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경남 468

2022 합천 핑크뮬리 군락지 -신소양체육공원-

핑크뮬리 군락지(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영창리 898 신소양체육공원) 경남 합천군 합천읍 신소양체육공원 핑크뮬리가 개화하면서 분홍빛으로 물들고 있다. 합천군은 2019년부터 신소양체육공원에 핑크뮬리를 심었고, 사회관계서비스(SNS) 등을 통해 포토존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핑크뮬리는 벼과 쥐꼬리새속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여름에 자라기 시작해 가을에 분홍색이나 자주색 꽃이 핀다. 같은 벼과 식물인 억새와 닮아서 분홍억새라고도 한다. 핑크뮬리 털쥐꼬리새(Muhlenbergia capillaris, 영어: Hairawn muhly, Pink muhly)는 쥐꼬리새속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미국이 원산이며 미국 서부와 중부지역에서 자란다. 대한민국에서는 영문명을 음독한 핑크뮬리나 이..

경남 2022.10.02

함안 고려동 유적지(咸安高麗洞遺蹟址.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함안 고려동 유적지(咸安高麗洞遺蹟址.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관련항목 보기에 있는 조선 전기에 형성된 마을. 함안 고려동 유적지(咸安高麗洞遺蹟址)는 성균관 진사(進士) 이오(李午)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고려의 유민으로 절의를 지키기로 결심하고 백일홍이 만발한 고려동을 택하여 거처를 정한 뒤 그 후손들이 살아온 장소이다. 함안 고려동 유적지는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 있다. 이오는 끝까지 고려의 유민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은거지 주변에 담을 쌓아 밖은 조선의 영토라 할지라도 안은 고려 유민의 거주임을 명시하는 ‘고려동학(高麗洞壑)’이라는 표비를 세웠다. 여기서 ‘담안’ 또는 ‘장내’라는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또한 담 안에 주거를 만들고 우물을 파 논밭을 일구..

경남 2022.08.24

아라홍련阿羅紅蓮 시배지始培地

2009년 5월 8일 가야문화재연구소가 주관한 제14차 성산산성 발굴조사현장에서 옛 연못의 퇴적층으로 추정되는 지하 4∼5m의 토층을 발굴하던 중 연씨 10알이 발굴됐다. 2009년 5월 26일 대전과학단지 내에 있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중헌 박사에게 그중 2알을 보내 성분 분석과 연대 확인을 의뢰했는데 분석결과 1알은 지금으로부터 650년 전, 1알은 760년 전의 고려시대 것으로 확인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법에 따른 결과 1알은 서기 1160∼1300년일 확률이 93.8%로, 다른 1알은 서기 1270∼1410년일 가능성이 95.4%로 나타나 고려시대의 것임이 명백히 확인되었다. 8알 중 5알은 지난해 5월 20일 농업기술센터에서, 3알은 지난해 5월 8일 함안..

경남 2022.08.24

"3년 만에 찾아온 황금빛 해바라기의 물결” 제10회 강주해바라기 축제 개최

"3년 만에 찾아온 황금빛 해바라기의 물결”제10회 강주해바라기 축제 개최 - 2022년 8월 26일(금)부터 9월 12(월)일까지 열려 - 지역 농‧특산물 판매, 승마체험, 품바공연 등 다채로운 행사 마련 '제10회 강주해바라기 축제'가 함안 법수면 강주마을 일원에서 오는 2022년 8월 26(금)일부터 9월 12(월)일까지 열린다. COVID-19로 축제가 중단 된지 3년 만이다. 2022년 8월 26일(금) 오전 11시 개막식을 시작으로 천연염색 체험 및 판매, 승마체험, 함안군 굿즈 만들기, 지역 농·특산물 판매, 강주마을 농산물 꾸러미 판매, 품바공연, 우산대여 등 다채로운 행사를 선보일 예정이다. 현재, 축제준비가 한창인 현장에는 지난 7월 20,000㎡ 단지에 파종 및 정식을 마친 해바라기가..

경남 2022.08.23

소중한 생명의 텃밭 - 정양늪 생태공원-

정양늪 생태공원(경남 대양면 대야로 730) 지금으로부터 약 1만전 후빙기 이후 해수면의 상승과 낙동강 본류의 퇴적으로 생겨난 정양늪은 합천군 대양면 정양리에 위치한 곳으로 황강의 지류인 아천천의 배후습지이며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지로 생물학적, 생태학적 보존가치가 매우 높은 습지로 보고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황강의 수량과 수위 감소로 육지화되고 인위적인 매립으로 수질악화가 가속되어 습지로서의 기능이 점점 상실되어, 합천군에서는 지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 계속사업으로 「정양늪 생태공원 조성사업」을 3단계로 나누어 추진하였으며 그 결과 정양늪은 생물 다양성의 보고이자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이어주는 생명의 터로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늪 주변을 한바퀴 돌면서 갖가지 생태체..

경남 2022.05.17

경남 합천군 작약재배단지 -핫들생태공원-

경상남도 합천군이 조성한 핫들생태공원 내 작약芍藥 꽃 재배단지에는 크고 탐스러운 작약꽃이 흰색, 붉은색, 분홍색 등 각양각색으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방문객을 즐겁게 하고 있다. 황강변에 위치한 핫들생태공원은 해를 거듭할수록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며, 황강마실길을 따라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파크골프 취미활동으로 휴식과 여유를 즐기는 군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작약은 흰색이나 빨간색 또는 여러 가지 혼합된 색의 꽃은 5~6월에 원줄기 끝에서 1개가 핀다. 중국이 원산지로 관상용이나 약초로 재배된다. 토양이 깊고 배수가 잘 되며 약간 그늘진 곳에서 잘 자란다. 어린잎은 식용하며 뿌리는 한방에서 약재로 사용한다. 작약꽃 재배단지는 2ha 규모에 탐방로와 벤치, 포토존으로 군민들뿐만 아니라 합천을 찾..

경남 2022.05.16

창녕 낙동강 유채단지

창녕군 남지읍 낙동강 유채단지는 전국에서 단일면적으로 최대 규모인 110ha(33만여평)로, 낙동강의 절경과 어우러진 한 폭의 풍경화입니다. 나비와 벌이 꽃처럼 가득한 낙동강유채단지의 아름다움을 전국에 알리고 관광객과 지역민이 함께 어울려 즐기는 축제이며, 2006년 1회를 시작으로 역사와 생태의 고장 창녕군의 대표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 2022년 제17회 창녕낙동강유체축제는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취소되었습니다.

경남 2022.04.20

창녕 남지철교(昌寧 南旨鐵橋) 그리고 능가사(楞伽寺)

창녕 남지철교(昌寧 南旨鐵橋. 국가등록문화재. 경남 창녕군 남지읍 남지리 961번지 외 3필지) 창녕 남지철교는 창녕과 함안 사이의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근대식 트러스* 구조의 철교이다. 1931년 공사를 시작하여 1933년에 개통하였으며 1994년까지 60여 년간 이용되었다. 남지철교는 길이 391.4m, 넓이 6m, 트러스 높이 6m에 달하는 철근 콘크리트 ‘T’자형 다리이다. 다리를 떠받치는 교각 부분에 트러스를 높이 설치하여 물결이 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였다.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과 제작 양식이 같으며 계절의 변화에 따라 철제의 신축을 조절하는 이음장치를 사용하는 등 당시로서는 최신 건축 기술을 적용하였다.(출처 : 문화재청) *트러스(truss) : 여러 개의 직선 부재를 삼각형이나 오각형 형태..

경남 2022.04.19

해인사(海印寺) 국사단(局司壇)

국사단(局司壇)은 본래 대비로전의 자리에 있던 것을 대비로전(大毘盧殿)을 지으면서 옮겨 온 곳이라 한다. 국사단의 최초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1855년, 1899년, 1961년에 중수한 기록이 있으며 현 건물은 2007년 전면 해체 복원되었다. 국사단(局司壇) 국사단은 국사대신을 모신 단으로서 국사대신(局司大神)은 도량이 위치한 산국(山局)을 관장하는 산신과 토지가람신을 가리킨다. 가야산신인 정견모주(正見母主=깨달음의 어머니)는 하늘의 신 이비가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다. 큰 아들인 이진아시왕은 대가야국을, 작은 아들 수로왕은 금관가야국을 각각 건국하였다 한다. 국사대신은 인간세상을 손바닥 보듯이 하면서, 신비스런 현풍(玄風 :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깊고 미묘한 풍경의 아담한 정취)을 떨쳐 해인..

경남 2021.12.12

합천 해인사 삼층석탑 (陜川 海印寺三層石塔.庭中塔)과 합천 해인사 석등(陜川 海印寺 石燈)

합천 해인사 삼층석탑 (陜川 海印寺三層石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길 122 (가야면, 비로전)) 해인사의 대적광전 아래 서 있는 석탑으로, 넓은 뜰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어 일명 ‘정중탑(庭中塔)’이라고도 불린다. 탑은 3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갖춘 모습이다. 원래 기단은 2층이었으나 1926년 수리 시에 기단을 넓히고 한 층을 더 얹음으로써 통일신라 탑의 전형인 2층 기단의 모습을 깨뜨렸다. 위층 기단의 모서리와 가운데, 탑신부의 각 층 몸돌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가 약간 위로 들려 있다. 또한 각 지붕돌에는 네 귀퉁이마다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종이 매달려 있는데 이것은 후대..

경남 2021.11.27

해인사 봉황문(海印寺鳳凰門) 주련(柱聯)

해인사봉황문(海印寺鳳凰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길 122 (가야면, 사찰)) 해인사는 가야산 서남쪽 기슭에 있는 절이다. 의상의 화엄 10찰 중 하나이고, 팔만대장경판이 보관되어 있는 법보 사찰로, 신라 애장왕 때 순응과 이정이 세웠다. 해인사의 두번째 문이며 천왕문, 금강문이라고 불리는 봉황문은 지은 시기를 알 수 없으나 여러 차례 고쳐 지은 기록이 있다. 지금 있는 건물은 순조 21년(1821)에 고쳐 세운 것이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로, 옆면 지붕선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또한, 지붕처마를 받치기 위한 공포가 새날개모양인 익공양식으로 내부에는 사천왕 탱화가 모셔져 있다.(출처 : 문화재청) 일명 천왕문이라고도 한다. 봉황문의 초창 년대는 알 수 없고 ..

경남 2021.11.19

합천 해인사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陜川 海印寺 願堂庵 多層石塔 및 石燈)

해인사 원당암(海印寺 願堂庵) 원당암은 「해인사 1번지」 같은 상징적인 암자다. 해인사와 형제처럼 역사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당 앞에 보물 518호로 지정받아 보호받고 있는 석탑과 석등에도 암자의 나이테가 새겨져 있다. 신라 애장왕(哀莊王)은 공주의 난치병이 낫자 부처의 가호(加護)로 여기고 해인사의 창건을 발원한 순응(順應)대사를 몸소 크게 도와주었다고 한다. 왕은 서라벌을 떠나 가야산에 임시로 작은 집을 지어 절 공사를 독려하고 정사(政事)를 보기까지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의 당암이라는 것이다. 암자가 다시 활기를 찾게 된 것은 혜암(慧菴)스님이 머무른 이후부터였다고 한다. 혜암스님은 해인사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는 해인총림 방장('93년~'96년)스님을 지내시고 1999년 4월에 ..

경남 2021.11.19

하남명례메밀꽃

하남명례메밀꽃(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명례리 1082-9) 밀양아리랑 오토캠핑장 주변 명례 낙동강변에 3만여 평의 메밀꽃 단지가 조성되어 봄과 가을에 메밀꽃을 볼 수 있다. 봄에는 5월에, 가을에는 9월 또는 10월에 메밀꽃을 볼 수 있다. 명례 메밀꽃 단지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지장목과 잡초를 제거한 후 파종하여 가을에 명례 낙동강변이 하얀 물결로 뒤덮게 되었다. 주변 관광지로는 명례성지(성당), 수산제 역사공원, 초동 꽃새미 마을, 사명대사 유적지, 표충비각, 영산정사 등이 있다. 메밀(학멸 : Fagopyrum esculentum Moench) : 석죽목 마디풀과 메밀속(Fagopyrum)에 속하는 식물이며 곡식의 일종. 어원은 '산(뫼, 메)에서 나는 밀'. 원산지는 동아시아 온대 북부의 바이칼호..

경남 2021.10.01

밀양 명례성당(密陽 明禮聖堂)

천주교 신자들의 영적 고향인 명례 성지는 밀양과 김해를 잇는 나루가 있던 낙동강변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다. 밀양 명례성당(密陽 明禮聖堂.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경상남도 밀양시 명례안길 44-3 (하남읍)) 명례성당은 1897년 순교자 신석복 마르코(1828~1866년)의 출생지 바로 옆에 서 있는 성당으로 경남지역에서 가장 일찍 설립된 천주교회 본당이다. 신석복은 1828년에 명례리에서 출생한 소금과 누룩 장수였는데 1866년 병인박해 때 진해 웅천 장에서 돌아오다가 체포돼 대구 감영으로 끌려가 순교 했다. 순교할 때 “나를 놓아준다 해도 다시 천주교를 봉행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유해는 지금 강 건너 진영 천주교 묘지에 봉안되어 있다. 명례 본당의 초대 주임이었던 강성삼 신부(1866~1..

경남 2021.09.30

낙동강 남지개비리길(경상남도 창녕군 남지읍 용산리-신전리 영아지마을)

낙동강 남지개비리길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읍 용산리~신전리 영아지마을. 거리 : 6.4km. 소요시간 : 2시간 30분 정도 낙동강 남지개비리길은 남지읍 용산마을에서 영아지 마을에 이르는 낙동강 가에 있는 길로 벼랑을 따라 자연적으로 조성된 길이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이 길은 수십 미터 절벽 위로 아슬아슬 이어가며 낙동강이 그려주는 눈부신 풍경을 가슴에 담아 올 수 있는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걷는 시골 여행길이다. 개비리길 주변은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과 의병들이 육지에서 첫 승리를 거둔 기음강 전투의 역사적 현장이며, 한국전쟁의 낙동강 최후 방어선으로 남지철교(등록문화재 제145호)와 함께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출처 : 창녕군청) 개비리길 유래 낙동강 남지개비..

경남 2021.09.20

함양 이은리 석불(咸陽吏隱里石佛)

함양 이은리 석불(咸陽吏隱里石佛.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경남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 354-1번지) 함양읍 이은리 냇가에 방치된 것을 이곳으로 옮겨 놓았는데, 불상 주위 약 300m 지점에 망가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 절의 유물로 추정된다.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를 모두 갖춘 이 불상은 현재 두 손이 떨어져 나갔고, 가슴 아래는 시멘트로 보수하였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낮게 나타나 있으며, 원만한 얼굴에서는 다소 토속적인 표정이 엿보인다. 두 귀는 길고 굵은 목에는 3개의 주름이 뚜렷하며, 두 어깨는 얼굴에 비하여 빈약한 편이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에는 U자형의 평행한 옷주름이 두텁게 묘사되었는데, 충청북도 충주지방 철불들과 비슷한 기법을 보여주고 있어서 주..

경남 2021.07.21

상림공원 - 연 밭 -

상림공원 - 연 밭 - 면적 :66,000㎡. 품종 : 백련 26,000㎡ 홍련 6,600㎡ 황련 330㎡ 분홍련 25,000㎡. 연꽃 및 수생식물 학습장 (8,300㎡) : 308평, 연꽃모방탐방로 340M(열대수련 78종, 한대수련 60종, 고나상련 100종, 수생식물 70종. 함양읍에 위치한 상림의 상동마을을 예부터 연 밭머리라고 불려 왔는데 이는 옛날부터 연 밭으로 유명했다는 증거이다. 이에 따라 함양군에서는 상림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추억과 낭만 그리고 볼거리를 제공하여 상림의 명소로서 키워 나가기 위해 이곳에 연 밭을 조성하였습니다. 상림 연 밭은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조성림인 상림과 어울려 조성이후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어 함양 관광의 필수코스가 되었습니다. 특히 여름 피서 철과 맞물려..

경남 2021.07.21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昌寧述亭里東三層石塔)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昌寧述亭里東三層石塔. 국보 제34호. 경남 창녕군 창녕읍 시장2길 37 (술정리)) 탑이 세워져 있는 창녕군 지역은 삼국시대부터 신라의 영역에 속해 있던 곳이며, 진흥왕 때부터 신라의 정치·군사상의 요지가 되었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로, 통일신라 석탑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기단에는 위·아래층 모두 각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고, 탑신 역시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한 조각이 있다. 지붕돌은 수평을 이루던 처마가 네 귀퉁이에서 살짝 치켜 올라가 간결한 모습이며, 밑면에는 5단의 받침을 두었다. 1965년 탑을 해체, 복원할 당시 3층 몸돌에서 뚜껑달린 청동잔형사리용기 등의 유물들이 발견되었고, 바닥돌 주위에 돌림돌을 놓..

경남 2021.05.25

관룡사(觀龍寺)

해발 739m의 관룡산 서남에 위치하고 있는 관룡사는 산내에 전하는 석조불상 등으로 미뤄 볼 때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추정되지만 그 창건 경위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이후 조선 태종 원년(1401)에 대웅전이 건립되어 있었으나 임진왜란때 소실되었으며 광해군 9년(1617)에 다시 짓고 그 후 영조 25년 (1749)에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른다. 관룡사 내에는 관룡사 약사전 3층석탑(유형문화재 제11호),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 (보물 제295호), 관룡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519호), 약사전(보물 제146호), 부도 등의 많은 불교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292)

경남 2021.05.24

위양못 이팝나무

위양못 이팝나무(주소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위양로 273-36) 신라시대 때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축조된 저수지로 백성들을 위한다는 의미에서 위양지라고도 한다. 저수지 가운데에 5개의 작은 섬과 완재정 이라는 작은 정자가 있다. 이팝나무 등 진귀한 나무들을 심어 사시사철 아름다운 운치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선비와 문인학자들이 즐겨 찾았던 명소이다. 특히 매년 이팝나무 꽃이 만발하는 시기가 되면 그 아름다운 절경이 절정을 이룬다.(출처 : 밀양시청)

경남 2021.05.02

작원관지(鵲院關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3호)

작원관지(鵲院關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3호.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검세리 110) 영남지방의 동과 서, 남과 북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에 세운 숙박과 검문을 위한 시설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공무로 여행하던 관원들의 숙소를 원(院)이라 하고, 출입하는 사람과 화물을 검문하는 곳을 관(關)이라 하였다. 작원관은 관원의 숙소와 일반인의 검문을 위해 지은 시설로, 남해에서 올라오는 왜적의 방어를 담당하기도 하였다. 낙동강 가의 작원진(鵲院津)이라는 나루터를 오르내리는 사람과 화물도 검문하였고, 임진왜란 때는 밀양부사 박진 장군이 왜적을 맞아 결사적으로 싸웠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원래는 터를 표시하는 비석만이 남아 있었으나, 1995년 작원관의 성문을 복원하여 세웠다.(출처 : 문화재청) 작원관(鵲院關) ..

경남 2020.12.30

창녕 관룡사 석조여래좌상(昌寧 觀龍寺 石造如來坐像)

창녕 관룡사 석조여래좌상(昌寧 觀龍寺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519호) 신라시대 8대 사찰 중 하나였던 관룡사의 약사전에 모셔져 있는 불상이다. 표현기법에 있어 절의 서쪽 계곡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창녕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95호)을 본떠 만든 것으로 보인다. 머리에는 큼직하게 표현된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고 이마 위쪽으로 반달 모양이 표현되어 고려시대 불상의 머리 형식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귀는 길게 늘어져 어깨까지 내려오고, 목에 있어야 할 3개의 주름은 가슴 윗부분에 표현되고 있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으며, 옷주름은 얕은 선을 이용해 형식적으로 표현하였다. 겉옷 안에는 두 가닥의 접힌 옷자락이 역시 도식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오른손은 왼발 위에, 왼손은 오른..

경남 2020.10.15

창녕 관룡사 약사전 삼층석탑(昌寧 觀龍寺 藥師殿 三層石塔)

창녕 관룡사 약사전 삼층석탑(昌寧 觀龍寺 藥師殿 三層石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호. 경남 창녕군 창녕읍 화왕산관룡사길 171 (옥천리)) 관룡사 약사전 앞에 있는 3층 석탑이다. 관룡사는 구룡산 중턱에 자리한 절로, 많은 문화재를 전하고 있어 널리 알려져 있으나, 절의 역사에 관한 기록은 전하고 있지 않다. 석탑은 바위를 바닥돌 삼아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의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했고, 가운데기둥 양 옆으로 얇고 넓직하게 안상(眼象)을 새겼다. 위층 기단 역시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새겼다. 탑신부는 1층 지붕돌이 파손이 심한 편이며,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한 개씩의 돌로 쌓아 올렸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으..

경남 2020.10.14

창녕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昌寧 觀龍寺 龍船臺 石造如來坐像)

창녕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昌寧 觀龍寺 龍船臺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295호) 관룡사 근처의 용선대에 있는 석불좌상으로 산꼭대기 높은 바위 위에 모셔졌으며 광배(光背)는 없어진 상태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다. 얼굴은 원만하고 단아한 인상이며 미소를 띤 표정에서는 자비로운 불심(佛心)이 느껴진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몸에 밀착되었으며, 옷주름은 규칙적인 평행선으로 처리되어 도식적인 모습이다. 전반적으로 신체의 양감이 줄어들고 약간 위축된 모습이지만 안정감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무릎에 놓인 손은 두툼하지만 섬세하게 조각되었으며, 앉은 자세에서는 다소 둔중함이 느껴진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

경남 2020.10.14

창녕 관룡사 석장승(昌寧 觀龍寺 石長丞)

창녕 관룡사 석장승(昌寧 觀龍寺 石長丞. 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제6호) 관룡사로 가는 오솔길 양쪽에 서 있는 한 쌍의 돌장승이다. 사찰 입구에 두는 장승은 절의 경계를 표시하는 역할과 더불어 잡귀의 출입을 막고, 풍수지리적으로 허한 곳의 기운을 불어넣는 등의 기능을 하게 되는데, 이곳의 장승은 사찰의 경계표시·수문장의 역할과 함께 마을 사람들에 의해 그들의 수호신이 되고 있다. 왼쪽에 있는 남장승은 높이 220㎝ 둘레 70㎝의 크기로, 상투를 얹은 듯한 둥근 머리에 관모를 쓰고 있다. 툭 튀어 나온 커다란 눈, 콧구멍이 뚫려있는 주먹코가 특이하며, 콧잔등에는 두 개의 주름을 새겨 놓았고, 꼭 다문 입술 사이로 송곳니 두개가 뻗어 나와 있다. 오른쪽의 여장승은 높이 250㎝, 둘레 80㎝로, 사다리꼴 모양의..

경남 2020.10.14

밀양 사명대사 생가지(密陽 四溟大師 生家址)

밀양 사명대사 생가지(密陽 四溟大師 生家址. 경상남도 기념물 제116호) 조선 중기 고승 사명당(1544∼1610)이 태어난 곳이다. 경상남도 밀양 출신으로 속명은 응규이며 호가 사명당이다. 중종 30년 풍천 임씨 집안에서 태어나 13세에 출가하여 직지사 신묵의 제자가 되었다. 금강산에 들어가 수도하던 중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승병을 모아 의병장으로서 활약하였다. 1593년 명나라 구원군이 주축이 되었던 평양성 탈환 전투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선조는 그의 공을 크게 인정하여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의 벼슬을 내렸으며 일본과 강화를 위한 사신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그 뒤, 병을 얻어 해인사에서 요양하다가 광해군 2년(1610) 설법을 마치고 세상을 떴다. 저서로 『사명당대사집』7권..

경남 2020.09.03

밀양 대법사(大法寺)

대법사(大法寺.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무안서로 163-158) 대법사는 사명대사가 강화사로 일본에 다녀온 뒤인 1605년(乙巳)고향으로 돌아와 선영(先塋)이 바라보이는 이곳에 조그마한 초가를 지어‘백하난야(白霞蘭若)’이라 하고 선대의 명복을 빌면서 여생을 보내고자 했던 성지(聖地)이다. 그 해 10월 묘향산으로 길을 떠났던 사명대사가 1610년 합천 해인사 홍재암에서 입적하자 밀양유림에서는 대사의 충(忠)이 지극히 커서 불법으로 그 공훈을 보답하기에는 부족하다하여 “백하난야” 옆에 사당을 창건하고 표충사(表忠祠)라 하였다. 1839년 표충사당이 영정사(표충사)로 옮겨가자 그 자리에 옛 사찰의 명맥을 이어 다시 건립된 것이 현재의 대법사이다. 대법사 경내에는 사명대사가 묘향산으로 들어갈 때 짚고 있던 지..

경남 2020.09.03

밀양 표충비(密陽 表忠碑)

밀양 표충비(密陽 表忠碑.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호.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동부동안길 4) 무안지서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는 비로, 현재는 비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사명대사의 충절을 기리고 있는 비로, 일명 ‘사명대사비’라고도 불린다. 비는 네모난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맨 위에 머릿돌을 얹은 구조로, 특이하게도 비몸은 까만 대리석을 사용하였다. 비문에는 표충사(表忠寺)의 내력, 서산대사의 행적, 사명대사의 행적 등을 4면에 고루 새겨 놓아, 서산대사의 제자이기도 한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당시 스승의 뒤를 이어 의병을 일으켜 활약한 사실, 가토 기요마사와의 담판내용, 정유재란 이후 선조의 어명을 받들어 일본에 건너가 포로 3천여 명을 데리고 온 사실 등을 적고 있다. 조선 영조 18년(1742..

경남 2020.09.02

밀양 추원재(追遠齋)와 점필재 김종직 묘소

밀양 추원재(追遠齋.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59호. 경상남도 밀양시 추원재길 58 (부북면, 추원재)) 조선 전기 문신이자 학자인 김숙자(1389∼1456) 선생이 터를 잡고 그의 아들인 김종직(1431∼1492) 선생이 평생을 보낸 집터이다. 김숙자 선생은 12세 때부터 길재에게 글을 배우고 세종 1년(1419) 문과에 급제한 뒤 현감 등의 벼슬을 지냈다. 16세기 성리학을 보급하고 사림이 확립한 도통(道統)의 계보에서 길재의 학문을 그의 아들인 김종직으로 하여금 잇게 하였으며, 김종직은 현재 성리학의 거두(巨頭)로 인정받고 있다. 이 건물은 여러 차례 전쟁을 겪으면서 파손된 것을 순조 10년(1810) 사림들과 그의 후손들이 다시 고쳐 세운 것이다(출처 : 문화재청) 점필재 김종직 묘소

경남 2020.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