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삶의 맥락을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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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너머의 진실

노촌魯村 2026. 8. 19. 18:54

흐린 날의 관측, 그리고 존재의 울림

  무채색의 하늘, 그 어떤 희망이나 격정도 말라버린 듯한, 그저 '거대하고 무거운 현존(現存)'으로서의 흐림을 마주합니다. 내 팔십 년 생의 기억들이 저 하늘처럼 회색빛으로 바래가는 듯한 느낌, 그것은 슬픔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일종의 숭고한 평온입니다. 이 나이가 되면 격정은 낯선 손님이 되고, 모든 것은 그저 '그러함'으로 다가옵니다.

  그 회색의 캔버스 위에, 인간이 세워 올린 기하학적인 구조물이 서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에 맞서는 투쟁의 흔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연을 이해하려는 가냘픈 손짓이기도 합니다. 차가운 금속으로 짜인 저 타워는 대지의 인력을 이겨내고 하늘을 향해 수직의 의지를 드러냅니다. 바람의 속도를 재고, 소리를 수집하고, 어둠을 밝히려는, 인간이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쌓아 올린 지식과 기술의 총체. 그것은 내 안에 평생을 지배해 온 이성의 불꽃과도 같습니다. '이해'라는 갈망, '명징(明澄)'이라는 열망, 그것이 저 금속 구조물의 골조와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 구조물은 결코 자연 위에 서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연이라는 거대한 몸체 위에 얹혀있을 뿐입니다. 하늘이 더 어두워지면 저 구조물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것이고, 바람이 더 거세지면 그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꺾일 것입니다. 인간의 지식은 늘 저 흐린 하늘 아래서만 유효한, 유한한 것임을 저 타워는 웅변하고 있습니다. 나의 철학, 나의 사색 또한 이 거대한 침묵 앞에서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는지, 다시금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차가운 금속 구조물의 정점에, 또 하나의 작은 현존이 서 있습니다. 검은 새 한 마리. 그것은 어둠 그 자체인 동시에, 이 죽은 듯한 무채색의 풍경 안에서 유일하게 맥박이 뛰는 생명입니다. 그것은 하늘을 관측하는 인위적인 기계 위에 앉아, 그 누구보다 더 직접적으로 이 흐린 날의 바람을 온몸으로 관측하고 있습니다.

  저 새는 도구를 만들지도, 지식을 쌓지도 않지만, 지금 이 순간, 이 공간의 가장 진실한 일부가 되어 존재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설명할 필요도, 증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존재할 뿐입니다. 그것은 죽은 지식이 아닌, 살아있는 '존재의 방식'을 가르쳐 줍니다. 저 새를 보며, 나는 평생을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애썼던 내 모습이 오히려 존재의 본질을 가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자문해 봅니다.

  이제 나는 저 흐린 하늘, 차가운 타워, 그리고 검은 새를 한 장의 사진이 아닌, 내 삶의 비유로 받아들입니다. 내 육체는 쇠락해 가고, 내 지식은 저 타워처럼 낡아가지만, 내 안에 깃든 '의식'의 작은 불꽃은 저 새처럼 끝까지 저 차가운 정점을 지킬 것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안다'는 것보다 '존재한다'는 것이 훨씬 더 위대하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흐린 날의 관측은, 인간의 오만이 아닌, 존재의 겸손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저 새가 고개를 돌려 더 깊은 회색빛 하늘을 응시할 때, 나 또한 내 안에 깊이 침전해 있는, 말할 수 없는 그것에 더 가까이 다가섭니다. 그것이 내 삶의 마지막, 그리고 가장 진실한 관측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