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얼굴 모양 토기에 무슨 소원을 담았을까 - 경산 소월리 유적에서 5세기 경 의례와 관련된 사람얼굴모양 토기 출토 - |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의 허가를 받아 (재)화랑문화재연구원(원장 오승연)에서 발굴조사 중인 경산지식산업지구 진입도로구간의 경산 소월리 유적(경북 경산시 와촌면 산 60-1)에서 5세기 경에 만들어진 사람 얼굴 모양의 토기(투각인면문옹형토기, 透刻人面文甕形土器)가 출토되었다. 지금까지 진주 중천리유적, 함평 금산리 방대형고분 등에서도 사람 얼굴 모양이 장식된 토기가 출토된 사례는 있지만 이번처럼 삼면에 돌아가며 얼굴 모양이 표현된 사례는 처음이라 주목된다.
* 투각인면문옹형토기: 사람의 얼굴 모양으로 뚫어서 만든 항아리형 토기
소월리 유적은 금호강의 지류인 청통천 주변에 형성된 넓은 평야를 조망할 수 있는 나지막한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까지 발굴조사를 통해 삼국∼통일신라 시대의 고상건물지(高床建物址)와 구덩이(수혈), 토기가마를 비롯하여 고려∼조선 시대의 무덤 등 많은 수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 고상건물: 땅 위에 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 위에 바닥을 만든 건물
유적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고상건물지는 사용 목적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구릉의 완만한 경사면에 밀집되어 있으며, 주변으로 배수를 위한 도랑과 구덩이들과 울타리(추정) 등을 배치하고 있어 일반적인 거주보다는 특수한 목적의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람 얼굴 모양 토기가 출토된 구덩이는 지름 1.6m가량의 원형으로 건물지군 사이 한쪽의 빈 공간에 있었다. 토기는 내부조사가 반 정도 진행된 상태에서 나왔으며, 이외에 바닥을 의도적으로 제거한 시루 1점도 함께 출토되었다.
발견된 토기는 높이가 28㎝가량으로, 토기의 윗부분 중앙에는 원통형으로 낮게 돌출된 구멍을 뚫었다. 토기 옆면에는 같은 간격으로 원형 구멍을 뚫어 귀를 표현하였고, 각 구멍 사이에 만들어진 세 개의 면에 무표정한 듯, 심각한 듯, 말을 하는 듯한 표정으로 조금씩 다르게 표현한 얼굴 무늬를 각각 새겼다.
각 인면문의 두 눈과 입은 기다란 타원형으로 밖에서 오려내었으며, 콧구멍에 해당하는 2개의 작은 구멍은 안에서 밖으로 찔러 만들었다. 콧등을 중심으로 양쪽을 살짝 눌러서 콧등을 도드라지게 표현하였다. 옹형토기와 함께 출토된 시루의 몸통 중간 지점에는 소뿔모양 손잡이 2개가 부착되어 있다. 두 점의 토기는 서로 결합되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토기의 제작 기법과 특징 등으로 보면 5세기 전반 또는 그 이전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일상적인 목적보다는 5세기경 유적에서 베풀어진 일종의 의례 행위와 관련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유적의 중심을 이루는 주변의 고상건물지도 당시의 의례와 관련된 시설의 일부였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인 구덩이 내부에서는 토기 외에도 유기물, 목재 등이 추가로 확인되고 있어 이에 대한 분석을 통해 유적의 성격을 분명하게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대해서는 조사 완료 후 언론과 일반인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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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소월리 유적에서 5세기 경 의례와 관련된 사람얼굴모양 토기 출토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재)화랑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 중인 경산지식산업지구 진입도로구간의 경산 소월리 유적에서 5세기 경에 만들어진 사람 얼굴 모양의 토기(투각인면문옹형토기, 透刻人面文甕形土器)가 출토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진주 중천리유적, 함평 금산리 방대형고분 등에서도 사람 얼굴 모양이 장식된 토기가 출토된 사례는 있지만 이번처럼 삼면에 돌아가며 얼굴 모양이 표현된 사례는 처음이라 주목됩니다.
소월리 유적은 금호강의 지류인 청통천 주변에 형성된 넓은 평야를 조망할 수 있는 나지막한 언덕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발굴조사를 통해 삼국∼통일신라 시대의 고상건물지(高床建物址)와 구덩이(수혈), 토기가마를 비롯하여 고려∼조선 시대의 무덤 등 많은 수의 유구가 확인되었습니다.
* 고상건물: 땅 위에 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 위에 바닥을 만든 건물
유적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고상건물지는 사용 목적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구릉의 완만한 경사면에 밀집되어 있으며, 주변으로 배수를 위한 도랑과 구덩이들과 울타리(추정) 등을 배치하고 있어 일반적인 거주보다는 특수한 목적의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람 얼굴 모양 토기가 출토된 구덩이는 지름 1.6m가량의 원형으로 건물지군 사이 한쪽의 빈 공간에 있었습니다. 토기는 내부조사가 반 정도 진행된 상태에서 나왔으며, 이외에 바닥을 의도적으로 제거한 시루 1점도 함께 출토되었습니다.
발견된 토기는 높이가 28㎝가량으로, 토기의 윗부분 중앙에는 원통형으로 낮게 돌출된 구멍을 뚫었습니다. 토기 옆면에는 같은 간격으로 원형 구멍을 뚫어 귀를 표현하였고, 각 구멍 사이에 만들어진 세 개의 면에 무표정한 듯, 심각한 듯, 말을 하는 듯한 표정으로 조금씩 다르게 표현한 얼굴 무늬를 각각 새겼습니다.
각 인면문의 두 눈과 입은 기다란 타원형으로 밖에서 오려내었으며, 콧구멍에 해당하는 2개의 작은 구멍은 안에서 밖으로 찔러 만들었습니다. 콧등을 중심으로 양쪽을 살짝 눌러서 콧등을 도드라지게 표현하였습니다. 옹형토기와 함께 출토된 시루의 몸통 중간 지점에는 소뿔모양 손잡이 2개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두 점의 토기는 서로 결합되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경산 소월리 유적에서 토지 관리 연관된 신라 목간 출토 - 사람 얼굴 모양 토기 아래서 발견…6세기대 토지 관리 문서로 추정 - |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의 허가를 받아 (재)화랑문화재연구원(원장 오승연)에서 발굴조사 중인 경산 지식산업지구 진입도로구간의 경산 소월리 유적에서 2019년 12월 3일 공개된 사람 얼굴 모양의 토기에 이어 신라 시대 토지와 관련한 목간이 추가로 확인되었다.
* 목간: 문자를 기록하기 위해 일정한 모양으로 깎아 만든 나무 조각
길이가 74.2㎝에 이르는 목간은 사람 얼굴 모양 토기의 아래에서 출토되었으며,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이종훈)에서 수습 및 응급보존처리 등을 진행하고 있다. 2019년 12월 6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진행한 1차 판독을 통해 굽은 나무의 표면을 다듬어 만든 총 6면에 걸쳐 약 94자의 글자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 중 2면은 글자를 연습한 흔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록된 글자의 서체나 내용으로 보아 오늘날 경상북도 경산 인근 지역의 토지 현황을 기록한 ‘6세기대에 작성된 토지관리 문서 목간’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목간에 기록된 글자 가운데 ‘곡(谷)과 답(畓), 제(堤)’ 등이 주목된다. 이번에 발견된 목간을 통해 골짜기(곡, 谷)를 배경으로 형성된 일정한 집단이 있었으며, 둑(제, 堤)이 조세 부과와 연관 있다는 점도 드러났다. 이를 통해 골짜기(谷)와 둑(堤)을 중심으로 한 당시 지방 촌락의 입지, 농업 생산력 증대를 위해 축조한 제방과 그 주변에 자리하고 있는 논의 존재 그리고 그곳을 대상으로 조세를 수취하는 중앙 정부의 지배 양상을 동시에 엿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논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우리 고유의 한자(漢字)인 답(畓)을 사용했다는 점과 이 밖에 조세 부과를 위한 토지 면적 단위는 결(結)이나 부(負)를 사용했다는 점도 밝혀졌다.
* 결(結) : 토지 면적 단위 가운데 하나이며, 삼국시대의 1결은 대략 15,400㎡(4,658.47평)로 추정됨
* 부(負) : 토지 면적 단위 가운데 하나이며, 1부는 대략 154㎡(46.58평)로, 100부가 1결이 됨
우리나라 고유의 한자인 답(畓)은 종래에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昌寧 新羅 眞興王 拓境碑, 국보 제33호, 561년 건립)에 처음 등장한다고 여겨졌는데, 목간에 등장하는 답(畓)을 통해 목간의 제작연대도 비슷한 시기임을 추정할 수 있다.
토지 면적 단위인 결(結)과 부(負)는 지금까지 삼국통일 이후 사용된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번에 발견된 목간을 통해 그 사용 시기를 6세기까지 올려볼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당시 신라의 지방 지배와 토지를 중심으로 한 경제활동 논의를 진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이번에 출토된 목간은 한국고대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현재 목간은 1차 판독이 완료된 상황으로, 관련학계와 함께 추가적인 판독 및 연구 과정을 거쳐 목간에 대해 더 다양한 해석과 내용을 공개할 계획이다. 또한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들의 고고학적인 분석과 함께 자연과학적 분석을 실시하고, 주변 유구와의 상관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더 명확한 성격과 시기 등을 밝혀 다시 공개할 예정이다.
발굴조사 현장은 2019년 12월 11일(수) 오후 2시에 공개할 예정이다. 2019년 12월 3일 공개한 사람 얼굴 모양 토기는 물론, 함께 출토된 다른 토기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목간은 유물의 안전을 위해 실물이 아닌 적외선 사진 등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출처 : 문화재청>
경산 소월리 목간에…"1500년전 마을별 세금 할당량"
(매일신문 배포 2020-01-16 16:44)
지난해 경북 경산 소월리에서 출토된 신라 목간(木簡·글을 적은 나뭇조각)에 1천500년 전 마을별 세금 할당을 위한 지명, 토지 종류, 토지 면적이 기재된 것으로 조사됐다.
전경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오는 18일 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소월리 목간 공개행사와 함께 열리는 '2019년 동아시아 신(新)출토 목간' 학술세미나에서 이같은 분석 결과를 발표한다.
소월리 목간은 6세기에 신라인이 토지 운영과 조세제도 양상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다. 전 학예연구사는 16일 "2차 판독회의를 통해 A면 21자, B면 41자, C면 11자, D면 4자, E면 21자 등 모두 98자가 확인됐다"며 "목간의 면은 '제'(堤)와 '사'(四)를 연습한 면이 본문과 같은 면이라 당초 6면에서 5면으로 수정한다"고 밝혔다.
그는 목간 형식을 '지명, 토지 종류, 토지 면적'으로 봤다. '감말곡'(甘末谷)·'구미곡'(仇彌谷)·'내리'(內利)·'하지시곡'(下只尸谷)은 지명, 신라 고유 문자인 '답'(畓)과 '전'(田)은 토지 종류, '결'(結)과 '부'(負)는 토지 면적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번에 출토된 명문 목간도 곡 단위로 토지면적이 집계되고 있다"면서 "신라가 세금 할당을 위해 작성한 기초자료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저수지 축조에 따라 이 정도의 세금을 마을 단위로 할당한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전 학예연구사는 "이 목간은 6세기 무렵 신라 지방촌락의 구조나 경관, 그곳에 영향력을 행사한 국가행정력 등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감말곡 등 지명과 제(堤)라는 글자는 더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출처 :매일신문 배포 2020-01-16 16:44)
한국목간학회 제33회 정기발표회(2019년 동아시아 신출토 목간. 2020.1.28(토).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세미나실)
공개된 목간
<한겨레 신문(2020.1.22)에서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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