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효세업 청백가성(忠孝世業 清白家聲)
1. 한자 및 음독
- 右 (오른쪽 줄): 忠 孝 世 業 (충효세업)
- 左 (왼쪽 줄): 清 白 家 聲 (청백가성)
2. 각 한자의 풀이
- 忠孝世業 (충효세업)
- 忠(충성 충), 孝(효도 효), 世(대 세/세상 세), 業(업 업/업적 업)
- 의미: 나라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도를 대대로 이어가는 가문의 업(가업)으로 삼는다.
- 清白家聲 (청백가성)
- 清(청렴할 청), 白(깨끗할 백), 家(집 가), 聲(소리/명성 성)
- 의미: 청렴하고 깨끗한 가문의 명성과 가풍을 널리 알리고 이어간다.
3. 전체적인 의미
"충성과 효도를 대대로 전해지는 가업으로 삼고, 청렴하고 깨끗한 가문의 명성을 이어간다."
** 조선시대 선비 정신과 유교적 덕목을 대표하는 구절로, 가문의 명예와 바른 가풍을 후손들에게 경계하고 전수하기 위해 세운 문중 비석이나 마을 입구의 기념비 등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좋은 글귀입니다.**

현풍곽씨십이정려각 (玄風郭氏十二旌閭閣. 대구 달성군 현풍면 지리 1348-2번지)
현풍 곽씨 집안의 유교 도덕에 기본이 되는 삼강(三綱)을 지킨 28인의 정려비로, 선조 31년(1598)부터 영조 때(재위 1567∼1608)까지 포상된 12명을 한 곳에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인 삼강을 잘 지키면 이를 국가에서 포상하며 기리도록 하였다. 한 마을의 한 성씨(곽씨)에서 12명의 포상자가 나왔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로서, 정려를 받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임진왜란 때 안음현감 곽준이 황석산성에서 두 아들과 같이 전사하게 되자 며느리와 출가한 딸이 남편을 따라 자결하였기에 선조가 정려했다.
곽재훈의 아들 4형제가 임진왜란 때 병환 중에 있는 아버지를 왜적으로부터 보호하였기에 선조가 정려했다.
곽재기의 부인 광주 이씨는 임진왜란 때 왜병을 만나자 순결을 지키기 위해 물에 빠져 죽었기에 선조가 정려했고, 곽홍원의 부인 밀양 박씨는 강도가 들어와 남편을 해치려 하자 죽음으로써 남편을 보호하였기에 현종이 정려했다.
곽수영의 부인 안동권씨는 남편이 병으로 위독하게 되자 자신이 대신 죽기를 기원했으나, 남편이 죽게 되자 먹지 않고 따라 죽게 되니 현종이 정려했다.
건물은 앞면 12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꾸몄다.
정려각 안에는 2개의 비석과 12개의 현판이 있다. 건물과 현판은 최근 것이나, 12정려각은 그 유례가 흔치 않은 것으로 중요한 유산이라 할 수 있다.(출처 :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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