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기억의 껍질
푸른 풀숲 사이,
그윽한 향기 뿜어내는 보랏빛 맥문동 꽃.
그 여린 꽃대에 매달린 채
누군가 남기고 간 단단한 기억의 껍질 하나.
차가운 흙 속에서 견뎌낸 긴 기다림,
뜨거운 태양 아래 울어대던 짧은 여름날의 노래,
모든 수고와 열정을 뒤로하고
자유를 향해 날아간 매미의 흔적.
텅 빈 허물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지만,
그 안에 품었던 간절한 꿈과 열망은
꽃의 생명력을 빌어 보랏빛으로 피어난 듯.
지나간 날들의 기억은
아름다운 꽃으로 승화되어
다시 피어날 준비를 한다.
숲길에서 만난 보랏빛 궤적
늦여름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맑게 부서지는 숲길을 걸었습니다. 고운 보랏빛 맥문동 꽃대 위를 거닐다 우연히 작은 매미 허물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캄캄하고 차가운 흙 속에서 견뎌낸 그 길고 길었던 침묵의 시간들.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와 온 힘을 다해 목청껏 노래했던 짧은 여름날의 열정. 그 모든 수고를 뒤로한 채, 매미는 이제 진정한 자유를 찾아 푸른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꽃대에 오롯이 매달린 껍질은 그가 세상에 남기고 간 단단하고 아름다운 흔적이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비어 있는 껍데기일 뿐이지만, 그 속에는 한 생애가 품었던 간절한 이야기가 여전히 숨을 쉬고 있는 듯했습니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작고 단단한 외피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아득한 세월 동안 열정을 다해 치열하게 살아온 우리네 인생길이 아련하게 겹쳐졌습니다.
언젠가 우리 역시 세상에서 주어진 소명을 다하고 짊어진 짐들을 내려놓을 날이 올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마지막 자취는 결코 쓸쓸한 이별이 아닐 것입니다. 한 허물을 기꺼이 벗어던지고 더 넓은 세계로 날아오르는, 참으로 빛나는 승화일 테니까요.
맥문동의 고결한 보랏빛을 바라봅니다. 마치 매미 허물이 가슴 깊이 품었던 꿈과 염원이 아름다운 생명력을 얻어 다시 피어난 것처럼 영롱하기만 합니다. 지나온 날들의 상흔과 수고로움을 온전히 끌어안을 때, 삶의 가파랐던 고통은 비로소 단단한 지혜로 결실을 맺는가 봅니다.
오늘이라는 이 짧고도 소중한 순간 속에서, 존재의 깊이를 온몸으로 증명해 낸 그 보랏빛 궤적을 고요히 마음으로 음미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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