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경남 484

박진전쟁기념관(朴津戰爭記念館)

박진전쟁기념관(朴津戰爭記念館.경남 창녕군 납지읍 월하리 624) 1950년 6월 25일 새벽, 전차를 앞세우고 기습 남침한 북한 공산군은 일거에 38선을 돌파하여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한 후 한강을 넘어 남으로 침공을 계속하였다. 이에 국군과 유엔군은 힘을 모아 혈전을 거듭하면서 이를 저지하려 하였으나 군사력이 열세하여 눈물을 머금고 후퇴를 계속하다가 개전 40여일이 경과한 8월초에는 마침내 낙동강을 끼고 최후 방어선을 구축하게 되었다. 이에 더 물러설 곳도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왜관-상주-영덕을 연하는 전선은 국군이, 현풍-창녕-진동을 연하는 전선은 유엔군이 방어하게 되었다. 이곳 박진지역은 부산을 점령하기 위해 낙동강을 도하하여 최후의 발악을 하던 북한공산군과 미군이 2주간 사투를 벌였던 격전지이다. ..

경남 2012.05.19

창녕 영산 석빙고 (昌寧 靈山 石氷庫)

창녕 영산 석빙고 (昌寧 靈山 石氷庫.보물 제1739호.경남 창녕군 영산면 교리 산10-2) 화강석으로 쌓은 조선 중기의 얼음창고이다. 정확한 축조시기는 알 수 없으나 『여지도서』와 조선 후기의 읍지에 따르면 현감 윤이일이 세운 것으로 생각된다. 들어가는 입구가 높고 뒤로 갈수록 낮은, 전체적으로 둥근 모양으로 되어 있다. 내부는 거칠게 다듬은 큰 돌로 쌓은 네모진 형태이다. 창고가 있는 곳에서 바라다보면 빙고 뒤쪽 끝으로 개울이 있는데 지금은 개울에 물이 말랐지만, 이는 상류에 제방을 쌓았기 때문이며 옛날에는 수량이 풍부했다고 한다. 다른 석빙고에 비해 약간 작은 규모이나, 쌓은 수법은 같다.(문화재청 자료) ※(영산석빙고 → 창녕 영산 석빙고)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환기..

경남 2012.05.19

창녕 영산 만년교 (昌寧 靈山 萬年橋)

창녕 영산 만년교 (昌寧 靈山 萬年橋.보물 제564호.경남 창녕군 영산면 원다리길 42 (동리)) 마을 실개천 위에 무지개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돌다리로, 실개천이 남산에서 흘러내린다 하여 ‘남천교(南川橋)’라고도 불리운다. 개천 양쪽의 자연 암반을 바닥돌로 삼고 그 위에 잘 다듬어진 화강암 석재를 층층이 쌓아 무지개 모양의 홍예(虹霓)를 이루고 있다. 그 위로는 둥글둥글한 자연석을 쌓아 올리고 맨 위에 얇게 흙을 깔아 다리 위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았다. 노면은 곡선을 그리며 양 끝을 길게 늘이고 있어 다리의 분위기를 한결 아늑하게 해준다. 조선 정조 4년(1780)에 처음 쌓은 것을 고종 29년(1892)에 다시 쌓아 놓은 것으로, 지금도 마을 사람들이 통행할 만큼 튼튼하여 홍수 등에..

경남 2012.05.19

영산쇠머리대기 (靈山쇠머리대기.중요무형문화재 제25호.영산쇠머리대기보존회)

영산쇠머리대기 (靈山쇠머리대기.중요무형문화재 제25호.영산쇠머리대기보존회) 영산 쇠머리대기는 일종의 편싸움 놀이로, 마을을 동·서로 갈라 두 패로 편을 짜는데 이긴 편 마을에는 풍년이 들고 진 편 마을에는 흉년이 든다고 해서 농경의식의 하나로 전해져 왔다. 영산지방에서는 ..

경남 2012.03.01

영산쇠머리대기 (靈山쇠머리대기.중요무형문화재 제25호.영산쇠머리대기보존회)

작은 영산쇠머리대기 (靈山쇠머리대기.영산중학교) 靈山쇠머리대기 전(前) 행사로 영산중학교 학생들 행사 영산쇠머리대기 (靈山쇠머리대기.중요무형문화재 제25호.영산쇠머리대기보존회) 영산 쇠머리대기는 일종의 편싸움 놀이로, 마을을 동·서로 갈라 두 패로 편을 짜는데 이긴 편 ..

경남 2012.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