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경남 484

낙동강 남지개비리길(경상남도 창녕군 남지읍 용산리-신전리 영아지마을)

낙동강 남지개비리길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읍 용산리~신전리 영아지마을. 거리 : 6.4km. 소요시간 : 2시간 30분 정도 낙동강 남지개비리길은 남지읍 용산마을에서 영아지 마을에 이르는 낙동강 가에 있는 길로 벼랑을 따라 자연적으로 조성된 길이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이 길은 수십 미터 절벽 위로 아슬아슬 이어가며 낙동강이 그려주는 눈부신 풍경을 가슴에 담아 올 수 있는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걷는 시골 여행길이다. 개비리길 주변은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과 의병들이 육지에서 첫 승리를 거둔 기음강 전투의 역사적 현장이며, 한국전쟁의 낙동강 최후 방어선으로 남지철교(등록문화재 제145호)와 함께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출처 : 창녕군청) 개비리길 유래 낙동강 남지개비..

경남 2021.09.20

함양 이은리 석불(咸陽吏隱里石佛)

함양 이은리 석불(咸陽吏隱里石佛.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경남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 354-1번지) 함양읍 이은리 냇가에 방치된 것을 이곳으로 옮겨 놓았는데, 불상 주위 약 300m 지점에 망가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 절의 유물로 추정된다.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를 모두 갖춘 이 불상은 현재 두 손이 떨어져 나갔고, 가슴 아래는 시멘트로 보수하였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낮게 나타나 있으며, 원만한 얼굴에서는 다소 토속적인 표정이 엿보인다. 두 귀는 길고 굵은 목에는 3개의 주름이 뚜렷하며, 두 어깨는 얼굴에 비하여 빈약한 편이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에는 U자형의 평행한 옷주름이 두텁게 묘사되었는데, 충청북도 충주지방 철불들과 비슷한 기법을 보여주고 있어서 주..

경남 2021.07.21

상림공원 - 연 밭 -

상림공원 - 연 밭 - 면적 :66,000㎡. 품종 : 백련 26,000㎡ 홍련 6,600㎡ 황련 330㎡ 분홍련 25,000㎡. 연꽃 및 수생식물 학습장 (8,300㎡) : 308평, 연꽃모방탐방로 340M(열대수련 78종, 한대수련 60종, 고나상련 100종, 수생식물 70종. 함양읍에 위치한 상림의 상동마을을 예부터 연 밭머리라고 불려 왔는데 이는 옛날부터 연 밭으로 유명했다는 증거이다. 이에 따라 함양군에서는 상림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추억과 낭만 그리고 볼거리를 제공하여 상림의 명소로서 키워 나가기 위해 이곳에 연 밭을 조성하였습니다. 상림 연 밭은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조성림인 상림과 어울려 조성이후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어 함양 관광의 필수코스가 되었습니다. 특히 여름 피서 철과 맞물려..

경남 2021.07.21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昌寧述亭里東三層石塔)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昌寧述亭里東三層石塔. 국보 제34호. 경남 창녕군 창녕읍 시장2길 37 (술정리)) 탑이 세워져 있는 창녕군 지역은 삼국시대부터 신라의 영역에 속해 있던 곳이며, 진흥왕 때부터 신라의 정치·군사상의 요지가 되었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로, 통일신라 석탑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기단에는 위·아래층 모두 각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고, 탑신 역시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한 조각이 있다. 지붕돌은 수평을 이루던 처마가 네 귀퉁이에서 살짝 치켜 올라가 간결한 모습이며, 밑면에는 5단의 받침을 두었다. 1965년 탑을 해체, 복원할 당시 3층 몸돌에서 뚜껑달린 청동잔형사리용기 등의 유물들이 발견되었고, 바닥돌 주위에 돌림돌을 놓..

경남 2021.05.25

관룡사(觀龍寺)

해발 739m의 관룡산 서남에 위치하고 있는 관룡사는 산내에 전하는 석조불상 등으로 미뤄 볼 때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추정되지만 그 창건 경위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이후 조선 태종 원년(1401)에 대웅전이 건립되어 있었으나 임진왜란때 소실되었으며 광해군 9년(1617)에 다시 짓고 그 후 영조 25년 (1749)에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른다. 관룡사 내에는 관룡사 약사전 3층석탑(유형문화재 제11호),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 (보물 제295호), 관룡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519호), 약사전(보물 제146호), 부도 등의 많은 불교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292)

경남 2021.05.24

위양못 이팝나무

위양못 이팝나무(주소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위양로 273-36) 신라시대 때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축조된 저수지로 백성들을 위한다는 의미에서 위양지라고도 한다. 저수지 가운데에 5개의 작은 섬과 완재정 이라는 작은 정자가 있다. 이팝나무 등 진귀한 나무들을 심어 사시사철 아름다운 운치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선비와 문인학자들이 즐겨 찾았던 명소이다. 특히 매년 이팝나무 꽃이 만발하는 시기가 되면 그 아름다운 절경이 절정을 이룬다.(출처 : 밀양시청)

경남 2021.05.02

작원관지(鵲院關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3호)

작원관지(鵲院關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3호.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검세리 110)영남지방의 동과 서, 남과 북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에 세운 숙박과 검문을 위한 시설이었다.조선시대에는 공무로 여행하던 관원들의 숙소를 원(院)이라 하고, 출입하는 사람과 화물을 검문하는 곳을 관(關)이라 하였다. 작원관은 관원의 숙소와 일반인의 검문을 위해 지은 시설로, 남해에서 올라오는 왜적의 방어를 담당하기도 하였다.낙동강 가의 작원진(鵲院津)이라는 나루터를 오르내리는 사람과 화물도 검문하였고, 임진왜란 때는 밀양부사 박진 장군이 왜적을 맞아 결사적으로 싸웠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원래는 터를 표시하는 비석만이 남아 있었으나, 1995년 작원관의 성문을 복원하여 세웠다.(출처 : 문화재청)작원관(鵲院關)이 산은 ..

경남 2020.12.30

창녕 관룡사 석조여래좌상(昌寧 觀龍寺 石造如來坐像)

창녕 관룡사 석조여래좌상(昌寧 觀龍寺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519호) 신라시대 8대 사찰 중 하나였던 관룡사의 약사전에 모셔져 있는 불상이다. 표현기법에 있어 절의 서쪽 계곡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창녕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95호)을 본떠 만든 것으로 보인다. 머리에는 큼직하게 표현된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고 이마 위쪽으로 반달 모양이 표현되어 고려시대 불상의 머리 형식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귀는 길게 늘어져 어깨까지 내려오고, 목에 있어야 할 3개의 주름은 가슴 윗부분에 표현되고 있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으며, 옷주름은 얕은 선을 이용해 형식적으로 표현하였다. 겉옷 안에는 두 가닥의 접힌 옷자락이 역시 도식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오른손은 왼발 위에, 왼손은 오른..

경남 2020.10.15

창녕 관룡사 약사전 삼층석탑(昌寧 觀龍寺 藥師殿 三層石塔)

창녕 관룡사 약사전 삼층석탑(昌寧 觀龍寺 藥師殿 三層石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호. 경남 창녕군 창녕읍 화왕산관룡사길 171 (옥천리)) 관룡사 약사전 앞에 있는 3층 석탑이다. 관룡사는 구룡산 중턱에 자리한 절로, 많은 문화재를 전하고 있어 널리 알려져 있으나, 절의 역사에 관한 기록은 전하고 있지 않다. 석탑은 바위를 바닥돌 삼아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의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했고, 가운데기둥 양 옆으로 얇고 넓직하게 안상(眼象)을 새겼다. 위층 기단 역시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새겼다. 탑신부는 1층 지붕돌이 파손이 심한 편이며,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한 개씩의 돌로 쌓아 올렸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으..

경남 2020.10.14

창녕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昌寧 觀龍寺 龍船臺 石造如來坐像)

창녕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昌寧 觀龍寺 龍船臺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295호) 관룡사 근처의 용선대에 있는 석불좌상으로 산꼭대기 높은 바위 위에 모셔졌으며 광배(光背)는 없어진 상태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다. 얼굴은 원만하고 단아한 인상이며 미소를 띤 표정에서는 자비로운 불심(佛心)이 느껴진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몸에 밀착되었으며, 옷주름은 규칙적인 평행선으로 처리되어 도식적인 모습이다. 전반적으로 신체의 양감이 줄어들고 약간 위축된 모습이지만 안정감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무릎에 놓인 손은 두툼하지만 섬세하게 조각되었으며, 앉은 자세에서는 다소 둔중함이 느껴진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

경남 2020.10.14

창녕 관룡사 석장승(昌寧 觀龍寺 石長丞)

창녕 관룡사 석장승(昌寧 觀龍寺 石長丞. 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제6호) 관룡사로 가는 오솔길 양쪽에 서 있는 한 쌍의 돌장승이다. 사찰 입구에 두는 장승은 절의 경계를 표시하는 역할과 더불어 잡귀의 출입을 막고, 풍수지리적으로 허한 곳의 기운을 불어넣는 등의 기능을 하게 되는데, 이곳의 장승은 사찰의 경계표시·수문장의 역할과 함께 마을 사람들에 의해 그들의 수호신이 되고 있다. 왼쪽에 있는 남장승은 높이 220㎝ 둘레 70㎝의 크기로, 상투를 얹은 듯한 둥근 머리에 관모를 쓰고 있다. 툭 튀어 나온 커다란 눈, 콧구멍이 뚫려있는 주먹코가 특이하며, 콧잔등에는 두 개의 주름을 새겨 놓았고, 꼭 다문 입술 사이로 송곳니 두개가 뻗어 나와 있다. 오른쪽의 여장승은 높이 250㎝, 둘레 80㎝로, 사다리꼴 모양의..

경남 2020.10.14

밀양 사명대사 생가지(密陽 四溟大師 生家址)

밀양 사명대사 생가지(密陽 四溟大師 生家址. 경상남도 기념물 제116호) 조선 중기 고승 사명당(1544∼1610)이 태어난 곳이다. 경상남도 밀양 출신으로 속명은 응규이며 호가 사명당이다. 중종 30년 풍천 임씨 집안에서 태어나 13세에 출가하여 직지사 신묵의 제자가 되었다. 금강산에 들어가 수도하던 중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승병을 모아 의병장으로서 활약하였다. 1593년 명나라 구원군이 주축이 되었던 평양성 탈환 전투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선조는 그의 공을 크게 인정하여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의 벼슬을 내렸으며 일본과 강화를 위한 사신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그 뒤, 병을 얻어 해인사에서 요양하다가 광해군 2년(1610) 설법을 마치고 세상을 떴다. 저서로 『사명당대사집』7권..

경남 2020.09.03

밀양 대법사(大法寺)

대법사(大法寺.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무안서로 163-158) 대법사는 사명대사가 강화사로 일본에 다녀온 뒤인 1605년(乙巳)고향으로 돌아와 선영(先塋)이 바라보이는 이곳에 조그마한 초가를 지어‘백하난야(白霞蘭若)’이라 하고 선대의 명복을 빌면서 여생을 보내고자 했던 성지(聖地)이다. 그 해 10월 묘향산으로 길을 떠났던 사명대사가 1610년 합천 해인사 홍재암에서 입적하자 밀양유림에서는 대사의 충(忠)이 지극히 커서 불법으로 그 공훈을 보답하기에는 부족하다하여 “백하난야” 옆에 사당을 창건하고 표충사(表忠祠)라 하였다. 1839년 표충사당이 영정사(표충사)로 옮겨가자 그 자리에 옛 사찰의 명맥을 이어 다시 건립된 것이 현재의 대법사이다. 대법사 경내에는 사명대사가 묘향산으로 들어갈 때 짚고 있던 지..

경남 2020.09.03

밀양 표충비(密陽 表忠碑)

밀양 표충비(密陽 表忠碑.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호.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동부동안길 4) 무안지서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는 비로, 현재는 비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사명대사의 충절을 기리고 있는 비로, 일명 ‘사명대사비’라고도 불린다. 비는 네모난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맨 위에 머릿돌을 얹은 구조로, 특이하게도 비몸은 까만 대리석을 사용하였다. 비문에는 표충사(表忠寺)의 내력, 서산대사의 행적, 사명대사의 행적 등을 4면에 고루 새겨 놓아, 서산대사의 제자이기도 한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당시 스승의 뒤를 이어 의병을 일으켜 활약한 사실, 가토 기요마사와의 담판내용, 정유재란 이후 선조의 어명을 받들어 일본에 건너가 포로 3천여 명을 데리고 온 사실 등을 적고 있다. 조선 영조 18년(1742..

경남 2020.09.02

밀양 추원재(追遠齋)와 점필재 김종직 묘소

밀양 추원재(追遠齋.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59호. 경상남도 밀양시 추원재길 58 (부북면, 추원재)) 조선 전기 문신이자 학자인 김숙자(1389∼1456) 선생이 터를 잡고 그의 아들인 김종직(1431∼1492) 선생이 평생을 보낸 집터이다. 김숙자 선생은 12세 때부터 길재에게 글을 배우고 세종 1년(1419) 문과에 급제한 뒤 현감 등의 벼슬을 지냈다. 16세기 성리학을 보급하고 사림이 확립한 도통(道統)의 계보에서 길재의 학문을 그의 아들인 김종직으로 하여금 잇게 하였으며, 김종직은 현재 성리학의 거두(巨頭)로 인정받고 있다. 이 건물은 여러 차례 전쟁을 겪으면서 파손된 것을 순조 10년(1810) 사림들과 그의 후손들이 다시 고쳐 세운 것이다(출처 : 문화재청) 점필재 김종직 묘소

경남 2020.09.02

영산 연지(硯池)와 항미정(抗眉亭)

항미정(抗眉亭. 경남 창녕군 영산면 서리 139-3) 예부터 영산 고을의 진산인 영축산은 불덩어리의 형상을 띈 산이므로 고을에 화재가 자주 일어날 수 있다하여 "불은 물로 다스린다."는 오행 사항에 의거 화재를 예방하고 또 농사에도 이로운 치수구(治水口)로 벼루모양의 못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연지(硯池)라 하였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가꾸지 않아 못의 구실을 못하다가 1889년 신관조 현감이 다시 파고 막아 개울물을 끌어들이고 하늘의 오성(五星)을 본 따 다섯 개의 섬을 만들었다. 삼년 뒤 그 중 큰 섬에다 여섯 기풍과 굽은 난간에 한 칸의 초가 정자를 세우고 중국의 유명한 항주호수의 미정(眉亭)에 비겨 현판을 항미정(抗眉亭)이라 한 것이 최초의 이 정자이다. 그 후 1920년대 두 칸 사각의 기와 정..

경남 2020.07.06

창녕 비봉리 패총 (昌寧 飛鳳里 貝塚)

창녕 비봉리 패총 (昌寧 飛鳳里 貝塚. 사적 제486호. 경남 창녕군 부곡면 비봉리 43번지 일원) 창녕 비봉리 패총(昌寧 飛鳳里 貝塚)은 경상남도 창녕군 부곡면 비봉리에 있는 신석기시대 패총 유적이다. 2004년 양배수장을 건설하던 중 이곳을 지나던 한 고고학도네 의해 발견되어 2004년 여름에 시굴조사 후 2004년부터 2005년에 거쳐 1차 발굴조사 2010년에 2차 조사가 실시되었다. 2007년 8월 28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486호로 지정되었다. 비봉리 양·배수장을 전시관으로 리모델링해 만든 창녕 비봉리 패총전시관 2017년 4월 1일 개관하였다. 창녕 비봉리 패총전시관은 부지면적 4,183㎡에 연면적 437.5㎡로 지하1층 지상1층 규모로 사업비 1,350백만원을 투입하여 2016년 12월에 ..

경남 2020.07.05

충무공(忠武公) 남이(南怡)장군. 창녕 남휘, 정선공주 묘역(昌寧 南暉, 貞善公主 墓域)

충무공(忠武公) 남이(南怡)장군 동상은 남이장군의 후예인 의령 남씨 의산공파 자손들의 집성촌인 경남 창녕군 부곡면 구산리 충무사(忠武祠)에 있다. 충무사는 남이장군의 조부인 태종의 부마 남휘 · 정선공주 묘역(경남도문화재자료 236호) 100m 옆에 3,600평방미터의 부지위에 건립된 사당으로 이익공 맛배 지붕 한식건물로 평국문(平國門)과 충의문(忠義門)을 포함 7개 건물로 구성 되어 있다. 남이(南怡)장군은 1443년 (세종25년)에 부마 남휘(南暉) · 정선공주(태종4녀)의 장손으로 태어나 17세에 무과에 장원급제하고 1467년(세조13년) 이시애 난을 진압하고 건주야인을 정벌하여 적개공신 훈1등으로 공조판서 겸 오위도총부 도총관이 되었고 26세에 병조판서에 올랐다. 세조가 승하하고 예종이 즉위한14..

경남 2020.07.04

창녕 석빙고 (昌寧 石氷庫. 보물 제310호)

창녕 석빙고 (昌寧 石氷庫. 보물 제310호. 경남 창녕군 창녕읍 송현리 288번지) 창녕군 명덕초등학교 맞은편 도로변에 언덕처럼 보이는 것이 이 석빙고이다. 석빙고는 얼음을 저장해 두기 위해 돌을 쌓아 만든 창고로, 주로 강이나 개울 주변에 만들어진다. 서쪽으로 흐르는 개울과 직각이 되도록 남북으로 길게 위치하고 있으며, 입구를 남쪽으로 내어 얼음을 쉽게 옮길 수 있도록 하였다. 입구 안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밑바닥은 경사졌고 북쪽 구석에는 물이 빠지도록 배수구멍을 두었으며, 바닥은 네모나고 평평하다. 내부는 잘 다듬어진 돌을 쌓아 양옆에서 틀어 올린 4개의 무지개모양 띠를 중간 중간에 두었다. 각 띠 사이는 긴 돌을 가로로 걸쳐놓아 천장을 마무리하였다. 또한 천장의 곳곳에는 환기구멍을 두어 바깥공기..

경남 2020.07.04

창녕 영산 만년교(昌寧 靈山 萬年橋)

창녕 영산 만년교(昌寧 靈山 萬年橋. 보물 제564호. 경남 창녕군 영산면 원다리길 42 (동리)) 마을 실개천 위에 무지개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돌다리로, 실개천이 남산에서 흘러내린다 하여 ‘남천교(南川橋)’라고도 불린다. 개천 양쪽의 자연 암반을 바닥돌로 삼고 그 위에 잘 다듬어진 화강암 석재를 층층이 쌓아 무지개 모양의 홍예(虹霓)를 이루고 있다. 그 위로는 둥글둥글한 자연석을 쌓아 올리고 맨 위에 얇게 흙을 깔아 다리 위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았다. 노면은 곡선을 그리며 양 끝을 길게 늘이고 있어 다리의 분위기를 한결 아늑하게 해준다. 조선 정조 4년(1780)에 처음 쌓은 것을 고종 29년(1892)에 다시 쌓아 놓은 것으로, 지금도 마을 사람들이 통행할 만큼 튼튼하여 홍수 등에..

경남 2020.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