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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삼강나루 주막」 국가민속문화유산 지정 예고- 나루터 배경으로 100년 이상 운영된 주막… 나루와 주막의 민속·역사성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생활유산

노촌魯村 2025. 9. 30. 18:42

  국가유산청(청장 허민)은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에 있는 예천 삼강나루 주막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 예고하였다. 

  「예천 삼강나루 주막」은 낙동강(洛東江), 금천(錦川), 내성천(乃城川) 합수되는 곳에 위치한 나루터를 배경으로 1900년경부터 2005년까지 100 이상 주막으로 운영되어 온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갑술년(1934대홍수에도 소실되지 않고 큰 변형 없이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정면 2측면 2칸 규모의 초가집이다주막의 주인이 거처하는 주모방과 접객을 위한 독립된 방이 각 1칸씩이고뒤쪽으로 부엌 1칸과 마루 1칸을 둔 田자형 평면으로연결동선을 최소화하여 접객의 기능에 충실한 집약적인 공간구성을 이룬다또한부엌 내 부뚜막에서 각 방으로 연결되는 아궁이가 따로 연결된 독립된 구들난방 형식을 갖고 있다. 

  주모방에서 출입가능한 부엌 위쪽 다락에는 홍수나 화재의 화를 면하고 주막의 무탈을 기원하는 성주단지가 있어 가신신앙의 모습을 보여준다. 부엌 내부 흙벽에는 외상 처리 표시를 위해 그은 작대기선 원형이  남아있는데, 이는 주막 유산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매우 희소성 있는 자료이다.

  * 성주단지: 집의 건물을 수호하는 가신(家神)을 모신 단지 

  나루에서 연결되는 마을의 입구에 위치한 주막과 함께, 제방에는 동제가 치러지는 동신목과 남근석이 있어 주막의 역사문화경관을 구성하고 있다. 이와 함께지난 130년간 이어져 온 동제의 역사를 기록한 『동신계책(洞神契冊)』 문서를 통해 민속유산으로서의 지속성과 연속성도 확인된다. 특히동제 때 삼강나루를 위한 ‘강신(江神)’과 삼강주막을 위한 ‘주막수호신’에게 소지(燒紙)를 올린 것으로 확인되며마을에서 ‘삼강도선계(三江渡船契)’를 결성해 운영한 문서도 보존되어 있는 등 나루와 주막의 역사와 민속을 총체적으로 재구성하여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높은 가치를 지녔다.

  * 동제(洞祭): 마을을 지켜주는 신에게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

  * 동신목(洞神木):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준다고 여기어 옛날부터 마을 사람들이 신격화하여 보호해 온 나무

  * 남근석(男根石): 민간에서 숭배 대상으로 전승되어온 성기 모양의 돌

  * 소지(燒紙): 부정(不淨)을 없애고 신에게 소원을 빌기 위하여 흰 종이를 태워 공중으로 올리는 일 또는 그런 종이

  * 삼강도선계(三江渡船契): 배를 이용하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사공이 떠난 후 1972년부터 나룻배를 직접 운영하기 위하여 마을에서 결성한 계 

  국가유산청은 「예천 삼강나루 주막」에 대해 30일간의 예고기간 동안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유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또한, 체계적인 보존·관리를 통해 역사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지자체와 협력해 나갈 계획이며앞으로도 민속적 가치가 높은 생활유산들을 적극 발굴·지정하는 적극행정을 이어갈 것이다.

 ** 갑술년(1934대홍수**

1934년(갑술년) 한반도, 특히 영남 지역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대규모 자연재해입니다. 당시 집중적인 폭우로 인해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강들이 범람하여 광범위한 침수와 인명 및 재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특히 영남 지역에서는 큰 홍수 중 하나로 기록될 만큼 피해가 심각했으며, 인명 피해만도 787명에 달했습니다. 대구에서는 금호강과 신천이 범람하고, 동화사 건물들이 무너지고 백안 마을('백안마을'은 여러 지역에 존재하는 지명이지만, 갑술년(1934년) 대홍수와 관련하여 언급되는 마을은 대구광역시 동구 백안동에 위치한 마을을 가리킨다.) 이 물에 휩쓸려 사라지는 등의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경부선 철도가 열흘 동안 불통되었을 정도로 교통망에도 큰 지장을 초래했습니다.

이러한 수해는 단순히 자연재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앗아가 많은 이재민을 발생시켰습니다. 주민들은 집이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공포를 겪었으며, 이후 삶의 터전을 복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경북 예천의 삼강나루 주막처럼 이 대홍수에도 소실되지 않고 원형을 간직한 건물이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기도 합니다. 갑술년 대홍수는 일제강점기 당시 한강 유역의 을축대홍수(1925년)와 함께 한국 수해 역사에서 가장 큰 규모의 피해를 남긴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1934년, 갑술년 홍수가 휩쓴 안동의 모습

 

⃞ 지정명칭 예천 삼강나루 주막 (醴泉 三江나루 酒幕)   

⃞ 지정종별 국가민속문화유산

⃞ 소 재 지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166-1

⃞ 건립시기 1900년경

⃞      : 건축물 1토지 지정구역 1필지 53.2보호구역 9필지 6,585.8

⃞ 지정가치

ㅇ 삼강나루 주막은 금천(錦川), 내성천(乃城川), 낙동강(洛東江등 3개의 강이 합수되는 곳에 위치한 나루터를 배경으로 하여 1900년경부터 운영된 주막으로갑술년(1934대홍수에도 유일하게 소실되지 않고 큰 변형 없이 원형을 간직한 채 2005년까지 주막으로 운영되어 100년이 넘는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

ㅇ 정면 2×측면 2칸 규모의 초가집으로 주막의 주인이 거처하는 주모방과 접객을 위한 독립된 방이 각 1배면으로 부엌 1칸과 마루 1칸을 둔 田자형 평면으로 내외 공간의 연결 동선을 최소화하여 접객의 기능에 충실한 집약적인 공간구성을 이루며부엌 내 부뚜막에서 각 방으로 연결되는 아궁이를 따로 하는 주인과 손님을 위한 독립된 구들난방을 갖고 있음.

ㅇ 주모방에서 출입가능한 부엌 상부 다락에는 홍수나 화재의 화를 면하고 주막의 무탈을 기원하는 성주단지가 있어 가신신앙의 모습을 보여주며부엌 내부 흙벽에는 외상으로 처리할 때 긋는다’ 표현을 연상하는 외상장부 작대기선 원형이 잘 남아있는데 매우 희소성 있는 자료로 주막 유산으로서의 진전성과 완전성을 보여줌.

ㅇ 주막은 나루에서 연결되는 마을의 입구에 위치하고 인접 제방에는 동제가 치러지는 동신목과 남근석이 있어 주막의 역사문화경관을 구성하고 있으며지난 130년의 동제 역사를 기록한  동신계책(洞神契冊)』 문서가 남아있어 민속유산의 지속성을 보여줌.

ㅇ 특히 동제 때 삼강나루를 위한 강신(江神)과 삼강주막을 위한 주막수호신에게 소지(燒紙)를 올린 것으로 확인되며나루운영과 관련하여 마을에서 삼강도선계(三江渡船契)를 결성하여 운영한 문서도 보존되어 있는 등 나루와 주막의 역사와 민속을 총체적으로 재구성하여 이해할 수 있는 유산임.

출처 : 국가유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