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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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산馬耳山 금당사金堂寺

금당사(金堂寺. 전북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남로 (동촌리 41)) 자연동굴을 법당으로 삼고 시작한 사찰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마이산(馬耳山)에 있는 절로 금당사(金堂寺)라고도 한다. 대한 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절의 창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650년(의자왕 10) 고구려에서 백제로 건너온 보덕(普德)의 제자 중 한 사람인 무상(無上)이 그의 제자인 금취(金趣)와 함께 세웠다고 한다. 당시 위치는 지금보다 약 1.5㎞ 떨어진 곳이었으며, 예전에 있던 자리를 고금당(古金塘), 혹은 자연동굴을 법당으로 삼았으므로 혈암사(穴巖寺) 또는 금동사(金洞寺)로 불렀다고 한다.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은 1675년(숙종 1)의 일이다. 다른 하나의 창건 설은 8..

전북 2022.02.26

마이산馬耳山 탑사塔寺

돌탑이 있어 이름도 탑사(塔寺) 탑사(塔寺)는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8번지 마이산 서봉의 직립한 절벽 아래에 위치한 태고 종단에 소속된 전통 사찰로 마이산의 신비한 돌탑 속에 자리하고 있다. 사찰은 이름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마이산 석탑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1920년경 이갑룡 처사가 마이산에 들어와 초가 암자를 짓고 거주하면서 돌 미륵불을 안치하고 불공을 드리기 시작하여 1935년경에는 목조 함석지붕 단층 주택으로 개축하고 부처님을 봉안하였다. 그러나 이갑룡은 처사(處士)라고 불리는 것처럼 승려 행세를 하지 않았고, 따라서 절 이름도 없었다. 다만 편의상 돌탑이 있다 해서 탑사라 불려왔다. 그 후 이갑룡의 손자인 이왕선(李旺善)이 한국 불교 태고종에 사찰 등록을 하였고, ‘한국 불교 태고종..

전북 2022.02.26

담락당 하립·삼의당 김씨 부부 시비(湛樂堂河립·三宜堂金氏夫婦詩碑)

담락당 하립·삼의당 김씨 부부 시비(湛樂堂河립·三宜堂金氏夫婦詩碑 전북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36-1) 담락당湛樂堂과 삼의당三宜堂. 부부夫婦 시인을 기념하는 시비이다. 삼의당(三宜堂) 김씨는 1769년(영조 45) 남원에서 사관 김일손의 11대 손 김인혁의 딸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金海). 택호가 삼의당이다. 여성이기에 이름은 전하지 않고 그 택호만 전한다. 조선시대 여성으로서 가장 많은 257편이나 되는 시문을 남겼다. 기록에 의하면 남원시 향교동 처봉마을(현재의 유천마을)에서 출생하여 서당과 향교의 담벽에 몰래 붙어 서서 학도의 글 읽는 소리를 듣고 한글과 한문을 깨우쳤다 한다. 그녀는 나이 18세에 같은 마을에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난 담락당(湛樂堂) 하립과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

카테고리 없음 2022.02.25

유사선암유작(遊四仙嵓有作. 석천인釋天因) -석탑사 풍경 소리-

안동석탑리방단형적석탑(安東石塔里方壇形積石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석탑리 861-1) 안동시 북후면 석탑리 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계단식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모습이다. 평면이 정사각형을 이루고 있는데, 각 층마다 비교적 크고 반듯한 판돌 네 장으로 면을 이루게 한 뒤, 그 안을 막돌로 채워 넣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줄어들어 5층으로 되어 있으나, 원래의 형태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전기에 세운 것으로 추측되며, 보기 드문 양식을 보여주고 있어 석탑의 여러 형태를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문화재청)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석탑리 석탑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이다. 석탑의 형태는 평면이 정사각형이며, 위로 올라가면서 계단식..

안동석탑리방단형적석탑(安東石塔里方壇形積石塔). 석탑사(石塔寺). 안동 석탑사 목조관세음보살좌상(安東 石塔寺 木造觀世音菩薩坐像)

안동석탑리방단형적석탑(安東石塔里方壇形積石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석탑리 861-1) 안동시 북후면 석탑리 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계단식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모습이다. 평면이 정사각형을 이루고 있는데, 각 층마다 비교적 크고 반듯한 판돌 네 장으로 면을 이루게 한 뒤, 그 안을 막돌로 채워 넣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줄어들어 5층으로 되어 있으나, 원래의 형태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전기에 세운 것으로 추측되며, 보기 드문 양식을 보여주고 있어 석탑의 여러 형태를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문화재청)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석탑리 석탑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이다. 석탑의 형태는 평면이 정사각형이며, 위로 올라가면서 계단식..

경상북도/안동 2022.02.22

梅一生寒不賣香 : 매화는 일생동안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노항장곡) 오동나무는 천년이 되어도 항상 곡조를 간직하고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매화는 일생동안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月到千虧餘本質(월도천휴여본질) 달은 천번을 이지러져도 그 본질은 남아 있고 柳經百別又新枝(유경백열우신지) 버드나무는 백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올라온다. - 상촌 신흠 -

대구 2022.02.21

의성김씨학봉종택(義城金氏鶴峰宗宅)

의성김씨학봉종택(義城金氏鶴峰宗宅. 경상북도 기념물. 경북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856번지) 조선 중기 문신 학봉 김성일(1538∼1593) 선생의 종가이다. 김성일은 선조 1년(1568) 과거에 급제하여 정언과 수찬 나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경상도 초유사로 관군과 의병을 화합시켜 의병의 전투력 향상에 큰 공을 세웠다. 퇴계의 제자로 뛰어난 성리학자이기도 한 그의 학문은 이후 영남학파의 학문 전통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가옥은 一자형 안채와 사당, 문간채, 풍뢰헌, 운장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운장각은 유물의 보관과 전시를 위하여 세운 것으로 선생의 유품과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책과 옛 문서를 보관하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의성현 제일의 토성인 의성 김씨는 고려 말에 사족으로 성장하여 ..

경상북도/안동 2022.02.18

봉정사 영산암(鳳停寺靈山庵)

봉정사 영산암(鳳停寺靈山庵. 시도민속문화재.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봉정사길 222]) 천등산 기슭에 있는 봉정사는 신문왕 2년(682) 의상대사가 지었다고 한다. 부석사를 세운 의상대사가 부석사에서 종이로 봉황새를 만들어 날려 보냈는데, 그 새가 내려앉은 자리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 이름 지었다는 전설이 전하여 온다. 봉정사의 영산암은 지조암과 함께 봉정사의 부속암자로 응진전, 영화실, 송암당, 삼성각, 우화루·관심당 등 5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건물의 구체적인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봉정사영산암향로전창건기'와 봉정사영산전중수기'등의 사료로 볼 때 19세기 말로 추정된다. 건축적으로는 크게 주목할 만한 부분은 없으나 우화루와 송암당 등에서 폐쇄적인 공간을 개방적으로 처리한 것이나 삼성각..

경상북도/안동 2022.02.14

「동학농민군 편지」문화재 등록, 철도차량 4건 등록 예고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동학농민군 편지(2022)」를 문화재로 등록하고, 철도차량 4건을 등록 예고하였다. 국가등록문화재 「동학농민군 편지(2022)」는 전남 화순에서 동학농민군으로 활동하다 나주 감옥에 수감 중이던 한달문(韓達文, 1859-1895)이 고향에 계신 어머님께 직접 쓴 옥중 한글 편지 원본이다. 본인의 구명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고상’ - 고생(苦生), ‘깊피’ - 급히, ‘직시’ - 즉시 등 전라 방언 특성이 담겨 있고, 당시 동학농민군의 처지와 실상을 살필 수 있는 역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히, 작년에 등록된 유광화의「동학농민군 편지」와는 대조적이어서 다양한 계층이 동학농민군으로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유광화(劉光華, 1858~1894)가 양반가의 자제로서 필요한 군자금..

기타/각종정보 2022.02.10

안동 이천동 석불상(安東泥川洞石佛像)

안동 이천동 석불상(安東泥川洞石佛像. 보물. 경상북도 안동시 이천동 산2) 자연암벽에 신체를 선으로 새기고 머리는 따로 올려놓은 전체 높이 12.38m의 거구의 불상이다. 이러한 형식의 불상은 고려시대에 많이 만들어졌는데,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보물)도 이와 거의 같은 수법을 보여준다. 머리의 뒷부분은 거의 파손되었으나 앞부분은 온전하게 남아 있다.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높이 솟아 있고, 얼굴에는 자비로운 미소가 흐르고 있어 거구의 불상임에도 전체적인 형태는 자연스럽다. 머리와 얼굴 특히 입에는 주홍색이 남아 있어서 원래는 채색되었음이 분명하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몇 개 안되는 옷주름은 매우 도식적(圖式的)으로 표현되고 있다. 양 손은 검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어 왼손을 ..

경상북도/안동 2022.02.10

안동 운흥동 오층전탑(安東 雲興洞 五層塼塔)과 안동 운흥동 당간지주(安東雲興洞幢竿支柱)

안동 운흥동 오층전탑(安東 雲興洞 五層塼塔. 보물. 경북 안동시 운흥동 231번지) 안동시 운흥동(舊안동역)에 있는 탑으로, 전탑塼塔(塼벽돌 전)의 형태를 띠고 있다. 안동 지방에는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전탑이 다소 있는데, 전탑이란 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은 탑을 이른다. 탑은 무늬 없는 벽돌로 5층을 쌓았다. 몸돌에는 층마다 불상을 모시기 위한 방인 감실(龕室)을 설치했고 특히 2층 남쪽 면에는 2구의 인왕상(仁王像)을 새겨두었다. 지붕돌은 벽돌을 사용한 것에서 오는 제약 때문에 처마 너비가 일반 석탑에 비해 매우 짧다. 밑면의 받침 수는 1층부터 차례로 10단·8단·6단·4단·3단으로 줄어들었고 처마 끝에는 기와골을 받기 위해 총총한 나무를 얹고 4층까지 기와를 입혀 놓았다. 이러한 지붕모양은..

경상북도/안동 2022.02.10

'안동역에서' 노래비 -舊안동역(운흥동)-

2020년 중앙선 이설로 폐쇄된 舊안동역사가 도시 문제를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의제를 나누는 소통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안동시는 이 공간을 문화플랫폼 '모디684'로 꾸미고 2021년 7월 16일 개관했다. 안동역은 중앙선이 도담-영천 구간의 복선전철화와 함께 선로가 이설되어, 2020년12월17일에 운흥동에서 송현동 안동버스터미널 앞으로 이전되었다. 안동역에서 바람에 날려버린 허무한 맹세였나 첫 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 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데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오지 않는 사람아 안타까운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 기적소리 끊어진 밤에 어차피 지워야 할 사랑은 꿈이였나 첫 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 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

경상북도/안동 2022.02.09

옥산사 마애약사여래좌상(玉山寺磨崖藥師如來坐像)

옥산사 마애약사여래좌상(玉山寺磨崖藥師如來坐像.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장기리 산146)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장기리 자연암벽에 새겨진 불상으로, 이중으로 된 연꽃무늬 대좌(臺座) 위에 앉아 있다. 마애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양옆에 보살이 있는 삼존불(三尊佛)로 추정된다.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있으며, 목에는 3줄로 새겨진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를 감싼 옷을 입었고 앞가슴에는 치마의 띠매듭이 보인다.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 위에 올리고 왼손은 아랫배 부분에서 작은 약그릇을 받쳐 들고 있다. 마애불에서는 드물게 삼존불 형식으로 만든 것으로 이런 유형의 불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출처 : 문화재청) 옥산사 마애약사여래좌상은 옥산사(玉山寺) 뒤편..

경상북도/안동 2022.02.09

육신사(六臣祠) 및 달성 태고정(達城 太古亭)

육신사(六臣祠.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길 64[묘리 640]) 육신사(六臣祠)는 사육신인 하위지(河緯地), 박팽년(朴彭年), 이개(李塏), 성삼문(成三問), 유성원(柳誠源), 유응부(兪應孚)와 박팽년의 아버지 박중림(朴仲林)을 모신 사당이다. 육신사는 묘골 아름 마을 가장 위쪽에 자리잡고 있다. 경내 건물로는 외삼문과 숭절당(崇節堂), 사랑채 2동, 내삼문인 성인문(成仁門), 사당인 숭정사(崇正祠), 태고정(太古亭), 태고정 안채 등이 있다. 배치는 대지를 3단으로 조성하였는데, 가장 높은 곳에 제향 공간인 성인문과 숭정사가 일곽을 이룬다. 한 단 낮은 공간은 태고정과 태고정 안채가 자리잡고 있다. 태고정 전면에 대지를 한 단 낮추어 전사청과 제향 시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숭절당과 사랑채 2동..

대구 2022.02.09

지리산(智異山) 칠불사(七佛寺) 아자방(亞字房) 불교설화 벽화 -비슬산琵瑟山 용연사龍淵寺 극락전極樂殿 -

지리산(智異山) 칠불사(七佛寺) 아자방(亞字房) 불교설화 조선 중엽 하동 군수로 온 정여상이 쌍계사에 초도순시차 왔다. 쌍계사에서 점심 요기를 하고 주지스님이 내어 온 녹차를 마시고는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칠불암의 아자방 얘기가 나왔다. 정여상은 쌍계사 주지에게 물었다. “이곳에는 칠불암이라는 암자가 있지요? 좀 보고 싶은데요. 참 어째서 칠불암이란 그런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까?” “예, 그 칠불암은 신라 제5대 바사왕 23년(서기 102년), 김수로왕의 일곱 아들이 출가하여 그곳에서 모두 성불하였기에 붙여진 이름이지요.” “제가 듣기로는 그 암자에 아자방이 유명하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좀 유명하지요.” “어떻게 유명합니까?” “예, 그 아자방은 방 자체도 크지만 방의 형상이 아..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 물음 :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이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나? 말씀 :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은 중생제도를 강조하면서 등장한 대승불교의 자리이타自理利他(자신을 위할 뿐 아니라 남을 위하여 불도를 닦는 일)의 정신 즉, 자신도 이롭게 하면서 타인도 이롭게 해야 한다는 공동체적 정신을 표현한 말입니다. 즉 보살이 위로는 자신을 위해 깨달음의 지혜를 구하고 아래로는 깨닫지 못한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은 보살菩薩의 원래적 표현인 보리살타菩提薩陀의 의미로도 파악될 수 있습니다. 보살菩薩이란 본래 보리살타菩提薩陀 줄인 말인데, 보리살타는 인도의 옛말 보디삿트바बोधिसत्त्व bodhisattva를 소리 나는 대로 옮긴 말입니다. ..

태전선사太顚禪師와 한유韓愈 그리고 홍련紅蓮 -비슬산琵瑟山 용연사龍淵寺 극락전極樂殿 벽화-

태전선사太顚禪師와 한유韓愈 그리고 홍련紅蓮 중국 당나라 때 한유(韓愈, 韓退之, 768~824)는 문장이 뛰어난 당송 8대가의 한 사람이며, 당헌종의 신임도 두터워서 한림학사라는 높은 벼슬에 있었지만, 헌종이 인도에서 부처님의 뼈사리를 모셔오는데, 크게 관심을 보여 동참하자, 그것을 비방하는 불골표(佛骨表)를 올려서 헌종의 미움을 받고, 장안에서 800리 떨어진 시골 조주자사로 좌천되었다. 울분을 참지 못하고 술과 문장으로 세월을 보내던 한유는 조주에 훌륭한 태전선사(太顚禪師, 732~824)라는 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스님을 타락시켜 불교가 하찮은 것임을 밝히려고, 가장 젊고 예쁜 홍련(紅蓮)이라는 기생에게 "백일의 기한을 줄 것이니, 태전선사라는 중을 파계(破戒) 시켜라, 그렇지 않으면 너의 목..

혜가단비도(慧可斷臂圖 팔을 잘라 도를 구하다)-비슬산琵瑟山 용연사龍淵寺 극락전極樂殿 벽화-

혜가단비도(慧可斷臂圖 팔을 잘라 도를 구하다) 중국 당대에 형성된 선종은 근원적인 본래심(本來心) 즉 불성(佛性)을 자각하고 그 지혜와 덕성을 일상 속에서 완성하고 전개하였다. 따라서 부처님의 가장 본질 적인 가르침이 선(禪)수행이라고 여겼기에 이 전승의 출발은 석가모니부처님으로부터 시작한다. 첫번째 조사는 가섭 존자이며 두 번째는 아난 존자이다. 이후 27조 반야다라 존자를 잇는 28조가 바로 달마(達磨) 대사이다. 남인도 향지국의 태자였던 달마 대사는 인도 28조이면서 중국 초조(初祖)가 된다. 그로부터 2조 혜가(慧可) 대사, 3조 승찬(僧璨) 대사, 4조 도신(道信) 대사, 5조 홍인(弘忍) 대사에 이르렀고, 홍인에게서 6조인 혜능(慧能) 대사가 나왔다. 그래서 서천(西天) 28조와 동토(東土) ..

목탁木鐸 -물고기 등에서 자라는 나무. 비슬산琵瑟山 용연사龍淵寺 적멸보궁寂滅寶宮 벽화-

목탁木鐸 -물고기 등에서 자라는 나무- 어느 절에 덕이 높으신 스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이 방탕한 생활을 하다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하루는 그 스님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등에 커다란 나무가 난 물고기가 뱃머리에서 울었다. 스님이 보니 전생에 방탕한 제자였다. 가여운 생각이 들어 그를 위해 수륙천도재水陸遷度齋를 베풀어 물고기 몽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그날 밤 꿈에 제자기 나타나서 자신의 등에 난 나무를 베어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부처님 앞에서 치면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교훈이 될 것이며 또 강이나 바다에 사는 물고기들이 해탈할 수 있는 좋은 인연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목어가 만들어 졌으며 이것이 목탁으로 변형되어 오늘 날 여러 행사에 널리 사용되는 중요한 법구가 되었다. 중국 선종 사찰..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에서 새로운 명문 벽돌 출토- 29호분 폐쇄 벽돌에서 제작자 출신지 기록 확인 (‘ 이것을 만든 사람은 건업인이다 ’) -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임승경)는 2021년 상반기부터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29호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추진하여 왕릉급 고분을 재확인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무덤 입구를 폐쇄하는데 사용한 벽돌을 전량 수습하여 정리한 결과, ‘조차시건업인야(造此是建業人也)’라는 명문이 새겨진 벽돌을 새롭게 확인하였다.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에는 굴식돌방무덤(橫穴式 石室墳)과 벽돌무덤(塼築墳)이 함께 자리하고 있는데, 이 중 벽돌무덤인 무령왕릉과 6호분에서는 글자가 새겨진 명문 벽돌이 이미 출토된 바 있어 당시 대외교류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비교 평가되고 있다. 이번 29호분 벽돌에서 처음 확인된 명문은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다른 것으로서 당시 제작자의 출신지가 기록된 매우 중요한 자료다. * 굴식돌..

기타/각종정보 2022.02.05

대구 달성 비슬산琵瑟山 용연사龍淵寺 극락전極樂殿 부모은중경父母恩難報經에 관한 벽화

공자(孔子)는 3000가지 죄악 중에 불효(不孝)가 가장 큰 죄라 했고, 불가(佛家)에서는 양 어깨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업고 우주의 중심이라는 수미산(須彌山)을 한 없이 돌고 돌아도 그 은혜를 갚을 수 없다고 한다. 그만큼 부모님의 은혜가 지중(至重)하며 효도가 중요하다는 가르침이다.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 제1장, 이 경을 설한 인연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왕사성에 있는 기수급고독원에서 큰 비구 3만 8천 인 및 여러 보살마하살과 함께 계셨다. 제2장, 마른 뼈의 가르침 그 때에 부처님께서 대중들과 함께 남방으로 가시다가 한 무더기의 마른 뼈를 보셨다. 부처님께서는 오체투지로 마른 뼈에 예배하셨다. 이를 보고 아난과 대중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

송해宋海 기념관記念館 Song Hae Memorial Hall

대구광역시 달성군은 2021년 12월 2일 대구 달성군 옥포읍 옥포로56길 5(구 지번 : 옥포읍 기세리 598) 송해공원에서 김문오 달성군수, 송해, 김기찬 황해도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송해宋海 기념관記念館 Song Hae Memorial Hall’ 개관식을 했다. 황해도 재령 출신인 송해는 한국전쟁(6·25전쟁) 피난 중 대구에서 육군본부 통신병으로 복무하며 달성군과 인연을 만들었다. 3년 8개월간의 군복무를 하는 동안 선임의 소개로 1952년에 대구 달성군 옥포읍 기세리가 고향인 부인 석옥이씨를 만나 결혼했다. 2011년 달성군 명예군민·달성군 명예홍보대사를 맡았다. 달성군은 2016년 옥연지 일대 65만㎡를 개발해 '송해공원宋海公園'으로 이름 붙였다 달성군은 송해 자신이 방송 활동을 하면서 소..

대구 2022.01.27

포항 보경사 승탑浦項 寶鏡寺 僧塔과 포항 보경사 원진국사비浦項 寶鏡寺 圓眞國師碑

포항 보경사 원진국사비(浦項 寶鏡寺 圓眞國師碑. 보물. 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로 523, 보경사 (중산리)) 보경사에 있는 고려 중기의 승려 원진국사의 탑비이다. 원진국사(1171∼1221)는 13세에 승려가 되어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도를 하기도 하였고, 왕의 부름으로 보경사의 주지가 되었다. 51세로 입적하자 고종은 그를 국사(國師)로 예우하고, 시호를 ‘원진’이라 내리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간결한 모습으로, 비몸 윗부분의 양 끝을 접듯이 잘라 놓았는데, 이러한 모습은 당시에 유행하던 양식이다. 넓다란 바닥돌과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거북받침돌은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를 하고 있다. 등에는 6각형의 무늬마다 ‘왕(王)’자를 질서정연하게 새겨놓았으며, 등 중앙에는 연꽃을 ..

경상북도/포항 2022.01.23

보경사寶鏡寺

보경사寶鏡寺(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로 523(중산리 622)) 유래 보경사는 602년(신라 진평왕 24년)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대덕 지명법사가 603년(진평왕 25년)에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지명법사는 진나라(중국 낙양)에서 유학하면서 ‘백마사’에서 모셔온 팔면보경八面寶鏡에 대한 이야기를 왕에게 자세히 고하고 큰 불사를 원력을 밝혔다. 왕은 지명법사10만리 만경창파를 헤치고 모셔온 호법인연으로 대작불사 의지를 삼보전에 아뢰고 신하들을 대동해 해맞이(영일) 고을로 출발하였다. 일행이 명당을 찾고 있을 때 지명智明법사가 하늘을 쳐다보니 오색구름이 있었는데 이 구름을 따라 동해안을 거슬러 내연산內延山에 도착했다. 일만이천봉에 12폭포가 절정을 이루고 넓은 연못이 있었다. 일제히 걸음을 멈추고..

경상북도/포항 2022.01.23

포은정몽주圃隱鄭夢周 탄생지誕生地

포은정몽주圃隱鄭夢周 탄생지誕生地(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우항리 183번지) 포은 정몽주 생가는 영천시에서 영천시 임고면 우항리 183번지 일대에 복원사업을 추진하여 2015년 10월에 준공했다. 포은 정몽주 생가터 추정지에는 생가의 주춧돌로 추정되는 돌이 드러나 있으며 인근에서 기와 조각과 도자기 파편이 여러 점 발견되었으며, (재)계림문화재연구원에서 정밀 조사한 결과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의 것으로 각각 확인됐다. 또한,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 22권 경상도 영천군조 인물편과 포은의 문집 「교서관본(校書館本)」과 서애 류성룡이 지은 「연보고이(年譜攷異)」에도 "지원3년 정축(1377년) 12월 무자일에 선생이 영천군 동쪽 우항리에서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몽주의 출생 설화 및 우..

경상북도/영천 2022.01.18

일성부원군(日城府院君) 정운관(鄭云瓘 : 포은 정몽주선생의 부) 묘소

일성부원군(日城府院君) 정운관(鄭云瓘 : 포은 정몽주선생의 부) 延日(迎日,烏川)鄭씨 지주사공파(知奏事公派) 9대손 父는 증밀직부사 유(裕), 祖父는 증개성윤 인수(仁壽), 曾祖父는 판도판서 림(林), 高祖父는 진현관제학 종흥(宗興)이다. 선생은 향시 과거에 합격한 뒤 성균복응제생의 벼슬에 올랐으며 뒤에 아들인 포은 정몽주가 귀하게 되어 신덕수의성근익조공신에 벽상삼한삼중대광으로 수문하시중 판병조사상호군영경령전사 일성부원군에 증직되었으며, 부인 이씨는 변한국대부인(卞韓國大夫人)에 봉해졌다. 슬하에 네명의 자손을 두셨는데 장남이 포은 정몽주, 둘째가 정과(鄭過)로 벼슬이 예조판서이며, 셋째가 鄭厚, 넷째가 鄭蹈로 벼슬이 사재령판서로 1392년 임신 4월에 둘째인 정과(鄭過)와 함께 이성계의 반정세력에 의해 ..

경상북도/영천 2022.01.17

포은정몽주유허비 (圃隱鄭夢周遺墟碑)

포은정몽주유허비 (圃隱鄭夢周遺墟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경북 영천시 임고면 우항리 1044-5번지) 유허비란 한 인물의 옛 자취를 밝혀 후세에 알리고자 세우는 비로, 이 비는 포은 정몽주 선생의 효행을 기리고 있다. 정몽주 선생은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며 삼은(三隱)의 한사람이다. 공민왕 5년(1355) 부친상을 당하여 묘 곁에서 3년상을 치르고, 그후 공민왕 14년(1365) 모친상까지 당하여 역시 3년상을 지내였다. 이토록 지극하였던 그의 효성이 조정에 보고 되자, 출생지인 이곳 우항리 마을에 비를 세워두도록 하였다. 비는 반듯하고 널찍한 사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운 모습이다. 앞면에는 효행을 행한 마을이라는 뜻의 ‘효자리(孝子里)’라는 글귀를 세로로 큼직하게 새겼다. 공양왕 원년(1389)에..

경상북도/영천 2022.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