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경주 607

경주 보문사지 연화문 당간지주(慶州 普門寺址 蓮華文 幢竿支柱)

경주 보문사지 연화문 당간지주(慶州 普門寺址 蓮華文 幢竿支柱. 보물 제910호) 기도나 법회 등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사찰의 입구에 세워 부처와 보살의 성덕을 표시하는 기를 당(幢)이라 하며, 이를 달아매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고, 이 장대를 양옆에서 지탱하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

경주 서악동 삼층석탑 (慶州 西岳洞 三層石塔)

경주 서악동 삼층석탑 (慶州 西岳洞 三層石塔.보물 제65호.경북 경주시 서악동 705-1) 통일신라시대 모전탑 계열에 속하는 탑으로, 무열왕릉 동북쪽 비탈진 곳에 서 있다. 모전탑은 전탑(전탑: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은 탑)을 모방한 것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것을 이른다. 기단(基壇)은 주사위 모양의 커다란 돌덩이 8개를 2단으로 쌓은 독특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 윗면에 1층 몸돌을 받치기 위한 1장의 평평한 돌이 끼워져 있는데, 남산리 석탑에 3단의 층급이 있는 것에 비하면 간략화된 것이다. 탑신부(塔身部)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1장의 돌로 되어 있고, 1층 몸돌에는 큼직한 네모꼴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얇게 파서 문을 표시하였다. 문의 좌우에는 1구씩의 인왕상(仁..

경주 원원사지(慶州 遠願寺址). 원원사지 동ㆍ서 삼층석탑(慶州 遠願寺址 東ㆍ西 三層石塔)

경주 원원사지(慶州 遠願寺址.사적 제46호.경북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 2번지) 봉서산 기슭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이다. 원원사는 밀교의 후계자들인 안혜·낭융 들과 김유신·김의원·김술종 들이 뜻을 모아 국가의 평화를 기원하기 위하여 세웠다고 한다. 절터에는 금당이 있던 자..

경주 서악동 삼층석탑慶州 西岳洞 三層石塔과 구절초九節草 그리고 고분古墳

경주 서악동 삼층석탑 慶州 西岳洞 三層石塔 보물 제65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 통일신라시대 모전탑 계열에 속하는 탑으로, 무열왕릉 동북쪽 비탈진 곳에 서 있다. 모전탑은 전탑(전탑: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은 탑)을 모방한 것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것..

경주 남산 창림사지 삼층석탑(慶州 南山 昌林寺址 三層石塔)

경주 남산 창림사지 삼층석탑(慶州 南山 昌林寺址 三層石塔. 보물 제1867호. 경북 경주시 서西남산)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는 창림사지는 발굴조사를 통하여 경주 불국사 등 통일신라시대 가람에서 나타나는 층(공간)별 독립된 공간이 창림사에서 확인된 바 있으며 확장과정에서 새로 추..

이거사지(移車寺址)

위의 사진 클릭하시면 원본 크기의 사진이 보입니다. 는 이거사(경주시 도지동에 있는 신라 시대 절터로, 성덕왕릉의 원찰願刹)로 알려져 있음) 남쪽에 성덕왕릉(신라의 국력이 최고조에 올랐던 시대)이 있다고 했다. 실제 이거사지 남쪽 직선 거리 약 970m 지점에서 성덕왕릉이 확인되면서 삼국사기의 기록과 현장이 일치하고 있다. * 왕이 돌아가니 諡(시)를 聖德(성덕)이라 하고 移車寺(이거사) 남쪽(佛國寺驛(불국사역) 西北(서북) 약 10町(정)에 장사하였다.(삼국사기 신라본기 제8 성덕왕) 옛날 성덕대왕이 행차할 때 이곳에서 쉬었다 가는 곳이라 하여 ‘대기실’ 즉 ‘쉬고 기다리는 마을’이라는 전설이 있다 한다. 염불사지 동탑이 1963년에 불국사역 광장으로 이전하여, 다시 원래의 자리로 이전 하기 위하여 2..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慶州 南山 神仙庵 磨崖菩薩半跏像)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慶州 南山 神仙庵 磨崖菩薩半跏像. 보물 제199호.경북 경주시 남산동 산36-4번지) 경주 남산은 유물·유적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가면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후기까지의 불상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그 중에 하나인 높이 1.4m의 마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