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 위치한 신숭겸 장군 유적지(대구광역시 기념물) 내 표충단(表忠壇)과 순절비각의 풍경
백제와의 공산전투 역사 및 배롱나무와 어우러진 이 공간의 내력
1.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 장군과 공산전투
927년(태조 10년), 신라를 침공한 후백제 견훤의 군사를 저지하기 위해 태조 왕건은 대구 공산(현재의 팔공산 일대)으로 출전하였습니다. 그러나 후백제군의 기습으로 왕건의 군대는 포위되어 절대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개국공신인 장절공(壯節公) 신숭겸 장군은 왕건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옷을 왕건의 왕복과 바꿔 입고, 자신이 왕인 것처럼 위장하여 적진으로 뛰어들어 장렬하게 전사하였습니다. 사이에 왕건은 무사히 적진을 탈출하여 훗날 고려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2. 표충단(表忠壇)의 조성과 내력
전투가 끝난 후, 왕건은 장군의 시신을 찾았으나 머리가 베어져 식별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왕건은 장군의 왼쪽 발바닥에 있는 점을 보고 시신을 거두어 개성에 신단(神壇)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게 하였으며, 장군이 전사한 바로 이 자리에 머리 대신 금(金)으로 만든 머리를 매장하고 단을 쌓아 넋을 기리게 했습니다. 사진 속 사각형의 흙무덤 형태로 보이는 봉분이 바로 장군이 순절한 자리를 기념하는 표충단입니다.
3. 비각과 배롱나무의 역사적 의미
표충단 옆에 위치한 작은 한옥 기와 건물은 장군의 충절을 기록한 순절비를 보호하는 비각(비보호각)입니다. 1819년(순조 19년) 신숭겸 장군의 후손인 신의직이 대구영장으로 부임하여 단과 비를 새로 정비하였고, 1856년(철종 7년)에 비각이 창건되었습니다.
표충단을 둘러싸고 있는 수령 400년 이상의 배롱나무(목백일홍)들은 한여름이면 진분홍빛 꽃을 만개하여 붉은 피로 왕과 나라를 지킨 장군의 뜨거운 충의를 상징하는 듯한 단장하고 고즈넉한 풍경을 자아냅니다.

대구 동구 지묘동(智妙洞)과 그 주변 일대는 927년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이 맞붙었던 공산 전투(동수 전투)의 핵심 격전지로, 왕건 및 신숭겸 장군과 관련된 지명 유래가 깊게 서려 있는 곳입니다.
지묘동(智妙洞)
유래:왕건을 대신해 전사한 충신 신숭겸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절, '지묘사(智妙寺)'에서 이름이 유래했습니다.
배경:공산 전투에서 후백제군에 포위되어 왕건의 목숨이 태산석악처럼 위태로워지자, 신숭겸 장군이 왕건의 옷을 바꾸어 입고 대신 전사하였습니다.목숨을 건진 왕건은 훗날 신숭겸이 전사한 바로 그 자리에 절을 지어 넋을 기렸는데, 그 절이 지묘사였으며 후대 사람들이 이를 따라 마을 이름을 '지묘동'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현재 지묘사 터에는 신숭겸 장군 유적지와 표충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묘동 주변의 왕건 관련 지명
왕산(王山):지묘동 표충사 바로 뒷산입니다.신숭겸 장군이 대신 전사하는 동안 왕건이 적의 포위망을 뚫고 이 산으로 올라가 능선을 타고 무사히 피신했기에 '왕이 오른 산'이라는 뜻으로 왕산이라 부릅니다.
파군재(波軍峙):지묘동과 봉무동·불로동 경계에 있는 고개입니다.견훤군의 거센 공격으로 왕건의 고려군 부대가 흩어지고 크게 패했다(破軍)는 데서 유래한 지명입니다. (현재 파군재 삼거리에는 신숭겸 장군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나팔고개:지묘동과 연경동 사이에 있는 고개입니다.공산 전투 당시 후백제군이 고려군을 압박하며 승리의 나팔을 불었던 곳, 혹은 왕건의 군사가 신호 나팔을 불었던 고개라 하여 나팔고개라 전해집니다.
살내(전탄): 동화천을 사이에 두고 고려군과 후백제군이 쏜 화살이 하천을 가득 메워 '화살의 시내'라는 뜻으로 불렸습니다.
연경동
유래:왕건이 도망치는 길에 마을을 지날 때, 선비들이 책 읽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온 곳이라 하여 '연경(研經)'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배경:패전 후 급박하게 피신하던 왕건이었으나, 이 지역 마을의 평화롭고 글 읽는 소리에 잠시 마음을 가다듬었다는 전설이 담겨 있습니다.
불로동
유래:'늙은이가 없는 마을'이라는 뜻의 불로동(不老洞)입니다.
배경:왕건이 도주하던 중 이 지역에 이르렀을 때, 어른들은 전쟁의 화를 피하고자 모두 피난을 가고 어린아이들만 남아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 전해집니다.
반야월
유래:'한밤중에 뜬 달'이라는 뜻의 반야월(半夜月)입니다.
배경:패잔병을 이끌고 밤새 도망치던 왕건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때마침 하늘에 반달이 떠올라 도주로를 비추어 준 데서 유래했습니다.
안심동
유래:'마음을 놓다'라는 뜻의 안심(安心)입니다.
배경:반야월자세한 내용을 보려면 클릭하여 측면 패널을 여세요을 지나 동쪽으로 계속 피신하던 왕건이 후백제군의 추격권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느끼며 비로소 '이제야 살았구나' 하고 안도(安心)한 데서 지명이 생겨났습니다.
팔공산(八公山)
원래 이름은 '공산'이었으나, 이 전투에서 왕건을 대신해 전사한 신숭겸, 김낙 등 여덟 장수(八公)를 기리기 위해 팔공산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기타 관련 피난길 지명
무태(無怠):연경동에 도달하기 전 지난 곳으로, 왕건이 군사들에게 '태만함이 없도록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하여 붙겨진 이름입니다.
초례봉(初禮峰):안심 지역 인근 산봉우리로, 왕건이 목숨을 구한 뒤 하늘에 감사하는 절을 올렸다고 해서 유래했습니다.
시랑(失王里): 평광동 일대로, 피신 중 나무꾼에게 주먹밥을 얻어먹은 왕건이 급히 떠나자 나무꾼이 "왕을 잃어버렸다"고 한 데서 유래했습니다.
안일사 / 은적사 (앞산): 앞산 골짜기로 숨어든 왕건이 3일 동안 은신한 굴이 있는 곳을 은적사(隱迹寺), 숨어서 편안하게 쉬었다는 곳을 안일사(安逸寺)라 부릅니다.
해안(解顔): 피신을 거듭하다 비로소 얼굴(顔)의 근심을 풀었다(解)는 의미의 지명입니다.
안심(安心): 후백제군의 추격권에서 완전히 벗어났음을 느끼고 비로소 "이제야 마음이 안심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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