별당인 환벽당의 뜰이 아니라 본채에 딸린 후원의 일부였을 것이다.
한편 환벽당 아래 창계천가에는 큰 바위가 하나 있는데, 김윤제와 그의 손님들이 낚시를 즐겼다는 조대(釣臺)로서, 지금은 그 위에 기념비가 서 있다. 그 옆에는 지금도 늙은 소나무들이 기울어져 있어서 조대쌍송(釣臺雙松)을 노래했던 옛사람들의 흥취를 상기시킨다. 여기에서 건너편을 보면 별뫼 봉우리가 삿갓처럼 볼록하게 보인다. 그리고 조대 앞이 바로 정철이 목욕하다가 김윤제를 만났다는 용소이다. “환벽당(環碧堂)”이라는 현판의 글씨는 우암 송시열이 썼으며, 석천 임억령의 시가 현판에 담겨 있다. 지금은 송강 정철의 후손이 환벽당을 사촌 김윤제의 후손으로부터 사들여 관리하고 있다.
다음의 시는 석천 임억령이 아름다운 주위의 경관을 읊은 것으로 환벽당 벽에 걸려 있으며, 부안 군수 재직 중에 환벽당에 김윤제가 묵는다는 소식을 듣고 면앙 송순이 써 보낸 시 한구절 그리고 환벽당에서 하서 김인후가 읊은 시들이다.

연기의 기운인지 구름까지 겸했는지 烟氣兼雲氣
거문고 소리인지 물소리가 섞이었는지 琴聲雜水聲
석양무렵에 거나하게 취해 돌아오니 夕陽乘醉返
모래길에 대발가마 소리쳐 우네 沙路竹輿鳴
- 석천 임억령

소나무 아래는 맑은 못, 바위 위에 정자 松下澄潭岩上亭
좋다! 맑은 경지 예가 바로 仙庭 十分淸境仙庭
날보고 학들이 놀리고 있지 一來猿鶴爭嘲笑
어찌 속된 꿈을 깨지 못하느나고 其奈人間蒙未醒
- 면양정 송순

푸른물결 맑아 맑아 먼하늘 잠겼는데 綠浪粼蘸碧蘸碧天
모래톱에 말 세운 적 모르괘라 어느해뇨. 沙邊立馬不知年
다붓 잔디 스스로 한공(韓公)집을 덮었다면 蓬茅自韓公舍
솔과 국화오히려 되령(陶令)밭에 남아있네 松菊猶存陶令田
돌시내 고기새우 굽어 잡게 마련되고 石瀨魚蝦供俯
숲가지 원숭이들 올라 탈걸 잃어쑥려. 林柯猿狖失攀緣
어느제나 헌창(軒窓)가에 자리를 맞대고서 何當促席軒窓畔
말 술을 서로 들며 자연에 어울리리. 斗酒相將合自然
- 하서 김인후

<출처 : 광주광역시 북구청>


환벽(環璧)이란 '푸름이 고리를 두르듯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당호는 신잠(申潛)이 지었다.


 







조대(釣臺)

 






한 쌍의 늙은 소나무를 조대에 세워 놓고

아래에 배를 띄워 가는 대로 내버려 두니

홍료화(여뀌꽃) 백빈주(하얀 마름꽃이 피어 있는 물가)를 어느 사이에 지났길래

환벽당 용의 못이 뱃머리에 닿았구나.

 

환벽당과 취가정 사이의 꽃양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