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경주 621

흙 속에서 찾은 신라불교문화 - 不二 둘이 아닌 하나 -

흙 속에서 찾은 신라불교문화 기간 : 2021.5.27(목) - 2021. 9.30(목) 장소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천존고 전시실 신라는 6세기 전반인 법흥왕 때 율령을 만들고, 불교를 공인했습니다. 진흥왕 5년(544)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를 창건하고 , 이어서 553년 황룡사를 조영함으로써 신라 수도 경주는 명실공히 불교문화의 중심으로 발전합니다. 오늘날 경주 지역에는 200개소가 넘는 신라시대 절터가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그동안 황룡사, 분황사, 사천왕사, 감은사, 천관사 등 경주 지역의 크고 작은 사찰 유적 발굴조사를 통해 당시 화려했던 신라불교문화를 재조명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우리 연구소가 직접 발굴한 유물을 한자리에 모아 신라불교문화의 우수성..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慶州 淨惠寺址 十三層石塔)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慶州 淨惠寺址 十三層石塔. 국보 제40호.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1654번지) 경주 정혜사터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흙으로 쌓은 1단의 기단(基壇) 위에 1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인데, 통일신라시대에서는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1층 탑몸돌이 거대한데 비해 2층부터는 몸돌과 지붕돌 모두가 급격히 작아져서 2층 이상은 마치 1층탑 위에 덧붙여진 머리장식처럼 보인다. 큰 규모로 만들어진 1층 몸돌은 네 모서리에 사각형의 돌기둥을 세웠으며, 그 안에 다시 보조기둥을 붙여 세워 문을 만들어 놓았다. 이렇듯 문을 마련해 놓은 것은 열린 공간을 추구하고자 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여진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을 조각이 아닌 별개의 다른 돌로 만들어 놓았고, 직선..

경주 흥덕왕릉(慶州 興德王陵. 사적 제30호)

경주 흥덕왕릉(慶州 興德王陵. 사적 제30호. 경북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산42번지)신라 제42대 흥덕왕(興德王 재위 826∼836)의 무덤으로 무덤제도가 잘 갖추어진 왕릉이다.흥덕왕의 본명은 김수종金秀宗(경휘景徽)이며, 제41대 헌덕왕의 아우이다. 장보고로 하여금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서해를 방어하게 하였고, 당으로부터 가져온 차(茶) 종자를 지리산에 심어 재배하도록 하였다. 이 능은 원형 봉토분으로 지름 20.8m, 높이 6m이다.비교적 커다란 둥근 봉토분으로 무덤 밑에는 둘레돌을 배치하여 무덤을 보호하도록 하였다. 둘레돌은 먼저 바닥에 기단 역할을 하는 돌을 1단 깔고 그 위에 넓적한 면석을 세웠다. 면석 사이에는 기둥 역할을 하는 탱석을 끼워 넣었는데, 각 탱석에는 방향에 따라 12지신상을 조..

분황사芬皇寺의 봄春

경주 분황사지(慶州 芬皇寺址. 사적 제548호. 경북 경주시 분황로 94-11, 분황사 (구황동) ‘경주 분황사지’는 신라의 대표적인 사찰 가운데 하나인 ‘분황사’가 있던 곳으로, 「삼국유사」,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분황사’는 선덕왕 3년(634)에 창건되었으며, 신라의 승려 자장(慈藏)과 원효(元曉)가 머무르면서 불법을 전파하였던 유서 깊은 사찰이다. 1990년부터 2014년까지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현재의 경역 내·외부를 확인하였는데, 창건 당시 신라 최초의 품(品)자형 일탑삼금당식(一塔三金當式) 가람으로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었으며, 그 후 세 번의 중건을 거쳐 광해군 원년(1609)에 현재의 금당인 보광전을 조성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일탑삼금당식(一塔三金當式) 가람: 사찰에서 탑을 ..

분황사 앞 청보리밭 -Eine Kleine Nachtmusik (by Mozart)-

경주 분황사 앞 청보리밭 주소 : 경주시 분황로 94-11(분황사 주차장) 주차료 : 무료 경주 분황사 앞 들판에 넓은 청보리밭이 있다. 작년 가을에 파종하여 올해 5월 중순이면 수확을 한다. 경주 분황사 앞 청보리밭은 관광객들에게는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는 계절별로 다양한 종류의 초화류를 심었는데 올해는 청보리를 심었다. 분황사 앞 청보리밭에는 경주 분황사 당간지주가 있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몇 해 전 분황사 주변 문화재 발굴조사 중 분황사 당간지주임이 판명되어 구황동 당간지주에서 경주 분황사 당간지주로 이름을 바꾸었다. 분황사에서 시작하여 청보리밭을 지나 황룡사지를 거쳐 경주황룡사역사문화관까지 가족 혹은 다정한 이와 함께한다면 코로나19로 인하여 받은 마음의 상처를 씻을 수 있는 ..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慶州 掘佛寺址 石造四面佛像)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慶州 掘佛寺址 石造四面佛像. 보물 제121호. 경북 경주시 동천동 산4번지) 경상북도 경주 굴불사터에 있는 이 불상은 바위의 서쪽에는 아미타여래불, 동쪽에는 약사여래불, 북쪽에는 미륵불, 남쪽에는 석가모니불을 각각 새긴 사방불(四方佛) 형태이다. 『삼국유사』 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이 백률사를 찾았을 때 땅속에서 염불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땅을 파 보니 이 바위가 나와서 바위의 사방에 불상을 새기고 절을 지어 굴불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이 기록만으로는 분명하지 않지만, 여러 가지 여건으로 보아 이때쯤 불상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쪽의 아미타여래는 신체만 돌기둥에 조각했고 머리는 따로 만들어 놓았는데 머리가 얼굴보다 크게 표현되어 꼭 모자를 쓴 것처럼 보인다. 신체는 ..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慶州 南山 彌勒谷 石造如來坐像)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慶州 南山 彌勒谷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136호. 경북 경주시 배반동 산66-2번지) 신라시대의 보리사터로 추정되는 곳에 남아 있는 전체 높이 4.36m, 불상 높이 2.44m의 석불좌상으로 현재 경주 남산에 있는 신라시대의 석불 가운데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한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높게 솟아 있으며, 둥근 얼굴에서는 은은하게 내면적인 웃음이 번지고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힘없이 축 늘어진 느낌이며, 군데군데 평행한 옷주름을 새겨 넣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아래로 향하고 왼손은 배 부분에 대고 있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인데 다소 연약해 보인다. 불상과는 별도로 마련해 놓은 광배(光背)는 ..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慶州 芬皇寺 模塼石塔. 국보 제30호)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慶州 芬皇寺 模塼石塔. 국보 제30호. 경북 경주시 분황로 94-11, 분황사 (구황동)) 현재 남아있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걸작품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모전석탑(模塼石塔)이다. 원래 9층이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지금은 3층만 남아있다. 탑은 넓직한 1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착실히 쌓아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벽돌이 아닌 자연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네 모퉁이마다 화강암으로 조각된 사자상이 한 마리씩 앉아있다. 회흑색 안산암을 작게 벽돌모양으로 잘라 쌓아올린 탑신은 거대한 1층 몸돌에 비해 2층부터는 현저하게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층 몸돌에는 네 면마다 문을 만들고, 그 양쪽에 불교의 법을 수호하는 인왕상(仁王像)을 힘찬 모습..

경주 구황동 모전석탑지(慶州 九黃洞 模塼石塔址)

경주 구황동 모전석탑지(慶州 九黃洞 模塼石塔址. 경주시 구황동) 여기에 서 있던 탑은 중국 전탑을 본떠 쌓은 분황사탑과 같은 것이었는데 지금은 다 허물어지고 남,북 감실의 돌기둥 2쌍만 남아 있다. 돌기둥이 배치된 모양으로 미루어 볼 때, 원래의 탑은 한 변의 길이가 4.5m 쯤 되는 크기로 첫 옥신(屋身)을 쌓고 그 4면에 감실(龕室)을 만들어 사방불(四方佛)을 모셔놓은 형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돌기둥에는 인왕상(仁王像)을 새겼는데 통일신라시대(7세기 중엽)의 작품으로 우수한 조각기법을 보이고 있다. 이곳에서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간 1쌍의 인왕상은 현재 고분관 입구를 지키고 있다.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慶州 南山 佛谷 磨崖如來坐像. 보물 제198호)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慶州 南山 佛谷 磨崖如來坐像. 보물 제198호. 경북 경주시 인왕동 산56번지) 경주 남산 동쪽 기슭 부처 골짜기의 한 바위에 깊이가 1m나 되는 석굴을 파고 만든 여래좌상이다. 불상의 머리는 두건을 덮어쓴 것 같은데 이것은 귀 부분까지 덮고 있다. 얼굴은 둥그렇고 약간 숙여져 있으며, 부은 듯한 눈과 깊게 파인 입가에서는 내면의 미소가 번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는 인왕리석불좌상과 유사하지만 전체적으로 자세가 아름답고 여성적이다. 양 어깨에 걸쳐입은 옷은 아래로 길게 흘러내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까지 덮고 있는데, 옷자락이 물결무늬처럼 부드럽게 조각되어 전체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석불은 경주 남산에 남아있는 신라 석불 가운데 가장 오래된 ..

석조石槽.경주흥륜사터. 통일신라 8∼9세기

석조石槽.경주흥륜사터. 통일신라 8∼9세기. 높이 1.77m 너비 3.92m 석조石槽는 장방형 또는 원형의 돌 내부를 파내어, 절 등에서 물을 담는 용도로 썼던 것입니다. 이 석조에는 많은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서조의 윗부분에는 경주부윤府尹(지금의 시장) 이필영李必榮(1573∼1645)이 조선 인조仁組 16년(1638)에 이 석조를 흥륜사興輪寺(신라 최초의 절)에서 경주읍성 안의 금학헌琴鶴軒으로 옮겼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내용의 반대편에는 이교방李敎方(생몰년 미상)이 이 석조를 보고 지은 칠언절구七言絶句의 시가 있습니다. 측면에는 ‘석조 안의 물에 비친 하늘’이라은 뜻의 “천광운영天光雲影(하늘 빛, 구름 그림자)”이 새겨져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연못으로 비유하면서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문무대왕비(文武大王碑)

… 국 신라 문무왕릉의 비이다. 급찬(及飱)인 국학소경(國學少卿) 김▨▨(金▨▨)가 교(敎)를 받들어 찬하다. … 하늘을 짝하여 사물을 잘 다스리고, 땅의 경계를 구분하며, 덕을 쌓아 … 시대의 어려움을 구제하고, 신에 응하여 … … 경진씨(鯨津氏)를 파견하여, 삼산(三山)의 궐(闕)을 비추고, 동으로는 개오(開梧)의 지경을 막고, 남으로는 ▨계(▨桂)의 ▨과 이웃하고, (북으로는) 황룡을 맞아 주몽(朱蒙)을 태우고, … 백무(白武)를 이어 받아 …을 우러르며 … … 그 능한 바를 다 잘하여 이름과 실제가 다 이루어지고, 덕과 지위가 겸하여 융성해지니, 땅은 8방(八方) 먼 곳까지 걸쳐 있고, 그 훈공은 삼(한)(三(韓))에 뛰어나, 그 높고 넓음을 다 일컬을 수가 없는 분이 우리 신(라) … … 그 신..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慶州 人面文 圓瓦當)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慶州 人面文 圓瓦當. 보물 제2010호.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는 ‘신라의 미소’라고 널리 소개된 신라시대 원와당(圓瓦當)으로, 일제시기 경주 사정리(沙正里, 현 사정동)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수막새는 1934년 일본인 다나카 도시노부(田中敏信)가 골동상점에서 구입하여 당시부터 고고학술 자료를 통해 존재가 알려졌으며, 이후 일본으로 반출되었으나 1972년 10월 국내에 반환되었다. 일반적인 와당 조성방법처럼 틀(瓦范)에 찍어 일률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와범으로 먼저 형태를 잡은 후 손으로 직접 빚어 얼굴의 세부 형상을 만들고 도구를 써서 마무리한 작품이다. 자연스럽고 정교한 솜씨로 보아 숙련된 장인의 작품..

경주 계림로 보검(慶州 鷄林路 寶劍)

경주 계림로 보검(慶州 鷄林路 寶劍. 보물 제635호.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 경주 계림로 보검(慶州 鷄林路 寶劍)은 경주 황남동에 있는 미추왕릉 지구에서 발견된 길이 36㎝의 칼이다. 1973년 계림로 공사 때 노출된 유물의 하나로, 철제 칼집과 칼은 썩어 없어져 버리고 금으로 된 장식만이 남아 있다. 시신의 허리 부분에서 발견되었는데, 자루의 끝부분이 골무형으로 되어 있고 가운데 붉은 마노를 박았다. 칼집에 해당되는 부분 위쪽에 납작한 판에는 태극무늬 같은 둥근무늬를 넣었다. 삼국시대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고리자루칼(환두대도)과 그 형태와 문양이 다른데, 이러한 형태의 단검은 유럽에서 중동지방에 걸쳐 발견될 뿐 동양에서는 발견되는 일이 없어, 동·서양 문화교류의 한 ..

금관金冠( 경주 교동. 신라5세기)

경주 교동. 신라5세기 경주 교동의 한 무덤에서 도굴되었다가 1972년 압수된 금관입니다. 지름이 비교적 작은 관테에 3개의 나뭇가지 모양 장식을 세웠습니다. 이 장식은 전형적인 신라 금관의 산山자 모양의 나뭇가지와는 달리 비교적 사실적인 나뭇가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관테나 장식의 가징자리에는 다른 금관들과는 달리 점무늬 도는 물결무늬가 새겨져 있지않습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지금까지 발견된 6개의 신라 금관(금관총·금령총·서봉총·교동·천마총·황남대총 북분) 가운데 가장 오래 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크기도 자장 작은 이 금관은 마립간 시기 초기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천마총 금관(天馬塚 金冠). 천마총 금제 허리띠(天馬塚 金製 銙帶) 및 천마총 목걸이(天馬塚 頸胸飾)

천마총 금관(天馬塚 金冠. 국보 제188호. 경북 경주시 일정로 186, 국립경주박물관 (인왕동,국립경주박물관)) 천마총에서 발견된 신라 때 금관이다. 천마총은 경주 고분 제155호 무덤으로 불리던 것을 1973년 발굴을 통해 금관, 팔찌 등 많은 유물과 함께 천마도가 발견되어 천마총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금관은 천마총에서 출토된 높이 32.5㎝의 전형적인 신라 금관으로 묻힌 사람이 쓴 채로 발견되었다. 머리 위에 두르는 넓은 띠 앞면 위에는 山자형 모양이 3줄, 뒷면에는 사슴뿔 모양이 2줄로 있는 형태이다. 山자형은 4단을 이루며 끝은 모두 꽃봉오리 모양으로 되어있다. 금관 전체에는 원형 금판과 굽은 옥을 달아 장식하였고, 금실을 꼬아 늘어뜨리고 금판 장식을 촘촘히 연결하기도 하였다. 밑으로는 나뭇잎..

천마총(天馬塚)

천마총(天馬塚. 황남동 제155호 고분. 경북 경주시 황남동 262) 대릉원의 고분군 중 유일하게 공개하고 있는 155호 고분 천마총은, 옆에 위치한 황남대총을 발굴하기 위해 시범적으로 발굴한 곳인데, 당시 기술로는 황남대총 같이 거대한 규모의 무덤을 발굴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1973년 발굴 과정에서 부장품 가운데 자작나무 껍질에 하늘을 나는 말이 그려진 말다래(말을 탄 사람의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가죽 같은 것을 말의 안장 양쪽에 늘어뜨려 놓은 기구)가 출토되어 ‘천마총(天馬塚)’이 되었는데, 최근 이 천마가‘말’을 그린 것이 아니라 ‘기린’을 그린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천마총은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축조된 고분으로 추정되는데 금관, 금모자, 새날개 모양 관식, 금 허리띠,..

감은사지 서 삼층석탑 사리장엄구(感恩寺址 西 三層石塔 舍利莊嚴具)

감은사지 서 삼층석탑 사리장엄구(感恩寺址 西 三層石塔 舍利莊嚴具. 보물 제366호.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 감은사지 서삼층석탑 사리장엄구(感恩寺址 西三層石塔 舍利莊嚴具)는 경상북도 월성군 감은사터에 있는 경주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국보 제112호) 가운데 서쪽에 있는 석탑을 해체·수리하면서 3층 탑신에서 발견된 사리장치이다. 사리를 모시기 위한 청동제사각함과 그 안에 있던 사리기로 구성되었다. 사리기를 넣었던 사리감은 청동으로 만들었는데, 발견 당시 몹시 부식된 상태였다. 사각형의 상자의 윗면은 완만한 원뿔모양의 뚜껑이 있는 형태로, 전체 높이가 약 31㎝정도 된다. 사리함의 네 옆면에는 각각 사천왕상이 1구씩 별도로 주조되어 부착되었고, 그 양 옆에는 각각 동그란..

황남대총 북분 유리잔(皇南大塚 北墳 琉璃盞) 및 유리琉璃 역사

황남대총 북분 유리잔(皇南大塚 北墳 琉璃盞. 보물 제624호.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신라 무덤인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유리제 잔(배)이다. 황남대총은 2개의 봉분이 남·북으로 표주박 모양으로 붙어 있다. 황남대총 북분 유리잔(皇南大塚北墳 琉璃盞)은 높이 7㎝, 구연부 지름 10.5㎝로 북쪽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구연부 부분은 수평이 되도록 넓게 바깥쪽으로 벌어졌고, 몸통 부분은 밥 그릇 모양으로 밑이 약간 넓어진다. 아랫부분에는 우뚝한 받침이 있는데, 짧은 목을 거쳐서 나팔형의 굽이 달렸다. 유리는 투명한 양질이고 갈색으로 전체에 걸쳐 나뭇결 무늬가 있다. 받침 바닥에 약간의 손상이 있는 외에는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

한국 최고最古의 유리?

한국 최고最古의 유리? 부여 송국리유적 독널무덤甕棺墓에서 확인된 납 유리(납22% 이상 함유)인 상감유리象嵌琉璃와 보령 평라리유적 독널무덤甕棺墓에서 출토된 포타쉬potash(포타슘(potassium) 또는 칼륨(kalium)이라 불리는 원자번호 19번의 원소)유리인 유리구슬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유리' 논쟁의 주인공입니다. 그 이유는 송국리유적에서 확인된 유리는 도굴되었다가 압수된 것이며, 평라리유적의 유리구슬은 매장주체부가 아닌 묘역墓域 부분에서 발견된 것이어서 청동기시대 유리구슬로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에 더해 중국과 동남아시아 유리구슬 제작 시점을 고려해 볼 때 기원전 5세기 이전의 한반도에 유리구슬이 존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한편 또 다른 주장으로는 청동기시대 후반부..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 (慶州 九十八號 南墳 琉璃甁 및 盞)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慶州 九十八號 南墳 琉璃甁 및 盞. 국보 제193호.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무덤인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병 1점과 잔 3점의 유리제품이다. 이고, 잔① 높이 12.5㎝, 구연부 지름 10㎝ 잔② 높이 8㎝, 구연부 지름 10.5㎝ 잔③ 높이 10.5㎝, 구연부 지름 9.5㎝의 크기이다. 병은 연녹색을 띤 얇은 유리제품으로 타원형의 계란 모양이다. 물을 따르기 편하도록 끝을 새 주둥이 모양으로 좁게 오므렸다. 가느다란 목과 얇고 넓게 퍼진 나팔형 받침은 페르시아 계통의 용기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목에는 10개의 가는 청색 줄이 있고, 구연부에는 약간 굵은 선을 돌렸으며, 손잡이에..

경주 동부사적지(첨성대 일원) 꽃밭단지 거닐다.

경주 동부사적지(첨성대 일원) 꽃밭단지 거닐다. 첨성대 일원의 동부사적지 꽃밭단지가 관광객들에게 추억의 관광코스로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첨성대 : ‘동양 최고(最古)의 천문대’ 첨성대.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경주를 상징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이다.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基壇部)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圓筒部)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자형의 정상부(頂上部)를 얹은 모습으로 높이는 약9m이다. 원통부는 부채꼴 모양의 돌로 27단을 쌓아 올렸다. 남동쪽으로 난 창을 중심으로 아래쪽은 막돌로 채워져 있고 위쪽은 정상까지 뚫려서 속이 비어 있다. 동쪽 절반이 판돌로 막혀있는 정상부는 정(井)자 모양으로 맞물린 길다란 석재의 끝이 바깥까지 뚫고 나와있다. 이런 모습은 1..

전(傳) 염불사지 삼층석탑

전(傳) 염불사지 삼층석탑(사적 제311호.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1130) 신라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수많은 불교유적이 계곡마다 조성된 경주남산은 신라인들의 역사와 문화·신앙이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는 영산으로써 2000년 12월 2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동남산 봉구곡 자락 남산동 1130번지 일원에 위치한 전(傳) 염불사지에 대한 ‘삼국유사’에는 “한 스님이 하루에 몇 번씩 시간을 정해 염불을 외우셨다. 법당에 앉아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그 소리가 당시 서라벌 360방 17만호에 들리지 않는 곳이 없어 사람들은 그를 공경하여 염불사(念佛師)라 불렀는데 스님이 돌아가니 그의 초상을 흙으로 만들어 민장사(敏藏寺)에 모시고 그가 살던 피리사(避里寺)를 염불사(念佛寺)로 고쳐 불렀다”고 기록되어..

경주 남산동 동·서 삼층석탑(慶州 南山洞 東·西 三層石塔)

경주 남산동 동·서 삼층석탑(慶州 南山洞 東·西 三層石塔. 보물 제124호. 경북 경주시 남산동 227-3번지)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형식을 달리하는 쌍탑이 동·서로 건립된 특이한 예의 두 탑이다. 동탑은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서 쌓아 올린 모전석탑의 양식을 취하고 있고, 서탑은 전형적인 3층석탑의 양식이다. 동탑은 탑의 토대가 되는 바닥돌이 넓게 2중으로 깔려있고, 그 위에 잘 다듬은 돌 여덟개를 한 단처럼 짜 맞추어 기단부(基壇部)를 이루고 있다. 탑신부(塔身部)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돌 하나로 만들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과 낙수면이 모전석탑처럼 똑같이 각각 5단으로 층을 이루고 있다. 서탑은 위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모습으로, 2단의 기단은 한 면을 둘로 나누어 팔부신중(..

경주 서출지(慶州 書出池)

경주 서출지(慶州 書出池. 사적 제138호. 경북 경주시 남산1길 17 (남산동)) 경주 남산 기슭에 위치한 삼국시대 연못이다. 남산 마을 한가운데에 삼층석탑 두 기가 있고 동쪽에 아담한 연못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신라 소지왕 10년(488)에 왕이 남산 기슭에 있던 ‘천천정’이라는 정자로 가고 있을 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사람의 말로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쫓아 가보라’하니 괴이하게 여겨 신하를 시켜 따라 가보게 하였다. 그러나 신하는 이 못에 와서 두 마리의 돼지가 싸우는 것에 정신이 팔려 까마귀가 간 곳을 잃어버리고 헤매던 중 못 가운데서 한 노인이 나타나 봉투를 건네줘 왕에게 그것을 올렸다. 왕은 봉투 속에 있는 내용에 따라 궁에 돌아와 화살로 거문고집을 쏘..

'동궁과 월지' 연꽃단지

화려한 색채의 향연, 경주의 여름꽃 '동궁과 월지' 연꽃단지 6월 중순부터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해 8월 초중순까지 볼 수 있는 연꽃이 동궁과 월지 영역 바깥의 유휴지에 빼곡히 식재되었다. 꽃단지 사이를 거닐 수 있는 산책로가 잘 갖추어져 있고, 쉬어갈 수 있는 정자도 꽃단지 한 가운데 자리한다. 연꽃은 햇빛이 강해지면 꽃봉오리는 오므리는 습성이 있다.

경주 첨성대(慶州 瞻星臺)와 꽃단지

경주 첨성대(慶州 瞻星臺. 국보 제31호. 경북 경주시 인왕동 839-1) ‘동양 최고(最古)의 천문대’ 첨성대.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경주를 상징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이다.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基壇部)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圓筒部)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자형의 정상부(頂上部)를 얹은 모습으로 높이는 약9m이다. 원통부는 부채꼴 모양의 돌로 27단을 쌓아 올렸다. 남동쪽으로 난 창을 중심으로 아래쪽은 막돌로 채워져 있고 위쪽은 정상까지 뚫려서 속이 비어 있다. 동쪽 절반이 판돌로 막혀있는 정상부는 정(井)자 모양으로 맞물린 길다란 석재의 끝이 바깥까지 뚫고 나와있다. 이런 모습은 19∼20단, 25∼26단에서도 발견되는데 내부에서 사다리를 걸치기에 적당했던 것으로..

경주 마동 삼층석탑(慶州 馬洞 三層石塔)

경주 마동사지 삼층석탑 보물 제912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마동 화강석으로 만든 이 석탑은 이중 기단 위에 세워진 것으로 현재 상륜부의 노반 이상은 없어졌다. 기단부에는 위아래 모두 양우주와 탱주 2개를 양각하였으며, 하층 기단은 8매 석으로 되었으나 중석은 하대석과 한 돌로 만들었다. 갑석 역시 8매 석이며 탑신부의 옥신과 옥개석은 삼층 모두 별석이며, 특히 옥개석에는 정교한 5단 받침을 갖추었다. 현재의 높이는 5.4m에 이르는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석굴암을 조성한 김대성과 인연이 있다고 하는데, 김대성이 무술을 닦을 때 큰곰을 잡아 운반하다가 날이 저물어 현재의 석탑이 있는 부근 민가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꿈에 곰이 덤벼들면서 절을 지어주지 않으면 해치겠다고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