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경주 621

경주 석굴암 석굴 (慶州 石窟庵 石窟) 100년의 진실

석굴암의 불상 우리는 무엇보다도 잊어선 안 될 작품으로 경주의 불상을 갖고 있다. 영국인은 인도를 잃어버릴지언정 셰익스피어를 버리지 못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귀중한 보물은 이 석굴암의 불상이다. 고유섭의 '신라의 조각'(1934. 10)에서 경주 석굴암 석굴 (慶州 石窟庵 石窟.국보 제24호.경북 경주시 불국로 873-243, 석굴암 (진현동))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으며,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고 불렀다. 경덕왕은 신라 중기의 임금으로 그의 재위기간(742∼765) 동안 신라의 불교예술이 전성기를 이루게 되는데, 석굴암 외에도 불국사, 다보탑, 석가탑, 황룡사종 등 많은 문화재들이 이때 만들어..

경주 양남 주상절리군과 읍천항

아래 모든 사진 클릭하시면 원본 크기의 사진이 보입니다. 경주 양남 주상절리군( 천연기념물 제536호. 경북 경주시 양남면 일원 공유수면)경주 양남 주상절리군은 발달규모와 발달크기 및 형태의 다양성에 있어서 이미 지정되어 있는 타 지역 주상절리 천연기념물과는 뚜렷한 차별성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부채꼴 모양의 특이 주상절리를 비롯한 수평 방향의 주상절리가 대규모로 발달되어 있다. 화산암의 냉각과정 및 특성을 복합적으로 이해하는 연구 및 교육 자료로서의 가치를 가지는 데에 부족함이 없으며, 동해의 형성과정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학술자료를 제공한다. (문화재청 자료) 주상절리란? 마그마에서 분출한 1000℃ 이상의 뜨거운 용암은 상대적으로 차가운 지표면과 접촉하는 하부와 차가운 공기와 접촉하는 상부에서..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 해체수리(문화재청 보도자료.2012.9.27)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 해체수리 - 9.27.(목) 오후 1시, 해체수리 착수보고회 -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영원)와 경주시(시장 최양식), 불국사(주지 성타 스님)는 27일 오후 1시 경북 경주시 불국사에서 전문가, 관계인사와 기자단 등이 참석한 가운데 ‘경주 불국사 삼층석..

태종무열왕릉비. 태종무열왕릉.서악동 고분군

경주 태종무열왕릉비 (慶州 太宗武烈王陵碑.국보 제25호. 경북 경주시 서악동 844-1) 신라 제29대 왕인 태종무열왕의 능 앞에 세워진 석비이다. 태종무열왕(김춘추, 재위 654∼661)은 김유신과 함께 당나라를 후원세력으로 삼아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진 인물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졌던 비(碑)들은 중국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 받침돌은 거북 모양을 하고 있고, 비몸위의 머릿돌에는 이무기의 모습을 새겨져 있는데, 태종무열왕릉비는 이러한 양식이 나타난 그 최초의 예가 되고 있다. 비각안에 모셔져 있는 비는 현재 비몸이 없어진 채 거북받침돌위로 머릿돌만이 얹혀져 있다. 거북은 목을 높이 쳐들고 발을 기운차게 뻗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등에는 큼직한 벌집 모양의 육각형을 새긴 후, 등 중앙에 마련된..

경주 서악동 귀부 (慶州 西岳洞 龜趺).김인문묘 (金仁問墓).김양묘 (金陽墓)

경주 서악동 귀부 (慶州 西岳洞 龜趺.보물 제70호.경북 경주시 서악동 1006-1) 서악리 태종무열왕릉의 남쪽 길 건너편에 남아있는 것으로,『삼국사기』의 기록이나 서악서원의 영귀루 북쪽 받침에서 찾아낸 비석조각에 새겨진 글로 미루어, 김인문(629∼694)의 공적을 새겨놓았던 비의 받침..

경주 신라고분에서 금동관식(金銅冠飾)등 유물 다량 출토(E-41호 분)

경주 신라고분에서 금동관식(金銅冠飾)등 유물 다량 출토 - 5.22 오후 2시,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류춘규)는 오는 22일 오후 2시 경북 경주시 황오동 삼국시대 고분 발굴조사 현장에서 완전한 형태의 신라고분 1기의 발굴성과..

고선사 삼층석탑. 서당화상비(誓幢和上碑) 및 귀부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慶州 高仙寺址 三層石塔.국보 제38호.경북 경주시 일정로 186, 국립경주박물관 (인왕동)) 원효대사가 주지로 있었던 고선사의 옛 터에 세워져 있던 탑으로, 덕동댐 건설로 인해 절터가 물에 잠기게 되자 1975년에 지금의 자리인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 세워 놓았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놓은 모습인데, 통일신라시대 석탑양식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기단은 여러 개의 돌로 구성하였으며, 각 면에는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탑신도 여러 개의 돌을 조립식으로 짜 맞추었으나, 3층 몸돌만은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사리장치를 넣어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배려로, 석탑을 해체하여 복원하면서 밝혀졌다. 지붕돌은 윗면에 완만한 경사가 흐르는데, 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