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경주/경주인근자료 470

국립경주박물관 - 특별공개 '傳 황복사 터 출토 신자료' -

국립경주박물관은 2021년 특별공개 전시로 '전傳 황복사 터 출토 신자료'를 개최합니다. 황복사는 신라의 고승 의상義湘(625-702)이 출가한 사찰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의상이 황복사에 있을 때, 여러 사람과 탑을 돌면서 계단이 아닌 허공을 밟고 올랐다는 기이한 이야기가 전합니다 그런데 황복사터를 황복사라 단정할 만한 확실한 근거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유적 주변에서 황복사皇福寺라고 씌어진 기와 조각이 발견되었다고 전하나, 사찰과의 직접적인 관련성을 파악하기 어려워 명칭 앞에 전傳자를 붙이게 되었습니다. 이 유적에서는 기단석으로 사용되던 십이지신상이 확인되어 1920년대 후반부터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1942년에는 절터 내 삼층석탑에서 사리갖춤이 발견되어 화제를 모았습니다. ..

세계 名車들 경주 총집합 –경주세계자동차박물관-

세계 名車들 경주 총집합 –경주세계자동차박물관- 경주세계자동차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의 규모로 2017년 3월 29일 경주시민 등을 초청 개관식 행사를 개최하였다. 경주세계자동차박물관은 1886년 세계 최초내연휘발유 자동차인 독일의 벤츠 페이턴트카를 비롯해 헐리웃 스타가 사랑한 명차, 역대 대통령이 이용했던 차, 추억의 명화 속 한 장면을 연출하는 클래식 카, 예술적가치가 높은 희귀 자동차, 젊은 층이 애호하는 F-1카 등을 볼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타던 크라이슬러 :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방을 다닐 때 타던 자동차는 1969년 생산한 크라이슬러의 뉴요커다. 1886년 생산한 세계 최초의 내연 휘발유 자동차는 독일 벤츠의 ‘페이턴트’다. 미국에서 가장오래 살아남은(2004년 기준) 자동차..

황성공원(皇城公園)과 맥문동

황성공원(皇城公園. 경주시 원화로 431-12)과 맥문동 황성공원은 삼릉에 뒤지지 않는 멋스러운 소나무와 수 백 년 수령을 자랑하는 고목이 어우러져 울창한 숲을 이룬다. 여름이면 솔숲 산책로에 맥문동 군락이 조성되어 수려한 풍광을 더해주고, 가을이면 느티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고목이 아늑하게 물든다. 황성공원 중간에 솟아오른 동산에 자리한 김유신 장군 기마상도 볼거리다. 그리고 충혼탑, 6.25 참전· 월남전 참전 명예선양비, 박목월 노래비(얼룩송아지), 동리東里 김시종金始鍾 선생의 문학동산 비, 동전東田 서정수 시비(낮달), 복양 오세재 선생 문학비, 이경록 시비(사랑歌), 이임수 시비(풍경소리),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이 있다. 경주시는 2015년부터 황성공원에 맥문동麥門冬을 심기 시작해..

경주 남천(南川) 교촌교와 문천교 사이의 둔치 해바라기

남천(南川) 신라시대부터 경주 월성 앞에 있는 제법 중요한 하천이었다. 남산에 가려면 건너야 했고, 그로 인해 월정교가 건설 되었다. 또 남궁으로 추정되는 現 국립경주박물관 쪽으로 건너는 다리 일정교도 있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문천(蚊川)이라 하였는데, 이는 토박이말 몰갱이(모래)가 모갱이(모기)랑 비슷해서 문천, 즉 모기내라는 터무니없는 이름이 붙었다. 상류 구간은 사등이천(史等伊川)이라 부른다고 한다. (출처: 최용주-역사의 땅 경주, 아름다운 전설과 함께하다.) 강변의 도로는 북쪽으로는 서천야구장부터 월정교까지는 강변로, 오릉교부터 국립 경주 박물관까지는 일정로가 있고 그 외의 작은 도로들이 있다. 시내에서는 그렇게 가깝지는 않지만 유명 관광지 황리단길에서는 제법 가깝다. 남천을 따라가면 많은 관..

황성공원(皇城公園)의 맥문동(麥門冬)

황성공원(皇城公園)의 맥문동(麥門冬) 황성공원은 삼릉에 뒤지지 않는 멋스러운 소나무와 수 백 년 수령을 자랑하는 고목이 어우러져 울창한 숲을 이룬다. 여름이면 솔숲 산책로에 맥문동 군락이 조성되어 수려한 풍광을 더해주고, 가을이면 느티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고목이 아늑하게 물든다. 황성공원 중간에 솟아오른 동산에 자리한 김유신 장군 기마상도 볼거리다. 경주시는 2015년부터 황성공원에 맥문동麥門冬을 심기 시작해 현재 약 1.5ha가 넘는 부지에 맥문동 단지를 조성했다. 맥문동은 백합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그늘에 잘 자라며 높이는 30~50센티미터이고, 뿌리는 짧고 굵으며 한약재로 쓰인다. 잎은 짙은 녹색이고 뿌리에서 뭉쳐나며 난(蘭) 모양으로 사철 푸르며 8월에 보라색 꽃을 피운다. 황성공원의 맥..

경주 동부사적지대 꽃 단지(7월)

첨성대, 동궁과 월지, 월성, 계림을 아우르는 드넓은 동부사적지대 일원에는 계절별로 화초 군락과 야생화 단지가 조성된다. 봄 유채, 봄과 여름 사이 양귀비, 접시꽃, 여름의 연꽃, 플록스, 백일홍, 황화코스모스, 가을의 핑크뮬리 등 매 계절 매 다른 색감으로 여행자의 발길을 부여잡는다. 첨성대 꽃 단지의 7월에는 하늘을 향해 늘씬하게 뻗은 줄기에는 해를 닮은 노란 꽃의 해바라기와 연꽃이 그 빛을 강렬하게 뽐낸다.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慶州 高仙寺址 三層石塔)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慶州 高仙寺址 三層石塔. 국보. 경북 경주시 일정로 186, 국립경주박물관 (인왕동)) 원효대사가 주지로 있었던 고선사의 옛 터에 세워져 있던 탑으로, 덕동댐 건설로 인해 절터가 물에 잠기게 되자 지금의 자리인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 세워 놓았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놓은 모습인데, 통일신라시대 석탑양식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기단은 여러 개의 돌로 구성하였으며, 각 면에는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탑신도 여러 개의 돌이 조립식으로 짜 맞추어져있으나, 3층 몸돌만은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사리장치를 넣어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배려로, 석탑을 해체·복원하면서 밝혀졌다. 지붕돌은 윗면에 완만한 경사가 흐르는데, 아래로 미끄러지는 네 귀..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천년 묵은 옛터에 풀은 여전히 새롭네」개최

신라의 사찰을 사진으로 만나다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천년 묵은 옛터에 풀은 여전히 새롭네」개최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최선주)은 2021년 6월 30일(수)부터 2021년 10월 3일(일)까지 특별전시관에서 사진전 「천년 묵은 옛터에 풀은 여전히 새롭네」를 개최한다. 이번 특별전은 올해 말 신라미술관 개편에 앞서 신라 불교 미술에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기획하였다. 문화재 사진으로 유명한 한석홍, 안장헌, 오세윤 작가가 수십 년에 걸쳐 찍은 사진들 가운데 경주 지역 불교 유적을 담은 57점을 골라 선보인다. 조선시대 문신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쇠락한 경주 분황사(芬皇寺)를 보며 “황룡사(皇龍寺)와 마주하여 서 있는 분황사 천년 묵은 옛터에 풀은 여전히 새롭네(芬皇寺對黃..

국립경주박물관의 다보탑 석가탑

- 다보탑 석가탑 신건기 - 토함산 불국사 대웅전 앞뜰에 통일신라기의 예술작품으로 우리 국보 제20호 다보탑과 제21호 석가탑이 서 있다. 소박하면서도 장중한 착상과 정교하면서도 수려한 솜씨라 그 시대 석탑 예술품 중에서도 가장 우수하게 치는 작품이요, 거기 겨레의 얼이 배어들었기(에) 봄, 가을 천년 세월이 지났건만 신라사람 숨소리 귀에 들린다. 그러나 비바람에 씻기고 깎여 절묘한 옛 모습 사라져 가므로 박정희 대통령이 그것을 보고 미리 먼 뒷날을 걱정한 나머지 두 탑을 새로 만들라 분부했다. 이 방면 학자들과 기술진들이 옛 탑의 석질과 같은 돌을 찾아 월성군 외동면 북토리 산에서 풍화에 강한 화강암을 캐어와 두 탑의 원형대로 새로 만들어 이곳 박물관 뜰에 세우는 뜻은 첫째, 옛 탑 전통을 잇자함이요,..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慶州 羅原里 五層石塔)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慶州 羅原里 五層石塔. 국보. 경북 경주시 현곡면 나원리 676) 나원리 마을의 절터에 남아 있는 석탑으로, 경주에 있는 석탑 가운데 경주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국보 제112호)과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8호)과 비교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천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순백의 빛깔을 간직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나원 백탑(白塔)’이라 부르기도 한다. 2층 기단(基壇)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으로, 기단과 1층 탑신의 몸돌, 1·2층의 지붕돌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은 각 면마다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겼는데, 가운데 조각을 아래층은 3개씩, 위층은 2개씩 두었다. 탑신부는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 기둥 모양..

한국의 돈황이라 칭하는 골굴사(骨窟寺)

한국의 돈황이라 칭하는 골굴사(骨窟寺)(경주시 문무대왕면 기림로 105-5) 골굴사는 토함산의 이웃산인 함월산 불교 유적지 중 가잔 오랜 역사를 품은 절이다. 불교가 국교로 번성하던 신라시대 6세기 경, 인도에서 온 광유(光有) 성인 일행이 12개 석굴로 가람을 조성하여 법당과 요사로 사용했다. 석회암 절벽을 깎아 만든 인공 석굴사원으로 한국의 둔황석굴이라고도 불린다. 가장 꼭대기 석굴에는 보물581호로 지정된 ‘경주 골굴암 마애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국내 관광객은 물론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사찰 골굴사는 선무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절이다. 마음의 평화와 참 나를 찾는 불가 전통의 수행법인 ‘선무도’를 체험하고, 시연하는 프로그램이 골굴사에 마련되어 있다. 골굴암 이름의 유래 신라 불상의..

경주 쪽샘 44호 적석목곽묘

최근 여러 방송 매체에서 쪽샘 44호분의 발굴과정과 출토유물이 소개되면서 쪽샘유적과 신라 고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마련한 행사이다. 쪽샘유적은 신라 왕족과 귀족 등 최고 지배계층의 집단무덤으로 알려져 있으며, 신라 고분의 학술적 가치를 밝히기 위해 쪽샘 44호분은 2014년부터 8년째 정밀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44호분은 지름이 30m에 이르는 돌무지덧널무덤으로, 둘레돌 밖에서는 제사에 쓰였던 큰 항아리와 함께 기마행렬(騎馬行列), 무용(舞踊), 수렵(狩獵) 등 다양한 모습을 선으로 그린 목긴항아리가 발견된 바 있다. 또한. 2020년 내부조사 과정에서 무너진 흙과 돌을 걷어내자, 무덤 주인공이 묻혔던 공간이 1,500여 년 만에 세상에 나온 바 있다. 국립경주문..

문호사(文湖社)

문호사(文湖社. 경북 경주시 첨성로 160-8(인왕동 817-1)) 경상북도 경주시 첨성로 160-8(인왕동 817-1)에 있는 조선중기 성리학자이면서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관란(觀瀾) 이승증(李承曾. 1515:중종10년–1599:선조32년)을 제향하는 사당이다. 본관은 월성(月城). 자는 희로(希魯), 호는 관란(觀瀾). 경주 출신. 아버지는 훈도 이계간(李季干)이며, 어머니는 영천이씨(永川李氏)이다. 김대유(金大有)의 문인이다. 이승증은 1558년(명종 13)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한 후, 추천으로 건원릉참봉, 사옹원제조, 상의원제조 등의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부모를 봉양하며 후학양성에만 주력하였다. 또한 78세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최동보(崔東輔), 최여호(崔汝..

경주동부사적지대 - 첨성대 -

경주 첨성대(慶州 瞻星臺. 국보31호. 경북 경주시 인왕동 839-1번지)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신라시대의 천문관측대로,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基壇部)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圓筒部)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자형의 정상부(頂上部)를 얹은 모습으로 높이는 약9m이다. 원통부는 부채꼴 모양의 돌로 27단을 쌓아 올렸으며, 매끄럽게 잘 다듬어진 외부에 비해 내부는 돌의 뒷뿌리가 삐죽삐죽 나와 벽면이 고르지 않다. 남동쪽으로 난 창을 중심으로 아래쪽은 막돌로 채워져 있고 위쪽은 정상까지 뚫려서 속이 비어 있다. 동쪽 절반이 판돌로 막혀있는 정상부는 정(井)자 모양으로 맞물린 길다란 석재의 끝이 바깥까지 뚫고 나와있다. 이런 모습은 19∼20단, 25∼26단에서도 발견되는데 내부에서 사다리를 걸치기에 ..

경주 명활성(慶州 明活城)

경주 명활성(慶州 明活城. 사적 제47호. 경북 경주시 보문동) 경주의 동쪽 명활산 꼭대기에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은 둘레 약 6㎞의 신라 산성이다. 성을 쌓은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에 신라 실성왕 4년(405)에 왜병이 명활성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보이므로 그 이전에 만들어진 성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성을 쌓는 방법에서도 다듬지 않은 돌을 사용한 신라 초의 방식을 보이고 있다. 눌지왕 15년(431)에는 왜구가 이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였는데, 이는 이 성이 신라의 수도인 금성을 지키는데 중요한 곳임을 말해준다. 진흥왕 15년(544)에 다시 쌓았고, 진평왕 15년(593)에는 성을 확장했다. 지금은 대부분의 성벽이 무너져 겨우 몇 군데에서만 옛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진흥왕 때의 ‘..

흙 속에서 찾은 신라불교문화 - 不二 둘이 아닌 하나 -

흙 속에서 찾은 신라불교문화 기간 : 2021.5.27(목) - 2021. 9.30(목) 장소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천존고 전시실 신라는 6세기 전반인 법흥왕 때 율령을 만들고, 불교를 공인했습니다. 진흥왕 5년(544)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를 창건하고 , 이어서 553년 황룡사를 조영함으로써 신라 수도 경주는 명실공히 불교문화의 중심으로 발전합니다. 오늘날 경주 지역에는 200개소가 넘는 신라시대 절터가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그동안 황룡사, 분황사, 사천왕사, 감은사, 천관사 등 경주 지역의 크고 작은 사찰 유적 발굴조사를 통해 당시 화려했던 신라불교문화를 재조명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우리 연구소가 직접 발굴한 유물을 한자리에 모아 신라불교문화의 우수성..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慶州 淨惠寺址 十三層石塔)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慶州 淨惠寺址 十三層石塔. 국보 제40호.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1654번지) 경주 정혜사터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흙으로 쌓은 1단의 기단(基壇) 위에 1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인데, 통일신라시대에서는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1층 탑몸돌이 거대한데 비해 2층부터는 몸돌과 지붕돌 모두가 급격히 작아져서 2층 이상은 마치 1층탑 위에 덧붙여진 머리장식처럼 보인다. 큰 규모로 만들어진 1층 몸돌은 네 모서리에 사각형의 돌기둥을 세웠으며, 그 안에 다시 보조기둥을 붙여 세워 문을 만들어 놓았다. 이렇듯 문을 마련해 놓은 것은 열린 공간을 추구하고자 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여진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을 조각이 아닌 별개의 다른 돌로 만들어 놓았고, 직선..

경주 흥덕왕릉(慶州 興德王陵. 사적 제30호)

경주 흥덕왕릉(慶州 興德王陵. 사적 제30호. 경북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산42번지)신라 제42대 흥덕왕(興德王 재위 826∼836)의 무덤으로 무덤제도가 잘 갖추어진 왕릉이다.흥덕왕의 본명은 김수종金秀宗(경휘景徽)이며, 제41대 헌덕왕의 아우이다. 장보고로 하여금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서해를 방어하게 하였고, 당으로부터 가져온 차(茶) 종자를 지리산에 심어 재배하도록 하였다. 이 능은 원형 봉토분으로 지름 20.8m, 높이 6m이다.비교적 커다란 둥근 봉토분으로 무덤 밑에는 둘레돌을 배치하여 무덤을 보호하도록 하였다. 둘레돌은 먼저 바닥에 기단 역할을 하는 돌을 1단 깔고 그 위에 넓적한 면석을 세웠다. 면석 사이에는 ..

분황사芬皇寺의 봄春

경주 분황사지(慶州 芬皇寺址. 사적 제548호. 경북 경주시 분황로 94-11, 분황사 (구황동) ‘경주 분황사지’는 신라의 대표적인 사찰 가운데 하나인 ‘분황사’가 있던 곳으로, 「삼국유사」,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분황사’는 선덕왕 3년(634)에 창건되었으며, 신라의 승려 자장(慈藏)과 원효(元曉)가 머무르면서 불법을 전파하였던 유서 깊은 사찰이다. 1990년부터 2014년까지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현재의 경역 내·외부를 확인하였는데, 창건 당시 신라 최초의 품(品)자형 일탑삼금당식(一塔三金當式) 가람으로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었으며, 그 후 세 번의 중건을 거쳐 광해군 원년(1609)에 현재의 금당인 보광전을 조성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일탑삼금당식(一塔三金當式) 가람: 사찰에서 탑을 ..

분황사 앞 청보리밭 -Eine Kleine Nachtmusik (by Mozart)-

경주 분황사 앞 청보리밭 주소 : 경주시 분황로 94-11(분황사 주차장) 주차료 : 무료 경주 분황사 앞 들판에 넓은 청보리밭이 있다. 작년 가을에 파종하여 올해 5월 중순이면 수확을 한다. 경주 분황사 앞 청보리밭은 관광객들에게는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는 계절별로 다양한 종류의 초화류를 심었는데 올해는 청보리를 심었다. 분황사 앞 청보리밭에는 경주 분황사 당간지주가 있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몇 해 전 분황사 주변 문화재 발굴조사 중 분황사 당간지주임이 판명되어 구황동 당간지주에서 경주 분황사 당간지주로 이름을 바꾸었다. 분황사에서 시작하여 청보리밭을 지나 황룡사지를 거쳐 경주황룡사역사문화관까지 가족 혹은 다정한 이와 함께한다면 코로나19로 인하여 받은 마음의 상처를 씻을 수 있는 ..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慶州 掘佛寺址 石造四面佛像)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慶州 掘佛寺址 石造四面佛像. 보물 제121호. 경북 경주시 동천동 산4번지) 경상북도 경주 굴불사터에 있는 이 불상은 바위의 서쪽에는 아미타여래불, 동쪽에는 약사여래불, 북쪽에는 미륵불, 남쪽에는 석가모니불을 각각 새긴 사방불(四方佛) 형태이다. 『삼국유사』 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이 백률사를 찾았을 때 땅속에서 염불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땅을 파 보니 이 바위가 나와서 바위의 사방에 불상을 새기고 절을 지어 굴불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이 기록만으로는 분명하지 않지만, 여러 가지 여건으로 보아 이때쯤 불상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쪽의 아미타여래는 신체만 돌기둥에 조각했고 머리는 따로 만들어 놓았는데 머리가 얼굴보다 크게 표현되어 꼭 모자를 쓴 것처럼 보인다. 신체는 ..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慶州 南山 彌勒谷 石造如來坐像)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慶州 南山 彌勒谷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136호. 경북 경주시 배반동 산66-2번지) 신라시대의 보리사터로 추정되는 곳에 남아 있는 전체 높이 4.36m, 불상 높이 2.44m의 석불좌상으로 현재 경주 남산에 있는 신라시대의 석불 가운데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한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높게 솟아 있으며, 둥근 얼굴에서는 은은하게 내면적인 웃음이 번지고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힘없이 축 늘어진 느낌이며, 군데군데 평행한 옷주름을 새겨 넣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아래로 향하고 왼손은 배 부분에 대고 있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인데 다소 연약해 보인다. 불상과는 별도로 마련해 놓은 광배(光背)는 ..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慶州 芬皇寺 模塼石塔. 국보 제30호)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慶州 芬皇寺 模塼石塔. 국보 제30호. 경북 경주시 분황로 94-11, 분황사 (구황동)) 현재 남아있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걸작품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모전석탑(模塼石塔)이다. 원래 9층이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지금은 3층만 남아있다. 탑은 넓직한 1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착실히 쌓아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벽돌이 아닌 자연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네 모퉁이마다 화강암으로 조각된 사자상이 한 마리씩 앉아있다. 회흑색 안산암을 작게 벽돌모양으로 잘라 쌓아올린 탑신은 거대한 1층 몸돌에 비해 2층부터는 현저하게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층 몸돌에는 네 면마다 문을 만들고, 그 양쪽에 불교의 법을 수호하는 인왕상(仁王像)을 힘찬 모습..

경주 구황동 모전석탑지(慶州 九黃洞 模塼石塔址)

경주 구황동 모전석탑지(慶州 九黃洞 模塼石塔址. 경주시 구황동) 여기에 서 있던 탑은 중국 전탑을 본떠 쌓은 분황사탑과 같은 것이었는데 지금은 다 허물어지고 남,북 감실의 돌기둥 2쌍만 남아 있다. 돌기둥이 배치된 모양으로 미루어 볼 때, 원래의 탑은 한 변의 길이가 4.5m 쯤 되는 크기로 첫 옥신(屋身)을 쌓고 그 4면에 감실(龕室)을 만들어 사방불(四方佛)을 모셔놓은 형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돌기둥에는 인왕상(仁王像)을 새겼는데 통일신라시대(7세기 중엽)의 작품으로 우수한 조각기법을 보이고 있다. 이곳에서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간 1쌍의 인왕상은 현재 고분관 입구를 지키고 있다.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慶州 南山 佛谷 磨崖如來坐像. 보물 제198호)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慶州 南山 佛谷 磨崖如來坐像. 보물 제198호. 경북 경주시 인왕동 산56번지) 경주 남산 동쪽 기슭 부처 골짜기의 한 바위에 깊이가 1m나 되는 석굴을 파고 만든 여래좌상이다. 불상의 머리는 두건을 덮어쓴 것 같은데 이것은 귀 부분까지 덮고 있다. 얼굴은 둥그렇고 약간 숙여져 있으며, 부은 듯한 눈과 깊게 파인 입가에서는 내면의 미소가 번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는 인왕리석불좌상과 유사하지만 전체적으로 자세가 아름답고 여성적이다. 양 어깨에 걸쳐입은 옷은 아래로 길게 흘러내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까지 덮고 있는데, 옷자락이 물결무늬처럼 부드럽게 조각되어 전체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석불은 경주 남산에 남아있는 신라 석불 가운데 가장 오래된 ..

석조石槽.경주흥륜사터. 통일신라 8∼9세기

석조石槽.경주흥륜사터. 통일신라 8∼9세기. 높이 1.77m 너비 3.92m 석조石槽는 장방형 또는 원형의 돌 내부를 파내어, 절 등에서 물을 담는 용도로 썼던 것입니다. 이 석조에는 많은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서조의 윗부분에는 경주부윤府尹(지금의 시장) 이필영李必榮(1573∼1645)이 조선 인조仁組 16년(1638)에 이 석조를 흥륜사興輪寺(신라 최초의 절)에서 경주읍성 안의 금학헌琴鶴軒으로 옮겼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내용의 반대편에는 이교방李敎方(생몰년 미상)이 이 석조를 보고 지은 칠언절구七言絶句의 시가 있습니다. 측면에는 ‘석조 안의 물에 비친 하늘’이라은 뜻의 “천광운영天光雲影(하늘 빛, 구름 그림자)”이 새겨져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연못으로 비유하면서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문무대왕비(文武大王碑)

… 국 신라 문무왕릉의 비이다. 급찬(及飱)인 국학소경(國學少卿) 김▨▨(金▨▨)가 교(敎)를 받들어 찬하다. … 하늘을 짝하여 사물을 잘 다스리고, 땅의 경계를 구분하며, 덕을 쌓아 … 시대의 어려움을 구제하고, 신에 응하여 … … 경진씨(鯨津氏)를 파견하여, 삼산(三山)의 궐(闕)을 비추고, 동으로는 개오(開梧)의 지경을 막고, 남으로는 ▨계(▨桂)의 ▨과 이웃하고, (북으로는) 황룡을 맞아 주몽(朱蒙)을 태우고, … 백무(白武)를 이어 받아 …을 우러르며 … … 그 능한 바를 다 잘하여 이름과 실제가 다 이루어지고, 덕과 지위가 겸하여 융성해지니, 땅은 8방(八方) 먼 곳까지 걸쳐 있고, 그 훈공은 삼(한)(三(韓))에 뛰어나, 그 높고 넓음을 다 일컬을 수가 없는 분이 우리 신(라) … … 그 신..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慶州 人面文 圓瓦當)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慶州 人面文 圓瓦當. 보물 제2010호.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는 ‘신라의 미소’라고 널리 소개된 신라시대 원와당(圓瓦當)으로, 일제시기 경주 사정리(沙正里, 현 사정동)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수막새는 1934년 일본인 다나카 도시노부(田中敏信)가 골동상점에서 구입하여 당시부터 고고학술 자료를 통해 존재가 알려졌으며, 이후 일본으로 반출되었으나 1972년 10월 국내에 반환되었다. 일반적인 와당 조성방법처럼 틀(瓦范)에 찍어 일률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와범으로 먼저 형태를 잡은 후 손으로 직접 빚어 얼굴의 세부 형상을 만들고 도구를 써서 마무리한 작품이다. 자연스럽고 정교한 솜씨로 보아 숙련된 장인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