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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경주인근자료

경덕왕릉

노촌魯村 2007. 3. 23. 22:11

경덕왕릉

경덕왕 :이름은 헌영(憲英). 성덕왕의 아들이며 효성왕(孝成王)의 동생이다. 왕비는 이찬(伊飡) 순정(順貞)의 딸 김씨와 서불한(舒弗) 의충(義忠)의 딸 만월부인(滿月夫人) 김씨이다. 효성왕이 자식이 없어 739년에 태자로 책봉되었다가 742년에 왕위에 올랐다. 즉위 뒤 왕권의 재강화와 귀족세력의 약화를 목표로 한화정책(漢化政策)을 중심으로 하는 제도개혁을 단행했다. 757년 9주(州)·5소경(小京)·117군(郡)·293현(縣)의 고유 지명을, 759년 관직명을 중국식으로 고쳤다.그러나 귀족세력을 누르고 전제왕권을 강화하려 했던 경덕왕의 개혁정치는 실패로 돌아가 말년에는 귀족세력과 정치적으로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당나라와 11차례의 사신을 파견하여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활발히 교류했다. 당나라의 문화를 수입하여 신라문화의 황금시대를 이룩하고 산업발전에도 힘썼다. 불교 중흥에도 노력하여 황룡사(皇龍寺)의 종(鐘)을 주조하고, 굴불사(掘佛寺)를 비롯하여 영흥사(永興寺)·원연사(元延寺)·불국사(佛國寺) 등 절을 세웠다. 석굴암도 이때 축조되었다. 경주 모지사(毛祗寺)의 서쪽 언덕에서 장사지냈다고 하는데, 왕릉은 월성군 내남면 부지리에 있다.
봉분은 둥근 모양이며, 무덤 주위에 봉분을 보호하기 위한 둘레돌을 둘렀다. 둘레돌은 목조건축물의 돌기단 같은 형태로 되어 있는데, 바닥돌을 깔고 그 위에 면석을 둘렀다. 면석 사이에는 기둥 역할을 하는 탱석을 배치하였다. 탱석에는 두 칸 건너 하나씩 무인 복장을 하고 무기를 든 12지신상이 조각되어 있다. 면석과 탱석 위에는 덮개돌이 놓여 있다. 이 둘레돌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돌기둥 40개를 세워 난간을 둘렀다. 무덤 앞에는 안상문를 새긴 높은 석상이 놓여 있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 왕릉에서 볼 수 있는 돌사자·문인석·무인석과 같은 석조물은 보이지 않는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 무덤의 자리가 이곳인지 확실치 않고, 둘레돌을 다듬는 수법이나 12지신상의 조각수법이 신라 후기에 속하는 것으로 보여 이 무덤이 경덕왕의 무덤인지 의문시하는 견해도 있다.

 경덕왕릉의 석상(혼유석)

 경덕왕릉의 십이지상

 토끼

 

 

 원숭이

 닭

 개

 돼지

경덕왕릉 옛 사진(일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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