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경상북도 962

고령 반룡사

반룡사 유래기 용이 서려 있는 형상과 같다하여 반룡사라 부르게 되었으며 신라 애장왕 3년(802년) 해인사와 비슷한 시기에 건립하였다고 전하며, 고려 중기 보조국사가 중건하고 고려말 나옹선사가 다시 중건하였다 한다. (고령읍에서 합천, 거창가는 길로 약 3.5Km를 가면 쌍림공단이 나오고 공단 끝에서 우회전 하면 고곡리인데 여기서 계속 직진하여 올라가서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난길로 따라 올라가면 반룡사이다) 반룡사 대적광전 대적광전 현판 대적광전의 내부(비로자나불) 대적광전의 내부(신장탱화) 대적광전의 내부(지장탱화) 지장전과 약사전이 있는 반룡사 구역 지장전과 약사전 지장전 지장전 내부(지장보살) 약사전 약사전 내부 약사전의 약사여래 반룡사 다층석탑이 있던 자리 반룡사다층석탑(盤龍寺多層石塔) (시도유형문..

경상북도/고령 2008.01.10

고령 양전동암각화

고령양전동암각화(高靈良田洞岩刻畵) (보물 제605호 ) 알터 마을 입구에 있는 높이 3m, 너비 6m의 암벽에 새겨진 바위그림이다. 바위그림은 암각화라고도 하는데, 암각화란 선사시대 사람들이 그들의 생각이나 바램을 커다란 바위 등 성스러운 장소에 새긴 것을 말한다. 전세계적으로 암각화는 북방문화권과 관련된 유적으로, 우리민족의 기원과 이동을 알려주는 자료로 볼 수 있다. 바위그림은 동심원, 십자형, 가면모양 등이 있는데, 동심원은 직경 18∼20㎝의 삼중원으로 총 4개가 있다. 동심원은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태양신을 표현한 것으로 본다. 십자형은 가로 15㎝, 세로 12㎝의 불분명한 사각형안에 그려져 있어 전(田)자 모양을 하고 있다. 이는 부족사회의 생활권을 표현한 듯하다. 가면모양은 가로 22∼30..

경상북도/고령 2008.01.10

김천 갈항사지.오봉동석조석가여래좌상

오봉동석조석가여래좌상(梧鳳洞石造釋迦如來坐像) (보물 제245호.경북 김천시 남면 오봉리 65 ) 이 석불(石佛) 좌상(坐像)은 지금은 없어진 갈항사(葛項寺) 터에 있는 불상(佛像)으로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좌불(坐佛)이다. 만들어진 시기는 갈항사 삼층석탑(三層石塔)의 건립 연대인 경덕왕(景德王) 15년(758) 무렵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오른손은 무릎아래 쪽으로 향하게 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한 손과 오른쪽 무릎 등의 파손이 심한 편이나, 예쁘고 둥근 얼굴, 발달된 젖가슴, 굴곡이 선명한 신체에 밀착된 자유롭고 부드러운 옷주름선 등은 사실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어 당시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문화재지식정보센터) 광배를 장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구멍 기단부 하대석에 있는 문양 오봉동석조석..

경상북도/김천 2007.12.20

전 모례가 정(傳 毛禮家 井)

전 모례가 정(傳 毛禮家 井)(경북 구미시 도개면 도개리 360-4 지방 문화재자료 제296호) 이 우물은 도개리 마을 중앙에 위치하는데, 신라 최초의 불교 신자인 모례(毛禮)의 집에서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모례는 고구려 승려 묵호자(墨胡子)가 신라에 불교 전파를 위해 왔으나 탄압이 심해지자 자기 집에 굴을 파고 숨겨 주었으며, 후에 아도가 왔을 때도 자기 집에 3년 동안 머슴살이하면서 머물게 했다고 전한다. 우물은 직사각형의 석재를 사용하여 큰 독 모양으로 돌을 쌓아 만들었다. 우물의 깊이는 3m이고 둘레는 단면이 원형이며 종단면은 가운데의 배가 부르고 상하가 좁은 형태이다. 밑바닥을 두꺼운 나무판자로 깔아 만든 것이 특징이며 나무판자는 아직도 썩지 않고 그대로 있다. 이 우물과 도리사(桃李寺)는 ..

경상북도/구미 2007.10.04

비안면자락동석조여래좌상 (比安面自樂洞石造如來坐像)

석불사의 석굴암 법당 비안면자락동석조여래좌상 (比安面自樂洞石造如來坐像) : 경상북도유형문화재 56호 해망산 일명 굴암산 중턱의 병풍처럼 둘러싸인 암벽에 자연동굴이 있고 그 안에 불상이 있다. 연꽃무늬가 새겨진 4각의 대좌(臺座)위에 양 발을 무릎 위로 올린 모양으로 앉아있는데, 신체는 전..

경상북도/의성 2007.06.18

비안 향교

비안향교 (比安鄕校) 경상북도문화재자료 263호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비안향교는 원래 관아 소재지였던 비안현 소재지에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광해군 2년(1610) 지금 있는 자리에 복원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이 지역 사람인 손복이 향교의 위패를 산중 굴속에 숨겨 무사히 피해를 면했다고 전한다.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과 동무·서무,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강당인 명륜당, 삼문 등이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그 제자와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관풍루 대성전 명륜당 하마비

경상북도/의성 2007.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