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경주/경주인근자료 470

효소왕릉과 성덕왕릉

효소왕릉 경주시 조양동 사적 184호로 지정된 능이 효소왕릉이다. 아버지 31대 신문왕릉은 가공석으로 호석을 짜 놓은 거대한 능이고, 동생 성덕왕릉 또한 화려하고 장엄한 능인데 비해 너무나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이 왕릉은 모두 두 번의 도굴을 당했다 유물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으며, 당시 확인된 석실의 규모는 길이 3m, 폭 1m50cm, 높이 1m50cm정도의 크기로 확인되었다. 능에 사용된 돌은 화강석이었으며, 벽의 두께는 30cm정도였다. 삼국사기에 효소왕릉은 현 배반동에 소재한 망덕사지의 동쪽에 장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어, 현재 전 신문왕릉이 효소왕릉이 아닐까하는 의문을 갖고 있다. 성덕왕릉 성덕왕릉은 삼국사기에는 이거사(移車寺) 남쪽이라 했고, 삼국유사 왕력 편에는 동촌(東村) 남쪽..

구정동 방형분

구정동 방형분 사적 제 27호이며 경주에서는 이와같은 네모난 형태의 봉분은 이 방형분 뿐이다. 높이가 2m 한 변의 길이 9.5m인 이 방형분은 특이한 봉분 양식이다. 이 봉분 남쪽 면의 중앙으로 통하는 입구로 해서 안으로 들여다 보면 석실 바닥에 관을 받치는 돌로 만드는 관대가 놓여져 있다. 누구의 무덤인지는 확인되고 있지 않으나, 사면에 3개씩 마련된 12지신상의 지석이 우아한 조각수법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 시대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남쪽 석실입구가 개방되어 있다. 구정동 방형분 십이지상 쥐 소 범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방형분 석실 내부 경북 경주시 구정동 석실분(石室墳·돌방무덤)의 모서리 기둥(통일신라 9세기경·경주박물관 ) 이 석조기둥엔 방망이 하나를 ..

백률사 및 소금강산 마애삼존불

소금강산 가슭에 위치한 사찰로써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이 절의 대비관음상은 중국의 장인이 중생사의 관음소상을 만들 때 함께 만든 것이라는 속전이 있고, 또 이 관음상에 얽힌 영험이 693년(효소왕2)에 있었던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어 삼국통일을 전후한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이 된다. 『삼국유사』에 의하며 이 대비관음상이 언제 조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신이(神異)한 일들이 많았다고 한다. 692년에 국선이 된 부례랑(夫禮郞)은 693년 3월에 화랑의 무리를 거느리고 강릉지방에 이르렀다가 말갈족에게 잡혀갔다. 문객들은 당황하여 돌아갔으나 안상(安常)만이 그를 뒤쫓아 갔다. 효소왕은 이 소식을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는데 그때 상서로운 구름이 천존고(天尊庫)를 덮었으므로 창고를 조사시켰더니 현금(玄琴)..

옥산서원

옥산서원 태극문 앞에서 본 옥산서원 세심대 옥산서원 앞의 외나무다리 정문 바로 앞의 향나무 고목 회재 이언적선생(1491~1553)을 모신 서원으로 선조 5년(1572)에 지어졌다. 선조 7년에 옥산서원이라 하게 되었는데, 서원 주위에 자옥산, 도덕산, 화개산, 무학산이 둘러 싸고 증심대, 관어대, 세심대 등 아름다운 자연을 끼고있는 것이 이 서원의 두드러진 점이다. 규모가 100여간으로 크고 이름난 이 서원은 동방 오현의 한 분인 이언적의 학문과 덕을 추모하며, 보물 제525호로 지정된 삼국사기를 비롯하여 총866종 4,111책의 서적을 보관하고 있다(사적 제 154호 ). 편액의 앞면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가, 뒷면에는 이산해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비각(회재 이언적선생 신도비) 신도비의 귀부 경각 어..

경주임난창의공원과 박무의공비

(임란창의공원 :경주 황성공원) 임진왜란은 선조25년(1592)에서 31년(1598)까지 7년 동안 계속된 조선과 왜의 전쟁이다. 전란 내내 경주부는 최전방이었고, 군사상 요충지였기에 피해가 클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임진 4월 왜군이 첫 침입하였을 때도 그랬지만 정유재란의 병화는 더 컸다. 더구나 소위 평화교섭이 진행되던 선조 26년부터 3년 동안에도 타 지역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전투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그 까닭에 최전선에서 왜적을 맞아야 하는 경주부의 사람들은 다른 지역민들 보다 더 열심히 의병을 조직하여 싸웠다. 경주 문천회맹 (蚊川會盟) 경주읍성을 탈환하기 위한 문천회맹은 선조 25년(1592) 6월 9일 경주 남천(문천)가에 위치한 월성에서 있었다. 이 회맹은 팔공산, 화왕산 회맹보다 앞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