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경남 468

개혁가 신돈이 태어나고 자란 옥천사지(창녕 화왕산 관룡사 입구에 있음)

신돈이 자랐다는 전하는 옥천사지는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신돈이 처형되자 마자 이 절도 함께 폐사 되었다. 절은 폐사 되었으나 그 당시 절의 규모가 매우 큰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넓은 터에는 현재도 여러 석재들이 발견되고 있다. 옥천사지의 연화문 대석 옥천사지의 폐탑재 옥천사지..

경남 2009.05.20

영산 구계리 석조여래좌상 ( 靈山九溪里 石造如來坐像 도유형문화재 제9호)

영산 구계리 석조여래좌상 ( 靈山九溪里 石造如來坐像 도유형문화재 제9호) 불상과 광배가 하나의 석재로 조각된 이 석불좌상은 적조사(寂照寺)의 유물로 추측된다. 마멸(摩滅)이 심해 구별이 어려우나, 큼직한 육계(肉髻)와 얼굴에 나타난 코가 특색이며, 처진 두 어깨, 좁은 무릎과 폭, 입체감 없는 ..

경남 2009.05.19

작원관지

낙동강변의 절벽에 위치하여 부산 동래에서 한양에 이르기 위해서는 문경의 조령관과 함께 반드시 통과해야하는 교통 및 국방상의 2대 관문이었다. 임진왜란 때 밀양 박진장군이 300여명의 병졸로 소서행장이 이끄는 18,000여명의 왜적을 맞아 작원관의 천험적인 지리를 이용하여 치열한 혈전을 벌이다 중과부적으로 패배한 처절한 역사의 전적지로 지금도 항전의 고함소리가 들려 올 듯한 애닯고도 유서깊은 전적지이다. (출처 : 밀양시청자료) 작원관 전투 : 1592년 임진왜란 초 부산진성과 동래성을 함락한 소서행장의 정예 제1군 18,700명은 낙동강을 따라 밀양으로 진군하였다. 4월 18일 밀양부사 박진은 300여명의 병졸과 약간의 수병, 지역주민들의 지원을 받아 이곳에 방어진을 구축하여 결사항전하였고 더 이상 북진..

경남 2009.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