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경상북도 974

손홍량유허비(孫洪亮遺墟碑)

손홍량유허비(孫洪亮遺墟碑.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7호. 경북 안동시 일직면 송리 267-1) 유허비는 옛 선현의 자취를 살피어 후세에 전하고 이를 계기로 그를 추모하기 위해 세워두는 비로, 이 비는 고려 후기의 문신이면서, 일직(一直) 손씨의 시조이기도 한 손홍량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손홍량(1287∼1379)은 원래 순씨였으나 현종의 이름과 같다하여 성을 손씨로 고치었다. 충선왕 대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도첨의찬성사를 거쳐 판삼사사에까지 이르렀으며, 그 이듬해에는 복천부원군에 봉하여졌다. 공민왕 11년(1362) 홍건적의 난이 일어났을 때 난을 평정하자, 왕은 그에게 지팡이와 초상화 등을 내려주며 공을 치하하였다. 비각안에 모셔둔 비는 낮은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경상북도/안동 2020.11.01

의성 관덕리 삼층 석탑(義城觀德里三層石塔)과 의성관덕동석조보살좌상(義城觀德洞石造菩薩坐像)

의성 관덕리 삼층 석탑(義城觀德里三層石塔. 보물 제188호.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 889)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관덕 1리 목촌 마을 뒷산 사자골(해발 160m)에 삼층 석탑과 석조 보살 좌상 등이 위치하고 있다. 목촌 마을에서 북쪽으로 목촌길을 따라 약 400m 정도 올라가면 좌측편으로 약간 넓은 밭이 있고, 그곳에 석탑이 있다. 구전에 의하면 사운사(獅雲寺)라고 하나 근거가 확실한 것은 아니다. 의성 관덕리 삼층 석탑은 높이가 365㎝이고, 지대석은 한 변의 너비가 181㎝ 정도이다.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석탑으로, 각 부분의 장식이 풍부하다. 아래층 기단의 4면에는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하나씩 새기고, 조각에 의해 나누어진 8곳에 비천상(飛天像)을 도드..

경상북도/의성 2020.10.31

안동 소호헌(安東 蘇湖軒)

안동 소호헌(安東 蘇湖軒. 보물 제475호. 경북 안동시 일직면 소호헌길 2 (망호리)) 조선 중종 때 문신 서해(徐嶰) 선생이 서재로 쓰기 위해 명종(재위 1545∼1567) 때 지은 별당이다. 규모는 앞면 4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부속된 방은 지붕 양식이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왼쪽 3칸은 대청, 오른쪽 1칸은 누마루며 앞쪽으로 온돌방 2칸을 붙여 집의 구조가 T자 모양을 이루고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에 간략한 새부리 모양의 구조를 짜았다. 누(樓)마루와 온돌방 뒤쪽으로 난간을 둘렀고 건물 안쪽은 민가 건축에서 볼 수 없는 재료를 사용하여 지붕 맨 윗부분에 있는 재료를 받치고 있다. 기와에 새겨진 용..

경상북도/안동 2020.10.27

핑크뮬리(Pink Muhly Grass. 학명 Muhlenbergia Capillaris)

핑크뮬리(Pink Muhly Grass. 학명 Muhlenbergia Capillaris) 털쥐꼬리새(Muhlenbergia capillaris, 영어: Hairawn muhly, Pink muhly)는 쥐꼬리새속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미국이 원산이며 미국 서부와 중부지역에서 자란다. 대한민국에서는 영문명을 음독한 핑크뮬리나 이를 직역한 분홍쥐꼬리새라고도 부른다. 겉모습이 자연스러운 분홍빛을 띠고 있다. 높이는 30cm ~ 90cm이고 뿌리가 옆으로 뻗지 않으며 마디에 털이 있다. 잎은 줄기에서 자라며, 꽃은 작은 이삭으로 납작한 편으로 하나의 꽃이 이식꽃차례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가을(9월 ~ 11월) 사이에 분홍빛으로 물들어서 분홍빛 내지 연한 자줏빛을 띠며 피어난다. 흔히 모래와 자갈이 많..

경상북도/군위 2020.10.26

영천화남동 석불좌상(永川華南洞石佛坐像) . 삼층석탑(三層石塔)

영천화남동삼층석탑(永川華南洞三層石塔. 보물 제675호 경북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 498) 옛 한광사의 불전 앞에 동서로 서 있던 쌍탑 중 하나로, 이 탑의 기단석 한 면을 열자 그 안에서 석불좌상(보물 제676호)이 발견되었다. 1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받침돌만 남아있다. 기단은 네 모서리와 가운데에, 탑신의 몸돌에는 네 모서리에 각각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낙수면은 약한 곡선을 그리며 경쾌하게 표현되었다.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각 층의 지붕돌과 몸돌은 하나의 돌로 조각한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다. 탑의 높이는 2.7m이다.(문화재청 자료) 영천..

경상북도/영천 2020.10.12

고운사삼층석탑(孤雲寺三層石塔)

고운사삼층석탑(孤雲寺三層石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8호. 경북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 산221번지) 고운사 대웅전 남쪽의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다. 아래층 기단에는 희미한 안상(眼象) 무늬가 보이고, 위층 기단에는 기둥 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탑신은 1층 몸돌에 비해 2층부터 급격히 줄어들고 있으며, 각 층의 몸돌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약한 경사가 흐르는 지붕돌은 네 귀퉁이에서의 치켜 올림이 크지 않고, 밑면에 1층은 4단, 2·3층은 3단의 받침을 각각 두었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돌),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 뒤집혀진 앙화(仰花:활짝 핀 연꽃모양 장식) 등이 올려져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

경상북도/의성 2020.10.11

고운사 우화루(호랑이 벽화. 용마루 끝머리에 얹은 얼굴 모양 기와)

고운사(孤雲寺) 고운사는 신라 신문왕 원년(서기 681년)에 해동 화엄종의 시조이신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신 사찰이다. 부용반개형상(연꽃이 반쯤 핀 형국)의 천하명당에 위치한 이 사찰은 원래 高雲寺였다. 신라말 불교와 유교ㆍ도교에 모두 통달하여 신선이 되었다는 최치원이 여지ㆍ여사 양대사와 함께 가운루(경북 유형문화재 제151호)와 우화루를 건축한 이후 그의 호인 孤雲을 빌어서 孤雲寺로 바뀌게 되었다. 고려 태조 왕건의 스승이자 풍수지리사상의 시조로 받들어지는 도선국사가 가람을 크게 일으켜 세웠으며 그 당시 사찰의 규모가 五法堂十房舍(5동의 법당과 10개의 요사채)였다고 한다. 현존하는 약사전의 부처님(보물 제246호)과 나한전 앞의 삼층석탑(경북 문화재자료 제28호)은 도선국사께서 조성하신 것들이다. 특히 ..

경상북도/의성 2020.10.10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 (義城 孤雲寺 石造如來坐像)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 (義城 孤雲寺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246호. 경북 의성군 단촌면 고운사길 415 (구계리)) 대좌(臺座)와 광배(光背)를 갖추고 있으며, 손상이 거의 없는 완전한 불상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고, 네모난 얼굴에 눈·코·입을 작게 표현하였다. 가슴이 발달하고 허리가 잘록하지만, 약간 치켜 올라간 어깨로 인해 불안정한 자세를 드러내고 있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무릎에 대고 손끝이 땅을 가리키고 있는 듯 하나 부서져 있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여 배꼽 앞에 놓았는데 자연스럽지 못하다. 왼쪽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에는 규칙적인 평행의 옷주름이 나타나며, 다리와 팔 등에서는 도식적으로 표현되었다. 부처의 몸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

경상북도/의성 2020.10.10

의성 고운사 연수전(義城 孤雲寺 延壽殿)

의성 고운사 연수전(義城 孤雲寺 延壽殿. 보물 제2078호. 경상북도 의성군 고운사길 415 (단촌면)) 연수전은 1902년 고종의 기로소 입소를 기념하여, 1904년에 세운 기로소 원당으로서, 고운사 내에 있던 영조의 기로소 봉안각(1745-1749)의 전례를 쫓고, 기로소에 있던 영수각(1719)을 모범으로 세워진 대한제국기의 황실 기념 건축물이다. 기록이 분명치 않은 태조의 기로소 입소를 제외하고, 조선시대에 실제로 실행된 세 번의 국왕의 기로소 입소, 즉, 숙종, 영조, 고종의 기로소 입소 건과 모두 연결되어 있는 기로소 원당 건축으로서 가치가 높다. 고운사 연수전은 솟을 삼문 형식의 정문인 만세문과 사방으로 담장으로 사찰 내의 다른 구역과 구분되는 독립된 구획을 이루고 남향을 하고 있다. 본전 ..

경상북도/의성 2020.10.10

천상원고단(天上元祰壇) 기행(祈行)

천제단(天祭壇) 경북 군위군 효령면 고곡1리 월리봉(月里峰)에 있다. 천제단(天祭壇)은 연화부수형이라고 하며, 팔공산, 가산, 금오산, 상태봉(장군봉)이 천제단을 응봉하고 있다. 동쪽에 솟은 장군봉은 삼국시대 때 신라 김유신장군이 병력 오만대군을 거느리고 삼국통일을 하기 위한 수련도장이었다. 김유신장군은 야간에는 월리봉에서 천상기도를 드리며 백제평정에 작전을 세워 황산벌의 서전을 승리로 이끌고 귀로에 장군봉에 올라 백성들이여, 안심하고 태평성대를 누리소서 라고 크게 외쳤다. 이 명소(名所)에 대한 내력은 향토사 문헌에 있으며, 현재 천제단으로 조성되기에는 주제관(이세우李世雨)이 보전한 내력은 조부(祖父), 선친(先親)께서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한 원대한 뜻을 품고 별도로 농사지은 찹쌀과 오곡으로 청정한..

경상북도/군위 2020.10.07

경북 군위군 효령면 장군리 원당골 다락논(기아거자(棄我去者) - 이백 -)

기아거자(棄我去者) - 이백 昨日之日不可留(작일지일불가류) 날 버리고 가버린 어젯날은 머물게 할 수 없고 亂我心者(난아심자) 내 마음 어지럽힌 今日之日多煩憂(금일지일다번우) 오늘은 얼마나 근심스러운지 長風万里送秋雁(장풍만리송추안) 긴 바람은 만리서 가을 기러기를 실어 보내오고 對此可以甘高樓(대차가이감고루) 이를 대하니 높은 누각에서 마음껏 취하리로다. 蓬萊文章建安骨(봉래문장건안골) 봉래의 문장은 건안의 풍골이요 中間小謝又淸發(중간소사우청발) 중간의 소사 또한 맑고도 수려하다 俱懷逸興壯思飛(구회일흥장사비) 모두 빼어난 흥 장한 생각 품고 날아서 欲上靑天攬明月(욕상청천람명월) 푸른 하늘 올라서 명월을 따려 든다 抽刀斷水水更流(추도단수수경류) 칼 빼어 물을 베나 물은 다시 흘러가고 擧杯銷愁愁更愁(거배소수수경수..

경상북도/군위 2020.10.07

화산산성(華山山城. 경상북도 기념물 제47호)

화산산성(華山山城. 경상북도 기념물 제47호. 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산229-1번지 외 3필) 이 산성은 외침을 막기 위해 조선 숙종 35년(1709) 병마절도사 윤숙장군이 병영을 건설코자 4문의 기초공사를 시작하고 성벽축조를 위한 석재를 모으며 수구문을 축조하던 중 때마침 거듭되는 흉년과 질병이 만연되어 백성들에게 계속 부역을 시킬 수 없어 중지하였다고 전해진다. 현재 북문과 수구문터는 축성을 시작하여 공사하던 옛 모습 그대로 흔적이 남아있어 조선시대 축성의 기법과 공사의 순차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인정되고 있다. 북문터의 부분이 전체의 성터 가운데 가장 잘 남아 안팎의 아치문을 무사석과 부형무사석으로 만든 수법과 내외 겹축의 성벽을 내탁의 방법을 이용하려 하였던 모습을 보여준다. 수구문터는..

경상북도/군위 2020.10.07

연악산(淵岳山) 수다사(水多寺)

수다사(水多寺) :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에 위치하고 있다. 『수다사약지(水多寺略誌)』에 의하면, 830년(흥덕왕 5) 진감국사(眞鑑國師)가 연악산 상봉인 미봉(彌峰)에 백련이 한 송이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절을 창건하여 연화사(淵華寺)라 하였다고 한다. 976년(경종 원년)에 화재로 소실되었고, 1185년(명종 15)에 각원대사(覺圓大師)가 중창하여 사명을 성암사(聖巖寺)라 하였다. 이후 1273년(원종 14) 큰 수해를 입어 비로전·나한전·시왕전·청천요사(淸泉寮舍) 등만 남아 있었다. 1573년(선조 5) 사명대사가 극락전을 중수하고 대웅전이라 개칭하고 청천료(淸泉寮)를 수리하여 극락당이라 개칭하고 만세루(萬歲樓) 24칸과 9개 방사(房舍: 스님들이 거처하는 방)를 건립하고 절 이름을 수다사라 개칭하였..

경상북도/구미 2020.09.22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龜尾 竹杖里 五層石塔)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龜尾 竹杖里 五層石塔. 국보 제130호. 경북 구미시 선산읍 죽장2길 90 (죽장리)) 선산 읍내에서 서쪽으로 약 2㎞ 떨어진 죽장사터에 있는 석탑으로, 주변에 석재와 기와조각이 널려 있어 건물터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바닥 돌에서 머리장식에 이르기까지 100여 개가 넘는 석재로 짜여 있으며, 전탑형의 오층탑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탑으로, 높이가 10m에 이른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 탑신(塔身)을 세우고 그 위로 머리장식을 얹고 있는 거대한 모습이다. 탑신부 1층 몸돌 남쪽 면에는 불상을 모셨던 것으로 보이는 감실(龕室)이 마련되어 있으며, 그 주위로 문을 달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지붕돌의 아래·윗면은 전탑(塼塔:벽돌로 쌓아올린 탑)에서와 같이 계단 모양으로 이..

경상북도/구미 2020.09.15

금오서원(金烏書院)

금오서원(金烏書院. 경상북도 기념물 제60호. 경북 구미시 선산읍 원리 276번지) 야은 길재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길재(1353∼1419)는 정몽주·이색과 함께 고려 후기에 절의를 지킨 ‘고려삼은(三隱)’으로 불리는 학자이다. 그는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고려가 망하는 것을 알고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하여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은거하였다. 조선이 건국되고 세자 이방원(태종)이 관직에 임명하였으나 거절하고 학문과 후학양성에만 전념했다. 금오서원은 선조 3년(1570)에 금오산 자락에 세웠으며 선조 8년(1575) 임금으로부터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 35년(1602)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다시 지었고, 광해군 1년(1609)에 다시 사액..

경상북도/구미 2020.09.14

구미 독동리 반송(龜尾 禿同里 盤松)

구미 독동리 반송(龜尾 禿洞里 盤松. 천연기념물 제357호.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 539) 반송(盤松)은 소나무의 한 종류로 줄기가 밑둥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갈라져서 줄기와 가지의 구별이 없고 전체적으로 우산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반송은 나이가 약 400년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13.1m이고 밑줄기 둘레는 4.05m이다. 줄기가 아래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갈라져 전체적으로는 부챗살처럼 퍼진 반송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안강 노씨가 마을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자라던 나무라고 전해진다. 이 반송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반송 중의 하나이므로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이 나무는 나이가 약 400년이며 소나무과(科)에..

경상북도/구미 2020.09.14

팔공산마애약사여래좌상(八公山磨崖藥師如來坐像)

팔공산마애약사여래좌상(八公山磨崖藥師如來坐像.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 대구 팔공산 비로봉의 정상 가까운 절벽에 새겨진 거대한 크기의 마애약사불상이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큼직하며, 탄력 있고 우아한 얼굴은 이목구비가 세련되고 단아하다. 둥근 어깨는 탄력 있어 보이며, 허리는 잘록하게 표현되었다. 무릎에서 밖으로 내려뜨린 오른손과 무릎 위에 얹어 약 그릇을 들고 있는 왼손의 세련성 등은 이상적인 사실주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왼쪽 어깨를 감싼 옷은 몸의 굴곡이 드러날 정도로 얇은 편인데 옷주름은 자연스럽고도 규칙적이며, 가슴에서 옷깃이 한번 뒤집히는 등 8세기 불상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광배(光背)는 불꽃이 타오르는 모습으로, 머리광배와 몸광배가 표현되어 있으며 연꽃무늬와 덩쿨무..

감응사(感應寺)

감응사(感應寺)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영취산(靈鷲山)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802년(신라 애장왕 3) 보조국사 체징(體澄)이 창건하였다. 창건설화에 따르면 애장왕이 늘그막에 왕자를 낳았는데, 왕자는 날 때부터 눈이 나빠 앞을 볼 수 없었다. 온갖 약을 다 써보았으나 소용이 없자 왕비는 명산을 찾아다니며 기도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도인이 꿈에 나타나 말하기를, ‘내일 아침 문 앞에 독수리가 나타날 것이다. 그 독수리를 따라가면 약수가 있는 곳에 이른다. 그 약수로 눈을 씻고 약수를 마시면 눈병이 나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다음날 도인의 말대로 독수리를 따라가니 과연 약수가 있었고 약수로 왕자의 눈을 씻고 마시게 하였더니 눈병이 나았다. 애장왕은 이를 부..

경상북도/성주 2020.08.30

성주星州 선석사禪石寺

성주星州 선석사禪石寺 신라 효소왕 때 의상국사(義湘大師)가 화엄 10찰 중 하나로 현재 위치보다 서쪽에 창건하여 절 이름을 신광사(新光寺)라 하였으나 고려 공민왕 10년(1361)에 나옹국사(懶翁大師)가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여 선석사라 하였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전소하여 조선 숙종 10년 (1684)에 혜묵(惠默), 나헌(懶軒) 등이 중창하였으며, 1725년(영조 1년)에 서쪽의 옛터로 이건하였다가 1804년 서윤(瑞允)이 지금의 자리로 이건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명부전, 칠성각,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다. 세종의 왕자 태실이 있는 태봉에서 약 200m 거리 에 위치하고 있는 이 절은 태실을 보호하는 사찰로 지정되어 현존하고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다포집이다.(참..

경상북도/성주 2020.08.30

회연서원(檜淵書院.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1호)

회연서원(檜淵書院.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1호. 경북 성주군 수륜면 동강한강로 9 (신정리))한강 정구(鄭逑)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세운 서원이다. 조선 인조 5년(1627)에 제자들이 세운 회연초당이 있던 자리에 짓고 회연서원이라 이름 하였다. 그 후 숙종 16년(1690)에 임금으로부터 ‘회연(檜淵)’이라는 이름과 토지·노비를 하사 받았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서원 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서원 중의 하나로 선생의 문집판 『심경발휘』가 보관되어 있고 현판은 한석봉이 쓴 것이다. 대경재·명의재·양현청 등의 건물이 있었으나 양현청은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고, 해마다 2차례 제사를 지내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이 서원은 조선 선조 때의 대유..

경상북도/성주 2020.08.30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星州 世宗大王子 胎室)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星州 世宗大王子 胎室. 사적 제444호. 경북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산8번지) 세종대왕자태실은 성주군 월항면 선석산 아래 태봉(胎峰) 정상에 있으며, 세종의 적서(嫡庶) 18왕자와 세손 단종의 태실 등 19기가 군집을 이루고 있다. 태실은 왕실에 왕자나 공주 등이 태어났을 때 그 태를 넣어두던 곳을 말한다. 전체 19기중 14기는 조성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한 다섯 왕자의 태실의 경우 방형의 연꽃잎이 새겨진 대석을 제외한 석물이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으며, 세조 태실의 경우에는 즉위한 이후 특별히 귀부를 마련하여 가봉비(加封碑)를 태실비 앞에 세워두었다. 조선 세종 20년(1438)에서 24년(1442)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태봉은 당초 성주이씨의 중시조..

경상북도/성주 2020.08.29

한강 정구 신도비(寒岡 鄭逑 神道碑)

한강 정구 신도비(寒岡 鄭逑 神道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12호. 경북 성주군 수륜면 동강한강로 9 (신정리)) 이 비는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의 외증손으로 조선 성리학사에서 확고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의 신도비(神道碑)이다. 비석은 인조 11년(1633)에 수륜면 수성리 갓말마을 뒷산인 창평산 묘소 부근에 세워졌다가 한강 정구의 묘소를 성주읍 금산리 인현산으로 이장하게 되면서, 현종 3년(1668)에 현재의 위치인 회연서원(유형문화재 제51호) 경내로 옮겨 세워졌다. 신도비는 비신(碑身), 이수(螭首), 귀부(龜趺)가 완전하게 잘 남아 있다. 이수에는 쌍룡문(雙龍紋)과 여의두문(如意頭紋)이 깊이 새겨져 있고, 귀부는 귀갑문(龜甲紋)이 양각으로 얕..

경상북도/성주 2020.08.28

군위 지보사 삼층석탑(軍威 持寶寺 三層石塔)

군위 지보사 삼층석탑(軍威 持寶寺 三層石塔. 보물 제682호. 경북 군위군 군위읍 상곡길 233 (상곡리)) 지보사 경내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아담한 모습이다. 기단은 통일신라 후기의 전형적인 구성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기단의 각 면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고, 기둥 사이에는 무늬를 새겼는데, 아래층에는 사자 모양의 동물상을, 위층에는 팔부중상(八部衆像)을 새겨 넣었다. 기단을 이루고 있는 돌들이 모두 높아서 다소 우뚝해 보인다. 기단 윗면에는 연꽃무늬를 새긴 별도의 판돌을 삽입하여 윗돌을 괴도록 하였다. 탑신은 1층 몸돌에 문짝 모양을 새겨두어 부처님을 모시는 방(감실)을 표현하였다. 지붕돌은 별도의 돌을 얹어 구성한 것으로, ..

경상북도/군위 2020.08.28

백년설(이창민) 노래비 -성주고등학교 교정. 성주 성밖 숲 -

백년설(이창민) 노래비를 찾아서 경상북도 성주에서 출생하여 성주농업보습학교를 졸업했다. 학창 시절부터 문학과 연극에 관심을 가졌다. 1934년에 우연한 기회로 첫 데뷔한 그는 1938년 일본에서 〈유랑극단〉을 취입하여 가수 데뷔하였고 〈두견화 사랑〉, 〈마도로스 수기〉 등을 연속 유행시켰다. 대표곡은 1940년 발표되어 이후 오랫동안 널리 불린 〈나그네 설움〉, 〈번지없는 주막〉이며, 이 밖에도 〈삼각산 손님〉, 〈고향 길 부모길〉, 〈남포불 역사〉, 〈눈물의 백년화〉, 〈산팔자 물팔자〉, 〈천리정처〉, 〈아주까리 수첩〉 등 히트곡이 많이 있다.

경상북도/성주 2020.08.27

6.25 참전 학도병 충훈비(성주 중·고등학교)

6.25 참전 학도병 명단 김덕조 김봉찬 김상옥 김상천 김용수 김점환 김진수 김판석 노태연 도재격 도재식 류재변 박만수 박희수 배기종 배기철 배우덕 배장춘 배재천 배재호 배재화 배재환 배춘석 배태영 배판린 백규현 백도흠 백승학 백영기 백예기 백욱기 백장현 백태록 서정호 서정훈 신동욱 신문식 여상배 여식동 여임동 오재수 유상태 유성환 유희철 이기호 이담식 이만흥 이복상 이상석 이수권 이원순 이임술 이재목 이재방 이재환 이정화 이종록 이하영 최학수 허 윤 황태성 6.25 참전 학도병 충훈비 취지문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남침으로 침공 3일 만에 서울이 점령되고 한 달만에 낙동강 연안까지 밀고 내려왔으며, 그로 인해 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의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학교를 떠나 뿔뿔이 흩어져 대..

경상북도/성주 2020.08.27

동방사지칠층석탑(東方寺址七層石塔)

동방사지칠층석탑(東方寺址七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60호. 경북 성주군 성주읍 예산리 269-10번지) 동방사터에 남아 있는 7층 석탑으로, 원래는 9층이었다고 전한다. 절터는 성주읍내에서 왜관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약 1㎞ 떨어진 도로변에 자리잡고 있는데, 신라 애장왕 때 창건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절이 모두 불타버리고 현재는 이 석탑만 남아 있다. 기단(基壇)의 네 면과 탑신(塔身)의 각 몸돌에는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으며, 특히 1층 몸돌에는 문(門)모양을 깊게 새겼다. 1 ·2 ·3층 지붕돌 네 귀퉁이에는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는 것이 특징으로, 고려시대의 자유로운 조각양식이 엿보인다. 탑이 자리하고 있는 성주지역의 지형은 소가 누워서 별을 바라보는 형상으로, 이 때문에 냇물이 성주읍을 돌..

경상북도/성주 2020.08.25

군위법주사왕맷돌(軍威法住寺왕맷돌)

군위법주사왕맷돌(軍威法住寺왕맷돌.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12호. 경북 군위군 소보면 달산3길 215 (달산리))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銀海寺)의 말사이다. 창건자는 미상이나 480년(소지왕 2)에 창건되었다는 설과 801년(애장왕 2)에 창건되었다는 설이 있다. 중창 및 중수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있으며, 1만여 평이 넘었다고 하는 사찰 경내 여러 곳에서 옛 주춧돌이 발견되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광명전(普光明殿)을 비롯하여 산신각·요사채 등이 있다. 절에 남아 있는 왕맷돌은 위·아랫돌 모두 지름 115㎝, 두께 15.5㎝의 크기로, 국내에서는 가장 큰 맷돌로 알려져 있다. 맷돌이란 정성스레 다듬은 2개의 돌을 아래·위로 포개어 놓고, 위의 돌을 회전시킴으로써 곡물을 갈게 되는..

경상북도/군위 2020.08.25

군위하곡리석조여래입상(軍威下谷里石造如來立像)

군위하곡리석조여래입상(軍威下谷里石造如來立像.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3호. 경북 군위군 군위읍 하곡리 산32-1번지) 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에 있는 불상으로 몸 뒤의 광배(光背)와 불상을 받치는 대좌(臺座)를 잃은 상태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에 큼직한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표현되어 있다. 얼굴은 둥글고 원만하며 이목구비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가슴에는 비스듬히 속옷이 보이고,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자락은 두 다리에서 양쪽으로 갈라져 여러 겹의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옷주름의 표현은 8, 9세기에 유행한 통일신라 불상의 양식이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 손바닥을 보이며 손끝은 위를 향하고 있고, 왼손은 마찬가지로 손바닥을 보이면서 손끝은 땅을 ..

경상북도/군위 2020.08.24